[사설]소비자 파산制 악용없게 해야

  • 입력 1997년 5월 31일 20시 13분


개인의 채무변제책임과 관련된 새로운 판결이 나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서울지방법원은 빚보증을 섰다가 전재산을 날리고도 2억5천만원의 빚이 남아 이를 감당할 수 없게 된 한 주부에게 소비자파산선고(破産宣告)를 내렸다. 남은 빚은 갚지 않아도 된다는 판결이다. 회사정리법에 따라 법원이 기업의 법정관리신청을 받아들여 채무동결을 결정하는 경우는 그동안 적지 않게 있었다. 그러나 법원이 개인에게 파산선고를 내려 빚을 탕감해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빚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게 된 개인에게 경제적으로 재기(再起)할 기회를 준 이번 선고의 사회적 의미는 긍정적으로 평가되어 마땅하다. 그러나 이 판결이 금융질서에 미칠 영향과 악용의 소지 등 예상되는 부작용에 대한 대비가 뒤따라야 한다. 법원의 이번 판결을 계기로 개인의 파산선고신청이 늘 것이다. 젊은 계층에게 신용카드를 무분별하게 발급한 결과 신용카드 연체액이 이미 1조원이나 된다. 담보위주의 금융관행 때문에 친척기업에 연대보증을 서주어야 하는 피치 못할 경우도 흔하다. 금융경색으로 건실한 중소기업마저 부도에 몰리는 상황에서 이런 경우의 파산자는 더 생겨날 수 있다. 그러나 소비자파산선고는 전재산을 팔아도 빚을 다 갚지 못하는 경우의 구제제도다. 파산선고제를 악용하는 일이 없도록 개인의 재산흐름을 투명하게 파악하는 제도부터 개발해야 한다. 재산을 숨겨놓고 빚을 탕감받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될 일이다. 파산자의 재기 못지않게 채권을 보호하는 일도 중요하다. 채권이 불안하면 원활한 금융질서가 유지될 수 없다. 신용을 바탕으로 하는 금융개혁도 늦어진다. 보증보험제도의 확대 등 채권보호를 위한 제도개발도 함께 연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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