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칼럼]‘실세의 딸’ 앞에 설설 긴 이대 총장 물러나라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16일 21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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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승마특기생 입학한 대통령 측근 최순실 씨 딸 위해 대학은 “무조건 학점” 학칙 바꿨다
교수에게 캔커피만 줘도 김영란법 위반 걸릴 판에 비선실세 위력 그리 대단한가
독선·불통의 최경희 총장 학교 명예 훼손 말고 사퇴해야


김순덕 논설실장
김순덕 논설실장
 어쩌면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의 청와대 비선(秘線) 실세 개입 의혹은 ‘난무하는 비방과 확인되지 않은 폭로성 발언’일지 모른다. 백 번 양보해서,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대기업들의 발목을 비틀어 두 재단에 800억 원을 바치게 할 수도 있다. 장사 한두 번 해본 것도 아니고, 전경련이 일요일인 작년 10월 25일 ‘내일 도장 들고 나르샤’ 긴급 명령을 내렸을 적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쯤 재벌들이 모를 리 없다.

 20대 국회 첫 국정감사에서 드러난 ‘이화여대 사태’는 다르다. 대통령 최측근으로 알려진 최순실(최서원으로 개명) 씨의 힘이 구체적으로 확인되고 있어 단순 비방이나 폭로로 넘기기 어렵다. 천 번을 양보해서, 이대가 2013년 5월 교수회의에서 승마를 체육특기 종목에 포함하기로 결정했고(4월 전국승마대회 판정 시비와 6월 대통령 지시에 따른 문화체육관광부 감사가 있었다), 2014년 10월 전형 때 진짜로 아시아경기대회 금메달을 들고 온 최 씨의 딸을 합격시킨 건(평가자 입실 전에 입학처장은 금메달을 가져온 학생을 뽑으라고 했다), 나라를 구한 소녀에게 하늘이 준 행운일 수도 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최 씨가 작년 9월과 올해 4월 이대를 다녀간 뒤 특기생은 B학점 이상 주도록, 결석해도 봐주도록 학칙이 바뀌어 버린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이 “허위 사실이 있으면 책임지겠다”며 밝힌 7일 국감 회의록에는 최 씨 딸의 지도교수 얘기도 나온다. 올봄 ‘상당히 양식 있는’ 지도교수는 출석 한 번 안 한 학생에게 학점을 줄 수 없으니 학교에 나오게 하라고 연락을 했다. 그러자 다음 날 최 씨가 학교로 뛰어와서는 “왜 외국에서 열심히 훈련하는 애를 안 봐주고 귀찮게 하느냐? 고발할 수도 있다”며 한바탕 소란을 벌였다는 거다.

 그 뒤 지도교수는 교체됐고 학칙은 ‘국제대회, 연수, 훈련 시 증빙서류를 제출하면 출석으로 인정’으로 바뀌었으며 최 씨 딸은 소급적용까지 받았다. “그리고 이대는 9개 교육부 예산지원 사업 중 8개에 선정되는 ‘재정 폭탄지원’을 받았다”며 안 의원은 ‘포괄적 뇌물죄’에 해당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합리적 의심’이 억울하다면 이대 총장이 직접 해명을 해야 마땅할 텐데도 증인 채택을 맹렬히 막은 게 새누리당이다. 그러니 최 씨 보호하려고 총장 못 부르게 했다는 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이대는 ‘체육특기생 선발과 학칙 개정을 원칙과 절차에 따라 공정하고 적법하게 했다’고 해명하고 있다. 국제대회에서 모교와 대한민국의 명예를 드높일 특기생을 위해 대학이 어느 정도 특혜를 줄 수도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단, 학교의 자율적 판단일 때 한해서다.

 이 대학이 얼마나 학점 짜고, 학사관리 철저하고, 여교수들은 쌀쌀맞은지 ‘이대 나온 여자’(나도 그 중 하나다)는 다 안다. 130년 전통을 자랑하는 사학이 5년 임기의 대통령 측근, 심지어 공식 직함도 없는 학부모에게 휘둘려 학칙까지 바꾼 것보다 ‘비선 실세의 위력’을 확인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이대 교수들은 ‘학사 문란’으로 규정했지만 국가로 치면 국기(國基) 문란 행위가 아니고 뭔가. ‘김영란법(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전화신고 1호가 대학생이 교수에게 준 캔커피 사건이다. 그런데 누구는 출석을 안 해도, 과제물을 개떡같이 내도 “참 잘했어요” 아부하는 대학이 정부 지원을 무더기로 받았다. 그렇다면 이 정권에선 어떤 대학입시나 대학정책도 공정할 수 없다.

 평생교육단과대학(미래라이프대학) 반대와 최경희 총장 퇴진을 요구하며 7월 말부터 농성 중인 학생들은 ‘총장이 나갔으면 하고 땅을 팠는데 고구마에 무령왕릉까지 나왔다’며 역린(逆鱗)을 건드린 것을 당혹해하는 분위기다. 반면 학생들이 지나치다고 여겼던 교수들과 이사회는 대통령 최측근의 딸에게 온갖 특혜를 바쳐 이화의 명예를 추락시킨 총장에 대한 분노로 돌아서고 있다. 최 총장의 독선과 불통(不通), 비선 의존이 대통령과 똑 닮았다는 비아냥거림에 귀가 따가울 지경이다.

 미르·K스포츠재단 의혹은 정권말이 되거나 정권이 바뀌어야 결국 규명될 것이다. 야당은 교육부에 이대 감사를 촉구했지만 ‘면죄부 감사’로 끝날 공산이 크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미르·K스포츠재단과 달리 이대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점이다. 대학이 과오를 규명하고 최경희 총장은 물러나야 한다.
 
김순덕 논설실장 yuri@donga.com
#이화여대 총장#미르재단#비선실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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