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산업]만화주간지는 일본의 '생활패턴'

  • 입력 2002년 10월 24일 18시 06분


인터넷이 무서운 속도로 대중화하기 시작한 시절. 인터넷이 신문을 대체할 것이라는 예측이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신문이 사람들의 생활 패턴에 깊숙이 뿌리를 내렸기 때문이리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신문을 들고 화장실로 달려가는 사람이나, 전철에서 신문이 없으면 허전함을 참을 수 없는 사람들이 사라지지 않는 한 종이 신문은 없어지지 않을 것 같다. 종이처럼 얇은 액정 화면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사람들의 생활패턴과 습관에 뿌리를 내린 산업은 외부 환경의 변화에도 무척 강하다. 사람들은 ‘오늘이 며칠인가?’란 질문에는 머뭇머뭇하지만 ‘오늘이 무슨 요일인가?’는 아주 쉽게 대답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의 생활패턴이 1주일 단위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일본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꽃인 만화 산업은 일주일 단위로 이루어지는 사람들의 생활패턴을 아주 적절하게 이용하고 있다.

만화 하면 단행본 만화를 떠올리지만 일본 만화 산업의 중추는 주간지 만화다. ‘소년점프’ ‘소년매거진’ ‘소년선데이’가 주간지 만화 시장의 3대 메이저 잡지인데 매주 300만∼400만부라는 경이적인 판매 부수를 올리고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들 판매 부수의 70%가 매주 같은 장소에서 같은 시간에 팔린다는 점이다. 수요 예측이나 재고 관리 업무를 하는 사람이 들으면 기적 같은 일이라고 할 것이다. 기적의 비밀은 생활패턴에 뿌리를 내렸다는 점에 있다.

세 잡지에 ‘소년’이라는 말이 붙어있지만 실제 독자의 대부분은 20∼30대의 샐러리맨들이다. 이들은 아침에 출근길 전철역 매점에서 만화 잡지를 구입해 전철 속에서 읽고는 선반에 버리고 내린다. 만화를 읽는 것이 출근 문화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 팔리는 것이다.

또한 3대 메이저 만화 잡지는 영리하게도 발매 요일을 달리하고 있다. 같은 사람이 월요일은 A잡지, 화요일은 B잡지라는 식으로 그날 아침에 발매되는 만화 잡지를 사게 만드는 구조다. 세 잡지가 치열하게 부수 선두 경쟁을 하고 있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경쟁잡지가 아니라 동업자 관계라고 보아야 할 것 같다.

주간지 독자들의 대부분은 ‘오늘은 무슨 요일이니까 무슨 잡지를 사는 날’이라는 구매 패턴을 갖도록 유도하고 있는 셈이다. 뒤집어 말하면 주간지는 1주일에 한 번 나오지만 실제로는 발행일의 판매 부수가 승부처인 비즈니스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주간지 중에 무슨 요일에 나오는지를 사람들에게 각인시킨 잡지가 얼마나 될까. 주간지니까 1주일 내내 판매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김지룡 문화평론가 dragonkj@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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