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저편 422…1944년 3월 3일(10)

  • 입력 2003년 9월 22일 18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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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하품 한 번 하지 않고 잠에 빠졌고, 바람도 구름을 나몰라라 잠들어버렸는데 휭-휭- 바람의 콧소리에 우윳빛 구름이 기듯이 흐르고, 태양은 숨도 쉬지 않고 파란 하늘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조금씩 조금씩 떠오르고 있다.

빛에 넘치는 파란 하늘 저쪽에서 폭 폭 폭 하고 기적소리가 들린다. 칠탄산 기슭으로 뭉게뭉게 검은 연기가 퍼지고, 쉭 쉭 쉭 쉭, 증기음과 함께 검은 객차를 이끈 기관차가 모습을 나타내자, 밀양역 선로가 덜커덩, 덜커덩 울리기 시작했다. 덜커덩, 덜커덩, 덜컥 덜컥 덜커덩, 쉭 쉭, 쉭 쉭, 쉭 쉭, 쉭 쉭….

객차란 객차는 얼굴과 손과 다리와 배낭과 고리짝으로 가득가득 넘쳐나고, 석탄차와 객차 지붕에도 객차 사이사이 계단에도 조선의 남자들이 미어 터졌다. 승객들은 창문에 다리를 걸치고 지붕 위로 기어 올라가 짐을 다리 사이에 끼고 걸터앉았다. 딸랑 딸랑 발차 종이 울리고, 역무원이 빨간 깃발을 흔들자, 쉭 …쉭 …덜컹, 기관차가 연기를 뿜어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때 하얀 셔츠에 회색 바지 교복을 입은 청년이 탁 탁 탁 탁 뛰어와 창틀로 뛰어오르며 지붕 위에 있는 남자에게 학생 가방을 건네는 순간, 오른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뭉글뭉글 피어오르는 증기 속에서 아랑이 울음을 터뜨리려는 어린애처럼 울상을 짓고, 피로 물든 오른 다리를 끌어안았기 때문이다. 쉭… 쉭… 쉭…가지마! 가면 안 돼! 쉭… 쉭…쉭, 쉭, 쉭 쉭, 쉭쉭쉭쉭.

“빨리 타라! 떨어지겠다.”

“다리에 쥐가 나서….”

지붕 위 남자들 셋이서 청년을 끌어올리자, 밀양역 홈이 열차의 꽁무니로 멀어졌다.

홈에 홀로 남은 아랑은 뭉게뭉게 흘러, 구름과 구별되지 않는 연기를 망연히 쳐다보았다. 지금 돌아보면 내 모습이 보일 텐데, 그는 절대 뒤돌아보지 않는다. 앞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앞만 보고, 아이고!

우근은 고개를 숙이고 터널 속 어둠의 한 점을 응시하였다. 그것은 빛이 아니라, 어둠 속에서 응결된 어둠이었다. <제국주의의 쇠사슬은 반드시 절단해야 한다.> 그 말에 우근은 자기 안에 있는 모든 자리를 내주었다. 폭 폭 폭, 폭 뽀오오오-!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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