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이 한줄]소방관의 눈물은 누가 닦아주는가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2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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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의 아내는 늘 잠이 모자라서 꾸벅거리던 남편의 고달픔과 그리고 현장 2층의 암흑 속에서 숨이 끊어지기까지 남편이 혼자서 감당할 수밖에 없었던 그 뜨거움을 되뇌면서 쓰러져 울었다―라면을 끓이며 ‘소방관의 죽음’(김훈·문학동네·2015년) 》
 
1999년 5월 26일자 동아일보에는 소방관 순직을 알리는 기사가 실렸다. ‘한 119구조대원이 화마(火魔)를 무릅쓰고 16명을 구조한 뒤 자신은 불길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삶을 마감해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전남 여수소방서 연등파출소 서형진(徐亨鎭·29) 소방사는 24일 여수시 교동 중앙시장 화재현장에서 순직했다.’

당시 서 소방사는 불길에 휩싸인 건물 안에서 사람들을 구한 뒤 호흡기 산소가 바닥나 쓰러졌고 숨진 채 발견됐다. 그가 입에 물고 있던 것은 20분용 공기호흡기였다. 20분간 마지막 힘을 다해 생명을 구하고 세상을 떠난 서 소방사의 사연을 전직 기자 출신 소설가 김훈은 16년 뒤 에세이에 담았다. 김 씨는 종종 소방관 이야기를 애정 어린 시선으로 다뤘다.

최근 충북 제천 화재 사건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많은 사람이 죽었고, 그 여파로 전(前) 제천소방서장 등 화재 현장 지휘부 2명이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입건됐다. 이들을 안타깝게 여긴 사람들의 “처벌하지 말아 달라”는 목소리도 일고 있다.

2010년 수습기자 시절 소방관들을 몇 명 만난 적이 있다. 한 소방관은 현장에서 목에 2도 화상을 입었는데 동네 병원에서 자비로 치료를 받아야 했다. 부상 기록을 남기면 해당 기관장에게 인사 불이익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밀린 초과근무수당을 달라는 소송을 냈다가 구급대원으로 인사 조치된 소방관도 만났다. 목숨 걸고 일한 정당한 대가를 달라는 것뿐이었는데. 쉰 살을 앞둔 그 소방관이 내 앞에서 서럽게 울던 모습을 잊지 못한다.

시시비비는 가리고 잘못된 일이 있으면 책임을 물어야 한다. 하지만 국가와 사회가 그동안 이들에게 정당한 예우를 했는지, 수고에 대한 보상과 합리적인 근무 환경을 제공했는지는 돌아볼 일이다. 우리 목숨이 경각에 달렸을 때 가족보다 먼저 달려올 사람들 아닌가.

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라면을 끓이며#소방관의 죽음#김훈#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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