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이야기]<1357>陳良은 楚産也니 悅周公仲尼之道하여 北學於中國이어늘 北方之學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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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3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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未能或之先也하니 彼所謂豪傑之士也라

맹자는 陳相(진상)이 스승 陳良(진량)을 등지고 許行을 따라 배우는 것을 책망하기 시작하였다. 우선 진상의 스승 진량이 남방의 초나라 태생이면서 북쪽 중원으로 가서 주공과 중니의 도를 공부하여 豪傑之士라 일컬을 만한 존재였음을 환기시켰다.

楚産은 楚國(초국)의 태생이란 뜻이다. 周公仲尼之道는 堯(요)와 舜(순) 이래 周公과 孔子가 이어 내려온 仁義의 정치와 禮樂의 설을 말한다. 北學의 北은 남방의 초나라에서 보면 중국은 북쪽에 해당하므로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未能或之先也는 진량보다 앞서는 사람이 있을 수 없다는 뜻이다. 或은 有와 같고, 之는 진량을 가리킨다. 彼도 진량을 가리킨다. 豪傑之士는 재능과 덕망이 뭇 사람보다 뛰어난 사람을 말한다.

朴齊家(박제가)의 ‘北學議(북학의)’에서 ‘北學’이란 말은 여기서 따온 것이다. 맹자가 말한 북학은 주공과 공자의 도를 중국에서 배우는 것을 뜻하지만 박제가의 북학은 청나라의 선진 문물을 배우는 것을 뜻한다. 용어만 빌려오고 뜻을 완전히 달리 사용한 것이다. 더구나 조선 후기 학자들은 대개 청나라를 虜(노·오랑캐)라고 얕잡아보았으나 박제가는 바로 그 청나라의 문물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므로 그 주장은 파격적이었다. 청나라의 수도 북경은 우리나라의 서북쪽에 있었지만 조선 후기 대부분의 사대부들은 청나라를 北虜(북로)라고 하고, 청나라의 사신을 北使(북사)라 하며, 청나라와의 현안을 北邊(북변)의 일이라고 일컬었다. 청나라에 형식상으로는 朝貢(조공)을 하였으나 청나라를 上國으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제가의 시대에 오면 일부 지식인은 외교의 대상인 청나라 조정과 눈부시게 발전한 청나라 문물을 구별하여 대처하자는 의식이 일어났다. 박제가의 북학 주장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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