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 구급차도 없어… 뒤늦은 응급조치 허사”

  • 입력 2005년 10월 4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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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부짖는 희생자 가족3일 밤 경북 상주 성모병원 영안실에서 숨진 이순임 씨의 가족이 울부짖다 거의 실신하자 주위 사람들의 부축을 받고 있다. 이날 밤 시신이 안치된 상주 일대 병원의 영안실은 눈물바다가 됐다. 상주=특별취재팀
울부짖는 희생자 가족
3일 밤 경북 상주 성모병원 영안실에서 숨진 이순임 씨의 가족이 울부짖다 거의 실신하자 주위 사람들의 부축을 받고 있다. 이날 밤 시신이 안치된 상주 일대 병원의 영안실은 눈물바다가 됐다. 상주=특별취재팀
“인파를 헤치고 운동장 안으로 어렵게 도착했을 때 10여 명의 노약자와 어린이들이 이미 시체처럼 드러누워 있었습니다.”

3일 오후 발생한 경북 상주시 시민운동장 압사사고 현장에 최초로 출동했던 상주소방서 안재찬(36·소방교) 반장은 “사고 당시 운동장 밖에 있었던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면서 현장 상황을 이같이 설명했다.

안 반장은 이날 오후 5시 40분경 본부로부터 다급한 무전을 받았다.

“시민운동장, 압사, 출동….”

사고현장에서 1.5∼2km 떨어진 중부내륙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를 수습 중이던 안 반장을 비롯한 대원들은 급히 가속 페달을 밟았다. 연휴 나들이 차량으로 붐비는 고속도로를 빠져나가 현장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5시 55분경.

당시 현장에는 구급차도 없었다. 구급차는 공연시작 시간인 오후 7시 직전에 현장에 도착하기로 돼 있었다.

시민운동장 주변에 인파가 워낙 많아 반장의 차가 사고가 난 시민운동장 직3문 앞에 도착한 뒤에도 사고 현장까지 가는 데 몇 분이 더 걸렸다. 차로를 확보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안 반장이 닫힌 문을 열고 운동장 안으로 들어갔을 때 50여 명의 노인과 어린이들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거나 일어서지도 못한 채 기진맥진해서 앉아 있었다.

쓰러진 환자들에게 급히 심폐소생술을 했지만 10여 명은 이미 숨이 끊긴 뒤였다. 이미 숨을 거둔 노인 옆에 가족들이 비통하게 울부짖고 있었다.

해병전우회와 자원봉사자들도 부상자의 심폐소생술을 도왔지만 역부족이었다.

안 반장은 상태가 좋지 않은 할머니와 어린이 등 2명을 구급차에 싣고 1.5km 떨어진 인근 병원으로 옮겼다. 다행히 밖으로 나갈 때는 인파가 어느 정도 정돈돼 있었다.

병원 구급차와 상주시 소방본부의 구급차도 현장에 합류해 운동장 안으로 진입했다.

안 반장은 2명을 인근 병원으로 옮겼으나 할머니와 어린이가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안 반장은 “압사현장은 처음이었다. 당시 상황이 너무 끔찍해 놀랐다”면서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상주=특별취재팀

▼“순식간에 밀리고 깔리고 주위엔 ‘사람죽는다’ 비명”▼

“입장 전에 줄도 제대로 세우지 않아서 불안했어요.”

3일 경북 상주시 시민운동장에서 사람들에게 깔렸다가 간신히 빠져나온 권수경(11) 양은 “사고 발생 이전부터 현장은 상당히 혼란하고 위험한 상태였다”고 전했다.

권 양은 오후 1시부터 공연 관람을 위해 상주시민운동장에서 기다렸다.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하는 가요 프로그램이지만 청소년에게 인기가 많은 가수 휘성, SS501 등이 참석한다는 소문이 퍼져 현장에는 이미 중고교생들도 많이 모였다.

운동장 4개의 문 중 직3문만 연다는 말을 들은 권 양이 그 앞으로 갔을 때는 이미 많은 학생이 줄도 서지 않고 문 쪽에 바짝 붙어 있는 상태였다.

권 양은 “문 너머로 가수들의 리허설 노랫소리가 들리면 학생들이 소리를 지르며 쌍안경을 들고 한꺼번에 문 앞으로 몰려갔다. 그때마다 넘어지면 큰일 나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적극적으로 관중을 제재하거나 관리하는 사람은 없었다”고 말했다.

주최 측이 마이크를 통해 “이 프로그램은 중장년층을 위한 프로그램이므로 학생들은 몰려들어도 앞자리에 앉을 수 없다. 사고가 우려되니 밀지 말고 질서를 지켜라”는 방송을 여러 번 했지만 학생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후 5시 40분경 직3문의 한쪽이 열렸다. 순간 사람들의 질서는 완전히 무너졌다.

학생들이 한꺼번에 뒤에서 몰려들기 시작했고 앞사람이 넘어지면서 깔리기 시작했다. 인파 가운데 있던 권 양도 앞사람이 넘어지면서 함께 넘어졌다.

“누군가 제 머리를 잡아당겼어요. 목에 걸고 있던 쌍안경 줄이 목을 졸라 숨도 막혀 왔죠. 이제 죽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람들 틈 속에 끼여 있던 권 양의 귓가에는 “사람이 죽는다”라는 외침과 함께 아주머니의 비명소리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 순간 권 양의 눈에는 누군가가 내민 손이 보였고 본능적으로 그의 손을 잡으며 ‘살았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일어났을 때 주변은 아수라장이었고 구급차와 구급요원은 보이지 않았다.


상주=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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