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맛있게]멋있어야 맛있는 「味-美 동거시대」

  • 입력 1999년 9월 30일 19시 43분


“세련된 뤼이비통 스테이크를 드실까요? 디저트로는 보다 현대적인 프라다 아이스크림을?”

4월초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한 카페에서 열린 패션쇼와 디너파티. 세계적 디자이너의 이름을 딴 음식이 패션리더들의 구미를 당겼다.

소비문화의 ‘대표주자’인 패션과 음식의 행복한 결합. 고급패션거리인 청담동과 젊은 취향의 압구정동 패션가게 사이사이엔 음식점과 카페들이 옷만큼이나 패션너블한 인테리어와 메뉴를 자랑한다. 이곳에서 패션쇼라도 열리는 날이면 눈과 혀는 더욱 즐거울 수 밖에.

▼탐미(耽味)에서 탐미(耽美)로

세계 제일의 음식을 꼽으라면 많은 사람들은 프랑스 요리를 댄다.

“미대륙 발견이후 다양한 음식재료가 들어오면서 프랑스 상류층은 ‘어떻게 하면 좀더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을까’하며 소스와 요리를 발명해 냈지만 대중들은 산업혁명 성공 뒤에야 음식의 맛을 추구하기 시작했다.‘포식(飽食)’이 달성된 뒤 ‘탐미(耽味)’를 생각할 여유가 생긴 것이다.”(문화인류학자 주영하씨·이화여대 강사)

그러나 탐미(耽味)만으로는 부족하다. 이제는 탐미(耽美)의 시대. 패션디자이너나 미술가들이 맛을 창조하는 작업에 동참하고 또 성공하는 것도 이 때문.

최근 청담동에 이탈리아음식점 ‘본 뽀스또’를 낸 디자이너 강희숙씨는 “패션이나 요리나 미를 추구한다는 면에서 통한다. 조지 아르마니,랄프 로렌, 이세이 미야케, 하나에 모리 등의 디자이너도 레스토랑이나 카페를 운영한다”고 말했다. 디자이너들의 ‘패션푸드’는 옷 뿐 아니라 음식을 통해 소비자와 패션감각을 공유하려는 시도라는 설명.

이탈리아에서 요리를 배우고 있는 설치미술가 오정미씨는 “아름다운 음악을 듣거나 그림을 보고 음식의 색깔을 생각해 낸다”며 “요리도 ‘오관(五官)’을 만족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퓨전(Fusion)혹은 컨템퍼러리(Contemporary)

패션과 요리는 유행을 탄다는 점에서도 닮았다.

국내에서는 97년말부터 하나둘씩 생겨난 퓨전 레스토랑이 ‘성업중’. 음악이나 패션에서 이질적인 장르를 결합해 새로운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현상을 지칭해온 퓨전이 ‘맛의 문화’에까지 전파되고 있는 것.패션디자이너 정구호씨는 그러나 “패션이든 음식이든 ‘기본’위에 변화와 실험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오정미씨는 신간 ‘퓨전 플러스’에서 퓨전요리 ‘이후’에 대해 얘기한다. “전통을 바탕으로 한 동서양 요리법 중 가장 합리적인 것을 찾아내 진정한 감동을 주는 요리, 즉 컨템퍼러리 퀴진이 나올 때가 되었다.”

음식평론가 송희라씨도 “앞으로는 전통요리에 뿌리를 두고 보편적인 맛을 지닌 특이한 요리가 유행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패스트푸드 대(對) 슬로우푸드

패션푸드건, 퓨전푸드건, 아니면 컨템퍼러리 퀴진이건 ‘감동’과 정성이 없는 음식은 생명력이 짧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예외가 있다. 빠르게 세력을 확장하고 있는 패스트푸드가 그것. 미국의 사회학자 조지 리처는 저서 ‘맥도날드 그리고 맥도날드화’에서 음식 뿐 아니라 산업 제도 소비생활 심지어 인간 심리 등 사회의 모든 부문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맥도날드화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했다.

‘맥도날드화는 효율성을 자랑하나 패스트푸드점 계산대의 긴 줄은 비효율성을 보여준다. 맥도날드는 음식 대신 놀이기구나 화려한 상징물로 즐거움에 대한 환상을 제공한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그것이 인간이성의 발현을 부정하는 합리화된 체계로 돼있다는 것이다.’

7월에 열렸던,인터넷만 가지고 120시간을 살아내는 ‘체험! 인터넷 서바이벌99’행사에서 도전자 5팀의 첫식사는 한결같이 피자였다.최첨단 미디어와 접속된 음식은 ‘빠른 배달’을 자랑하는 서구식이었던 것.

패스트푸드에 대한 반동으로 어머니의 손맛이 밴 전통적 음식,말하자면 ‘슬로우푸드’에 대한 관심이 일기 시작한 요즈음. ‘감동’과 음식을 먹든, ‘효율성’과 즐거움을 먹든 그것은 선택의 문제다. 선택할 자유가 보장되는 한….

〈김진경기자〉kjk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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