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한국 병합조약, 일본이 엉터리 문서로 밀어붙여”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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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역사/이태진 지음/424쪽·3만 원·태학사

20여 년 동안 일본의 한국 강제 병합의 불법성을 연구해 온 저자(서울대 명예교수)가 식민지배 청산을 위해 알아야 할 점과 할 일에 대한 고찰을 모은 책이다.

20세기 한국인을 질곡으로 몰아넣은 식민지화는 엉터리 조약으로 이뤄졌다. 1905년 을사늑약은 국권 이관에 관한 조약으로 원수가 발부하는 비준서가 동반돼야 하지만 외부대신 직인만 찍혔을 뿐 비준서가 없다. 1910년 ‘한국 병합조약’은 조약문의 재질뿐 아니라 한국어와 일본어로 쓴 필체가 똑같다. 일본 측이 한국이 갖춰야 할 문건들을 일방적으로 준비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는 세계 조약 역사상 유례가 없다. 또 순종 황제는 병합을 국민들에게 알리는 공포 칙유(勅諭)에 서명하지 않음으로써 비준을 거부했다. 그러나 일본 신문은 한국 황제가 자진해 나라를 내놓기로 했다고 왜곡 보도했다.

저자는 일본의 근대 한국 침략의 사상적 기원으로 요시다 쇼인의 팽창주의를 꼽는다. 요시다 쇼인은 메이지 유신의 주도세력을 키운 인물로 ‘유수록(幽囚錄)’에서 일본이 서양 열강에 앞서 이웃 나라들을 선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책은 유수록의 내용을 자세히 소개한다. 당대 일본에도 평화적 해양국가로의 발전을 일본의 미래로 제시한 가쓰 가이슈 같은 인물이 있었지만 그는 팽창주의 세력에 밀려난다.

저자는 고종이 주권 수호를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기에 독살됐다고 본다. 저자는 “데라우치 총리대신은 ‘이태왕(고종)에게 1905년 11월의 보호조약을 추인하는 문서를 요구하고 이를 거부하면 독살하라’는 밀명을 조선 총독 하세가와에게 내렸다”며 “1919년 1월 19일 고종은 이를 거절했고 이틀 뒤인 21일 부푼 시신으로 발견됐다”고 말했다.

저자는 여전히 우리의 역사 인식에 잘못된 점이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일본은 한반도 지배의 명분을 세우려고 명성황후를 권력욕에 불타는 여성으로, 고종을 유약하고 무능한 군주로 왜곡했다. 저자는 “일본은 최근 제국 팽창의 근원인 요시다 쇼인의 사상을 미화해 추존하고 있는 반면 한국은 100년 전 역사를 실패한 역사로 간주하고 군주에게 망국의 책임을 지우고 있다”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끝나지 않은 역사#이태진#병합조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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