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성호]때론 유난 떠는 게 맞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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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호 사회부 차장
이성호 사회부 차장
출근길 지하철 문이 열리는 순간 내 머릿속 레이더가 본격 가동된다. 2, 3초 안에 좌우 10m 정도 파악해야 빈자리를 찾아 앉을 수 있다. 저질 체력에, 1시간 넘는 이동시간을 감안하면 ‘운동 삼아 서서 간다’는 말은 내게 사치다. 자리 빌 틈이 보이면 10m 밖에서 가방부터 던진다는 아줌마를 뭐라 할 게 아니다. 그래도 분홍색 ‘임산부 배려석’만큼은 반드시 비워 둔다.

보통 편도 2차로 도로의 바깥 차로는 직진과 우회전이 모두 가능하다. 종종 직진 차량이 유유자적 파란 신호를 기다리는 경우가 있다. 그래도 절대 뒤에서 경적을 울리지 않는다. 앞 차량은 양보할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1, 2분 빨리 가려고 괜히 ‘경적질’ 했다가 삿대질이라도 주고받으면 기분만 상한다. 앞 차량이 비켜주다가 사고라도 나면 졸지에 원인 제공자가 된다. 상황이 바뀌어 뒤 차량이 경적을 울려도 끝까지 신호를 기다리는 이유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광역버스에 타면 꼭 안전띠를 찾아 맨다. 가끔 안전띠가 좌석 틈에 끼어 요지부동일 때가 있다. 야근에 지치고 술에 취해도 포기하지 않는다. 옆자리 여성으로부터 성추행범으로 몰릴 위험을 무릅쓰고 기어이 안전띠를 빼서 착용해야 마음이 편해진다.

운전하다 차량 통행이 드문 교차로에 멈춰 서는 건 흔한 일이다. 예전에는 적당히 눈치껏 지나는 게 도로 위의 미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파란 신호를 느긋하게 기다린다. 신호를 어기고 내 차를 추월해 가는 차량을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으로 촬영해 신고하는 여유도 생겼다.

내가 임산부 배려석을 비워 두는 건 투철한 양보정신의 발로(發露)가 아니다. 그저 내가 앉을 자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몇 차례 크고 작은 교통사고를 경험했지만 트라우마에 시달릴 정도는 아니다. 교통 신호등과 차로, 안전띠에 집착하는 건 정해진 약속이기 때문이다. 내가 약속을 지키면 다른 누군가가 정당한 자신의 권리를 누릴 수 있다. 그리고 나를 포함해 몇몇은 조금 더 안전할 수 있다.

사실 익숙해지기까진 시간이 좀 걸렸다. 몸과 마음이 피곤한 과정을 거쳐야 편해진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은 여전히 나의 이런 모습을 불편해한다. 이골이 날 법도 한데 아직도 “유난 좀 떨지 말라”고 말한다. “유난 떨다 제명에 못 죽는다”는 무시무시한 말을 웃으며 건네는 친구도 있다. “혹시 프로불편러 아니냐”는 질문도 받았다. 프로불편러는 특정 사안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람을 일컫는 온라인 용어다. 하지만 이들은 법이나 사회의 약속보다 자신의 감정 상태에 충실한 사람일 뿐이다.

찾아보면 ‘유난’은 그저 언행이나 상태가 보통과 다르게 특별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서는 상대방을 비꼬고 무시할 때 손쉽게 쓰고 있다. 상황에 따라 사람의 마음을 비수처럼 찌를 수도 있지만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도 많지 않다. 그러다 보니 주위에는 유난스럽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오죽하면 그런 시선을 피하려고 뿌연 미세먼지 속에서도 마스크를 쓰지 않는 사람이 10명 중 6명이나 된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하지만 사회가, 나라가 바뀌기 위해서는 유난을 떠는 사람들이 더 필요하다. 약속과 질서보다 제 한 몸 챙기는 게 더 중요해진 한국 사회에서 유난스러운 사람이 늘어나야 한다. 그래야 지하철에서 임산부 배려석을 비워 놓고, 버스에서 안전띠를 찾아 매고, 한밤중 교차로에서 파란 신호를 기다리는 게 유난이 아닌 사회가 될 것이다.

이성호 사회부 차장 starsky@donga.com
#임산부 배려석#경적#광역버스 안전띠#유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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