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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10월 29일 18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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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게놈의 핵심 요약판 복어〓26일 미국을 중심으로 한 다국적 연구팀은 복어의 게놈 99%를 해독했다고 발표했다. 이제까지 인간을 비롯해 다양한 동식물, 미생물들의 게놈이 해독됐지만 물고기의 게놈이 해독된 것은 복어가 처음.
과학자들이 복어에 집중하는 것은 복어가 인간 게놈의 요약판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게놈이 약 30억개의 염기로 구성된 것에 비해 복어의 게놈은 3억5000만에서 4억개의 염기로 구성돼 있다. 그럼에도 복어의 유전자는 90%가 인간의 유전자와 같다.
유전자 수에 비해 복어 게놈의 크기가 작은 것은 게놈 대부분이 유전자로만 구성됐기 때문이다.
반면 인간 게놈에는 같은 염기서열이 반복돼 아무런 기능을 갖고 있지 않은 이른바 ‘쓰레기 DNA’가 많이 포함돼 있다. 과학자들은 일단 인간의 게놈 염기서열을 모두 해독하기는 했지만 어느 부위가 유전자나 유전자의 발현을 조절하는 부분인지, 아니면 쓰레기 DNA인지는 확실히 알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 복어의 게놈을 인간 게놈과 비교하면 이 문제가 상당 부분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복어 게놈 해독에는 미국 에너지부, 영국 의학연구위원회, 싱가포르 국립생명과학연구위원회와 함께 미국 생명공학기업 셀레라지노믹스와 미리어드지네틱스 등이 참여했다. 공동 연구팀이 해독한 복어는 우리나라와 일본 등에서 잡히는 자주복(Fugu rubripes)이다.
▽독으로 통증을 막는다〓복어 게놈 해독은 인간 유전자에 대한 정보와 함께 신약 개발의 단서도 줄 전망이다. 복어 한 마리는 보통 어른 33명을 죽일 수 있는 테트로도톡신이라는 독을 갖고 있다. 테트로도톡신은 신경 신호전달 물질인 나트륨이온의 이동을 막아 사지를 마비시킨다. 과학자들은 복어의 독을 통증 치료제로 개발하고 있다.
질병에 걸리면 평소 통증 신호를 전달하지 않던 신경세포까지 통증 신호를 전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잘못된 통증신호는 치료약의 효과까지 반감시킨다. 최근 영국 브리검 여성병원의 게리 스트릭하츠 박사는 테트로도톡신으로 잘못된 신호를 보내는 신경세포를 ‘마비’시켜 외상이나 암, 당뇨병 등으로 인한 통증을 완화시킬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캐나다 토론토대의 에드워드 셀러 박사는 테트로도톡신을 이용해 테트로딘이라는 약을 개발해 캐나다 식품의약국의 허가를 받았다. 이 약은 암으로 인한 통증과 마약 중독자들의 금단 증세를 완화시켜 준다.
테트로도톡신에 중독된 사람 중에는 마비 증세만 보이다가 다시 살아나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그러나 사지가 마비된 사람은 죽은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일본에서는 1983년까지도 아직 살아있는 사람을 매장한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카리브해의 아이티에서는 일부러 산 사람을 마비시켜 죽은 것처럼 만든 다음 얼마 후 다시 살려내는 이른바 ‘좀비’ 의식이 거행된다. 하버드대의 대니얼 코언 박사는 이와 같은 성질을 이용해 테트로도톡신을 국소 마취제로 개발하고 있다.
<이영완동아사이언스기자>puse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