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비는 이제 ‘그린 본보기’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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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전 대회 포함 92홀 노보기 행진
기량 업그레이드, 완벽한 플레이… “나 자신 정말 자랑스럽다” 자부심
야구 노히트노런 비슷한 대기록… PGA서도 노보기 우승은 한번뿐

“나 자신이 정말 자랑스럽다.”

좀처럼 만족할 줄 모르며 칭찬에 인색하던 박인비(27·KB금융그룹)가 스스로를 높게 평가했다. 8일 싱가포르에서 끝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HSBC 위민스 챔피언스에서 우승한 뒤였다. 단순히 시즌 첫 승을 거둔 기쁨 때문은 아니었다. 4라운드 72홀을 도는 동안 보기 없이 버디만 15개를 한 완벽한 우승이라는 자부심이 컸다. 지난주 태국 대회를 포함하면 92홀 연속 보기가 없다. 싱가포르에서 마지막 날 박인비와 같은 조로 맞붙은 세계 랭킹 1위 리디아 고(18)는 “한 샷만 잘못 쳐도 결과가 정반대로 나오는 이 코스에서 노보기 플레이는 정말 놀라운 일”이라고 감탄했다.

9일 귀국한 박인비는 “처음으로 나흘 내내 보기가 없었다. 실수를 줄인 걸 보면 기량이 한층 나아진 것이다. 티에서 그린까지 모든 게 업그레이드됐다. 나 자신에게 자신감을 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국내 주요 프로 선수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노보기가) 정말 대단하다”며 놀라움을 표시했다.

박인비는 “기록을 쓴다는 건 의미 있는 일이다. 은퇴 후에도 사람들이 내 이름을 기억해주지 않겠는가. 일단 108홀 연속 노보기 행진을 하고 싶다. 보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공격적으로 버디를 노렸을 때 좋은 결과가 있었다. 항상 돌아가거나 피하지 않는 플레이를 하겠다”고 말했다.

노보기 우승은 야구로 치면 노히트 노런에 비견될 만큼 흔치 않은 대기록으로 평가된다. 라운드마다 선수 컨디션뿐 아니라 날씨 같은 외부 환경이 바뀌는 데다 티 박스와 핀 위치도 까다롭게 조정되기 때문이다.

미국프로골프(PGA)투어에서도 노보기 우승은 1974년 리 트레비노가 뉴올리언스 클래식에서 거둔 게 유일한 기록으로 남아 있을 정도다. 한국남자프로골프(KPGA)에서도 조철상이 유일하게 1990년 팬텀오픈에서 달성했을 뿐이다. 당시 11언더파 277타로 트로피를 안은 조철상은 “3라운드까지는 의식하지 않았는데 마지막 날 첫 홀부터 보기 위기가 왔다. 홀마다 30야드씩 짧아 어려움을 겪었는데 쇼트 게임과 퍼팅으로 버텼다”고 회상했다. 황성하 현 KPGA 회장은 현역 때인 2001년 한국오픈 때 노보기 플레이를 펼쳤지만 승운이 없어 5위로 마감했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는 전성기 때인 2000년 110홀 연속 노보기 행진을 했다. 50세 이상이 출전하는 미국 챔피언스투어에서는 모리스 허탤스키가 98홀 연속 보기 없는 경기를 했다.

한편 박인비는 이날 발표된 세계 랭킹에서 2위를 유지하며 1위 리디아 고와의 격차를 0.95점으로 좁혔다. 스코어카드에서 보기가 계속 사라진다면 추월의 순간은 그만큼 빨라질 것이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박인비#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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