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승의 새벽편지]실패를 기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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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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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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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달력을 넘긴다. 일요일 외에도 붉은 숫자로 인쇄된 국경일들이 눈에 띈다. 국경일이 아니더라도 날짜 밑에 각종 기념일 명칭을 인쇄해놓았다. 우리 사회가 기념하지 않으면 안 되는 날들을 미리 고지해놓은 것이다.

이런 기념일은 국가나 사회의 삶에만 있는 게 아니다. 개인의 삶에도 존재한다. 가장 대표적인 게 생일과 기일이다. 생일 아침에 어머니가 끓여주시는 미역국 한 그릇에는 이 세상에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사실이 우주만큼 소중하다는 뜻이 담겨 있다. 마찬가지로 기일에 제사상에 올리는 쌀밥 한 그릇에는 하나의 우주가 사라졌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생일을 깜빡 잊어버려도 가족들이 잊지 않고 기념해준다. 생일케이크에 촛불을 켜고 환한 미소로 축가도 불러주고 생일선물을 하기도 한다. 돌잔치, 회갑잔치, 희수잔치 등도 명칭만 다를 뿐 다 인생의 어느 시점의 생일을 기념하는 것이다. 만일 기념해주지 않는다면 그만큼 무관심하거나 사랑하지 않는다고 여긴다. 그래서 요즘 젊은 연인들은 처음 만난 날뿐 아니라 만난 지 100일째 되는 날도 기념한다. 세상을 떠난 가족의 기제사나 명절날 조상님께 드리는 차례도 결국 그들의 사랑을 잊지 않고 기념하는 것이다.

실패 막으려면 실패원인 알아야

이렇게 인생의 기념일은 인생을 기쁘게 해주고 성찰하게 해준다. 그런데 인생의 기념일에 중요한 게 하나 빠져 있다. 그것은 바로 실패에 대한 기념일이다. 우리 인생에 성공을 기념하는 날은 있어도 실패를 기념하는 날은 없다. 나는 언제부턴가 실패를 기념하는 날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매년 12월 31일을 나 나름대로 ‘실패 기념일’로 정하고 있다. 다들 한 해를 보내는 아쉬움과 다가올 새해에 대한 기대에 부풀어 있을 때 나는 나의 실패를 기념한다. 지나온 한 해를 뒤돌아보면서 그해의 실패를 생각하기도 하지만 내 인생 전체의 크고 작은 실패를 생각한다. 12월이라는 인생의 길 위에서 한 사내가 추위에 떨며 엎드려 기도하고 있는 모습, 그게 실패를 기념하는 날의 내 모습이다.

이럴 때마다 놀라운 것은 그동안의 실패가 실패가 아닌 것으로 느껴진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실패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성공으로 가는 한 과정으로 이미 변화돼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새해가 되면 실패를 딛고 다시 일어선다. 실패를 기념하는 12월이 있기 때문에 다시 시작할 수 있는 1월의 문이 열린 것이다. 실패를 기념하는 일이 곧 성공을 기념하는 일이 된 것이다.

성공은 굳이 자기 자신이 간직할 필요가 없다. 그렇지만 실패는 철저하게 자기 자신이 기억하고 간직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실패를 기념하는 날이 있어야 한다. ‘경영의 신’으로 칭송받는 일본의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한 번 넘어졌을 때 원인을 깨닫지 못하면 일곱 번 넘어져도 마찬가지다. 가능하면 한 번만으로 원인을 깨달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실패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다. 실패를 거듭한다면 그 원인을 제대로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것을 제대로 깨닫기 위해서는 실패를 기념할 줄 알아야 한다. 실패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견디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실패를 기념한다는 것은 실패의 원인을 깨닫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이며, 그런 시간을 통해서만이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는 뜻이다.

언젠가 나는 산악인 엄홍길 씨가 보여주는 비디오 영상을 통해 그의 삶에도 목숨을 건 도전과 실패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1985년 첫 히말라야 원정에서부터 하산하다가 추락했다. 다행히 줄에 걸려 기적적으로 목숨을 구해 이듬해 다시 에베레스트에 도전했다. 그러나 7500m 지점에서 셰르파가 크레바스 틈으로 추락하는 바람에 시신도 찾지 못하고 산을 내려왔다. 그때 그는 셰르파가 결혼한 지 10개월밖에 안 되었으며, 그의 아버지 역시 크레바스에 추락사했다는 사실을 알게 돼 “셰르파의 홀어머니와 젊은 아내 앞에 고개를 들 수가 없어” 산을 떠나려고 결심했다. 그러나 “이대로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에 다시 도전에 나서 마침내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랐다.

만일 그때 산을 떠났다면 그는 히말라야 8000m급 14봉을 완등하는 업적은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실패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그의 생각이 히말라야 고봉보다 더 높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산을 오르는 장면 하나 하나를 보여주며 당시를 설명하는 그의 눈빛은 빛나고 목소리는 뜨거웠다.

실패 기념하며 ‘성공의 싹’ 틔워

나는 그때 그가 그 동영상을 통해 끊임없이 자신의 실패를 기념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성공과 승리로부터는 배울 게 없고 실패와 좌절에 의해서만 배우게 된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엄홍길 씨야말로 늘 실패를 기념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기념하지 않는 실패는 실패가 아니다. 실패는 기념함으로써 비로소 성공의 싹을 틔운다. 인생이라는 학교에서는 성공보다 실패가 교사다. 나는 인생이라는 학교에서 실패라는 교사의 가르침을 잘 따르는 그런 학생이 되고 싶다.

정호승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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