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커버스토리]통일 준비 ‘개점 휴업’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6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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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준비의 핵심사업 중 하나는 통일 재원을 마련하는 일입니다. 국회가 깊은 관심을 가져 주시기 바랍니다.”

2012년 7월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19대 국회 개원 연설에서 이같이 말했다. 한 달 뒤 국무회의는 ‘남북협력기금법’을 개정해 통일 계정을 신설하고 여기에 ‘통일항아리’라는 이름을 붙이기로 했다. 법률 이름도 ‘남북협력 및 통일기금법’으로 바꾸고 대통령부터 ‘통일항아리’ 성금을 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19대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 ‘통일기금법’은 사장되고 말았다. 통일항아리 홈페이지(www.unijar.kr)도 폐쇄됐다. 성금은 ‘통일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모임’(unitiative.kr)이라는 민간단체에서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MB 정부 때 통일 비용 연구용역 책임자는 안종범 성균관대 교수(현 대통령정책조정수석비서관)로 박근혜 대통령을 인수위원회 때부터 보좌하고 있지만 통일 재원 마련은 정책의 후순위로 밀렸다.

그렇다면 ‘통일 대박’을 외치며 대북정책의 전면에 통일을 앞세운 박근혜 정부의 통일 준비는 무엇을 우선순위로 올려놓고 있을까. 취임 첫해 ‘신뢰 프로세스’를 전면에 내세웠던 현 정부는 이듬해 ‘통일대박론’을, 3년 차엔 ‘도발대응+대화 병행’을 주장하다 현재는 대북 압박 외교에 전력을 쏟고 있다. 대통령직속 통일준비위원회가 만든다던 ‘통일헌장’은 소식이 없고 올해 통일부에 신설된 평화체제 태스크포스(TF)도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 하루 2000명 엑소더스 가능성… 대응 훈련 한번도 안해 ▼

비무장지대(DMZ) 중부전선 초소를 지키는 장병 앞뒤로 태극기와 유엔사령부기가 펄럭이고 있다. 북녘 땅은 손 닿을 듯 가까운 곳에 있지만 통일은 북한보다 군사력만 우세하다고 저절로 이뤄지는 게 아니다. 사회 경제 제도적 통합, 정전협정의 평화체제 전환까지 다양한 준비가 필요하지만 정부의 ‘대북압박 외교’ 기조가 강화되면서 다른 분야는 내부적인 준비 목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동아일보DB
“(서독) 마르크가 우리에게 오지 않으면 우리가 거기로(마르크에게) 간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직후인 1990년 2월 동독 주민들은 이런 구호를 외치며 거리 시위에 나섰다. 실제로 1989년 10월부터 1990년 1월까지 4개월 동안 30만 명 이상의 동독 주민이 서독으로 이주했다. 특히 1990년 1월 들어서는 매일 2000명 이상이 서독으로 옮겨왔다. 한 달간 이주한 사람이 5만8000명이 넘을 정도였다.

한반도 통일 과정에서도 독일에서 겪었던 것처럼 북한 주민들이 국경을 넘어 남쪽으로 쇄도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한국은 독일처럼 매일 탈북자 2000명이 쏟아지는 사태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유사시 정부는 휴전선과 인접한 육·해군 부대 8곳에 탈북자 임시수용소 10곳을 운영할 계획을 갖고 있지만 그야말로 수용소일 뿐, 포용·통합과는 거리가 멀다. 하루 2000명을 수용하는 연습을 해본 적도 없다(2015년 1년간 입국한 탈북자는 1276명). 전영선 건국대 교수는 “그동안 탈북자의 정착 교육은 ‘한국에 왔으니 한국의 것을 받아들여라’는 식이었지, 다양성을 존중하고 공생을 추구하는 차원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2001년부터 해마다 탈북자 1000명 이상이 한국 땅을 밟았지만 그동안 입국한 탈북자(2만8786명)는 특정 지역(함경남북도 71%), 특정 계층(노동자·무직 86%) 출신이 대부분이었다. 공생 학습을 할 충분한 기회가 없던 배경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정부가 북한 주민들을 북한 땅에 묶어둘 대책이 있는 것도 아니다. 동독 주민들의 서독행 엑소더스가 한풀 꺾인 것은 서독 정부가 동·서독 화폐를 통합하기로 발표한 뒤였다. 1989년 4.5%의 경제성장률과 국민총생산(GNP) 대비 재정 적자가 0%였던 서독과 달리 한국의 현재 경제 체력은 내수 시장을 부양하기에도 취약한 실정이다.

“통일되면 북한 핵무기는 우리 것”이라는 착각

그동안 통일은 ‘당연히 해야 할 것’ ‘되면 좋은 것’이라는 당위론에 묻히면서 실제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사회적으로 제대로 논의한 적이 드물었다. 국민의 ‘통일’에 대한 생각도 초보 수준에 머물러 있다. ‘통일되면 북한 핵무기는 한국 것이 된다’는 식의 생각이 대표적이다.

김숙 전 유엔대사는 “‘핵 비보유국은 핵무기를 만질 수 없다’는 것이 핵 보유국들의 묵시적 합의사항”이라며 “유사시에도 북한의 핵무기는 한국이 통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핵 비보유국이 핵무기를 손에 넣거나 핵무기 제작 기술을 습득하는 것이 비확산(non-proliferation) 원칙에 어긋난다고 보기 때문이다. 김 전 대사는 “북한 핵무기는 미군이 처리하거나 유엔의 협조하에 중국, 러시아가 함께 처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북한 주민들은 통일을 갈망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순진한 접근이다. 탈북자 정착을 돕고 있는 박석길 링크(LINK) 정보전략부장은 “최근 한국에 온 탈북자 J 양은 1997년생으로 ‘고난의 행군’(1990년대 북한 대기근)이 뭔지도 모르고 자랐다고 한다. 장마당 시장경제에 익숙해진 북한의 젊은층에서 통일을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해마다 을지훈련 실시, 충무계획도 있지만…

일반인의 통일 인식이 순진하다면 정부의 통일 대비는 허점이 많다고 할 수 있다.

역대 정부는 충무, 부흥계획 등의 이름으로 북한 급변사태 대응 계획을 세워왔다. 북한 최고지도자 유고(有故), 무정부 상태, 쿠데타 등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별 대응 방식을 담은 것이다. 남북의 통합을 강조했던 고당(古堂) 조만식 선생의 호를 따서 한때 ‘고당계획’이라 부르기도 했다.

이에 따르면 유사시 정부는 북한 지역을 수복해 행정통치를 실시해야 한다. 하지만 정부가 북한의 실상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미덥지 못하다는 지적이 많다. 정부는 여전히 북한을 1945년 광복 당시 기준인 ‘이북 5도’(황해도, 평안남·북도, 함경남·북도)로 부르고 있다. 북한 체제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북한 행정구역이 1946년 강원도, 1949년과 1954년 자강도·양강도가 신설되는 등 1직할시(평양), 2특별시(남포, 나선), 9도로 바뀐 현실과 맞지 않다. 전 청와대 고위 안보당국자는 “지금의 이북5도위원회는 실향민을 정서적으로 끌어안은 조직이지 통일 준비와는 무관하다”고 말했다.

평안남도지사를 지낸 박용옥 전 국방부 차관도 “정부가 차관급 이북 5도지사를 임명해 놓고 정작 통일 과정에서 필요한 역할은 부여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북5도위원회 관계자는 “대통령직속 통일준비위원회에 참여하지 못하고 통일부 산하가 아니라 행정자치부 산하인 점도 통일 준비 역할을 부여받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매년 8월 ‘비상대비자원관리법’에 따라 모든 정부기관이 참여해 전쟁연습인 ‘을지훈련’도 실시하고 있지만 공무원 사이에는 “훈련은 휴가 못 가는 기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는 자조적인 평가가 나온다.

통준위, 대북정책과 다른 목소리 못 내


2014년 박근혜 대통령이 ‘통일대박’을 외치며 발족시킨 통준위는 올해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로는 개점휴업 상태다. 대통령 주재 회의는 지난해 11월 제6차 통준위 회의 이후로 한 번도 열리지 못했다.

정부 관계자는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가 있었던 지난해에는 통준위가 정부의 대북정책보다 나아간 남북협력 방안을 제시해도 괜찮았지만 지금은 그럴 분위기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통준위가 ‘로키(low key·저자세)’ 행보를 보일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지리 정보는 국토부’ ‘날씨 정보는 기상청’ 식으로 각 부처에 흩어진 북한 정보를 한곳에 모으고 시너지를 발휘하려면 통준위 같은 총괄 조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여전히 나오고 있다. 하지만 전직 고위 당국자 A 씨는 “통일 과정에서 독일이 동독 주민의 이주, 국유재산 처리, 사회보장·정치체제 결합 등 숱한 시행착오를 겪으며 시간을 쏟아 부은 실질적 통합 문제에 우리 정부는 얼마나 준비가 돼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통일정책은 흡수통일론? vs “북한 안 망한다”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은 △외교적 고립 압박 △제재를 통한 북한 변화 유도로 요약된다. 이 정책의 바탕에 ‘북한 붕괴론’이 깔려 있다고 믿는 사람이 많다. 실제 정부 내부에도 ‘2015년이면 (북한 붕괴로) 남북통일이 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문제는 정부가 그동안 지향하던 ‘신뢰 프로세스’ ‘통일대박론’과 지금의 대북 압박정책이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 향후 남북관계 변화에 따른 큰 그림을 어떻게 그리고 있는지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주한 유럽국가 소속의 한 외교관은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에 어떤 일관성이 있는지 모르겠다. 왜 갑자기 압박정책으로 돌아섰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정부는 올해 1월 4차 핵실험, 2월 장거리미사일 발사 도발을 이유로 들지만 2013년 2월 3차 핵실험 때에는 없었던 강경책이 지배하게 된 배경을 납득시키지 못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북한을 외교적으로 굴복시킬 시점이 언제인지, 어떤 태도를 보여야 북한이 변할지 등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을 오래 상대해 온 중견 외교관은 “모든 대외정책에는 출구전략이 있어야 한다. 지금 한국의 대북정책은 출구도, 지향점도 안 보인다”고 말했다. 시간이 갈수록 대북제재의 결집력은 약해질 수밖에 없는데 중국이 북한과의 대화론을 내세우고 미국이 이에 동조할 경우 한국은 고립무원 상태에 빠지게 된다. 아시아·중동 국가들이 대북제재에 동참하는 것도 유엔 회원국으로서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이를 대북압박 외교의 성과로만 홍보하는 것은 실제 모습을 잘못 인식하게 만들 수 있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현 정부가 이명박(MB) 정부와 같은 논리적 함정에 빠진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MB 정부는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2008년)과 천안함 폭침 및 연평도 포격(2010년) 사건이 연이어 터지자 “어떻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북한을 상대할 수 있느냐”며 대북 강경론을 지속했다. 제재 및 압박으로 북한의 태도를 돌려놓겠다는 셈법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북한 정권은 살아남았고 핵능력은 더 고도화됐다. 통일부 간부를 지낸 B 씨는 “차기 정부가 출범하는 2018년이면 김정은 체제도 출범 7년째를 맞게 된다. 7년간 생존한 정권을 취약하다고 부를 수 있겠나. 북한이 망할 가능성은 생각보다 낮을 수 있다”고 말했다.

조숭호 shcho@donga.com·윤완준 기자
#신뢰프로세스#통일대박론#통일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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