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탁환 정재승 소설 ‘눈 먼 시계공’]<30>

  • 입력 2009년 2월 16일 12시 05분


핀셋을 쥔 석범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털모자를 벗기자 두피가 완전히 제거된 두개골이 드러났다. 석범은 두개골을 이리저리 살피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남자인가 보군. 귀 아래쪽 뼈와 후두골이 유달리 돌출되었어. 그런데 솜씨가……"

물러섰던 앨리스가 슬금슬금 다가와선 석범과 마주 앉았다.

"프로페셔널이군."

"프로페셔널이라고 하셨습니까?"

석범은 사체의 목과 뒤통수를 양손으로 감싸고 두개골을 살피기 좋게 천천히 조금만 들어올렸다.

"잘 봐, 남형사! 두개골을 쪼갠 솜씨가 보통이 아냐. 원래 두개골은 17개 정도의 뼛조각들로 만들어지는데, 나이가 들수록 봉합선이 희미해지면서 단단하게 붙지. 하지만 봉합된 부분에 특별히 압력을 가하면 쉽게 크랙이 생겨. 피해자의 두피를 벗겨낸 범인은 봉합선에 정 같이 뾰족한 걸 정확히 대고 망치로 때려 두개골을 쪼갰어. 그래야 대뇌가 손상되지 않거든. 범인은 뇌에 관한 전문지식이 상당한 놈이야."

"근데 이건 뭘까요?"

앨리스가 갈라진 봉합선에서 삐죽 나온 노란 물체를 핀셋으로 가리켰다. 나뭇잎 같기도 하고 꽃잎 같기도 했다. 석범이 핀셋으로 그 끝을 집은 후 당겼다. 노란 꽃잎 하나가 딸려 나왔다. 마르거나 변색되지 않고 오히려 촉촉했다. 핀셋에서 흔들리는 꽃잎을 가운데 두고 석범과 앨리스의 시선이 마주쳤다.

두 사람이 살인사건 현장에서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피해자의 두개골을 절단하고 대뇌와 소뇌를 신경이 연결된 채로 끄집어내는 것이다. 장액으로 가득 찬 '대뇌 캡슐'에 뇌를 보관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스티머스로 재생되는 영상의 질과 양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이 사체는 이상하다. 쪼개진 두개골을 퍼즐 조각처럼 다시 맞춘 후 털모자로 가린 것도 이상하고 봉합선에서 발견된 꽃잎도 이상하다.

"꽉 붙들어."

석범이 짧게 말했다. 앨리스는 핀셋을 내려놓고 능숙하게 사체의 눈 밑을 양손으로 감싸 쥐었다. 다른 사체를 다룰 때는 두 엄지 사이에 콧등이 걸려 좌우로 똑같이 힘을 싣는 중심축 역할을 했는데, 코가 잘려나가는 바람에 구멍 속으로 자꾸 엄지가 빠졌다. 앨리스는 묻어나오는 피떡에 마음이 상한 듯 입맛을 다셨다.

석범이 양 손바닥을 사체의 관자놀이에 댔다. 그리고 열 손가락에 똑같이 힘을 주며 두개골을 밀어 올렸다. 봉합선을 따라 두개골 상부만 떨어져 들렸다.

"웁!"

석범은 저도 모르게 물러섰다. 개구리가 펄쩍 뛰어오르듯, 두개골을 꽉 채운 꽃들이 한꺼번에 넘친 것이다. 하마터면 손에 든 두개골 상부를 놓칠 뻔했다.

뇌가 사라졌다.대뇌와 소뇌가 종적을 감춘 두개골에 색색까지 꽃만 가득 담겼다.

앨리스가 핀셋으로 두개골을 채운 꽃들을 하나하나 끄집어내며 지껄였다.

"정말 없네, 정말!"

석범은 텅 빈 두개골 안을 노려보았다.

뇌를 떼어내고 꽃을 대신 채운 사건이 있었던가? 누가 무엇 때문에 이런 참혹한 짓을 벌인 걸까? 혹시 우리 팀을 파악한 자의……? 아니다. 그럴 리 없다. 스티머스의 존재를 아는 이는 보안청에서도 열 사람을 넘지 않는다.

석범은 왼 무릎을 세우고 일어섰다.

사방에 활짝 핀 꽃들을 휘 둘러보았다. 여기저기 뿌리 채 뽑힌 꽃나무들이 말라비틀어져 흩어졌다. 범인은 이곳에서 꽃나무를 뽑고 꽃잎을 떼어 모았다. 살인자의 짓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한가로운 풍광이다.

"왜 하필 여길까? 24시간 내내 감시 카메라가 돌아가는 곳인 줄 몰랐을까? 두개골을 쪼개고 뇌를 꺼낸 후 꽃으로 채워 털모자를 씌운 다음 다시 꽃으로 사체를 덮기에는 최악의 장소인데 말이야."

앨리스가 끼어들었다.

"일 년에 딱 두 번 장비 점검을 위해 10분 23초 씩 촬영이 중지된대요. 그땔 노린 겁니다."

10분 23초!

그 많은 일을 혼자 해치우기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사체 주변에서 발견된 발자국은 두 쌍 뿐이다. 하나는 피해자의 것이고 또 하나는 범인의 것이라면…… 단독범이란 이야기다. 모순이다.

"뭐라고?"

앨리스의 고함을 듣고 석범은 뒤돌아섰다.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방금 특별수사대에서 온 급보를 전했다.

"개꼬리를 찾았답니다."

"개……… 꼬리! 그 개꼬리?"

사이보그 거리 어두운 뒷골목이 떠올랐다. 걸쭉한 침을 똥개처럼 질질 흘리던 반인반수족! 앨리스가 짧게 답했다.

"맞습니다. 헌데 죽었답니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