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저편 244…입춘대길(5)

  • 입력 2003년 2월 16일 19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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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근이와 둘이 가게에 나가 고무신을 팔면서, 상을 당하여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느냐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내가 고개 숙여 인사를 하니, 우근이까지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게 되었다. 그 사람은 우근이가 보는 앞에서 쓰러졌다. 화로 옆 부근이라고 들었다. 나는 그 자리에 있지 않았으니, 그 사람과 그 아이의 유품이 없는 유일한 장소인 가게로 도망칠 수 있지만, 저 아이는 보나마나 아버지가 쓰러졌을 때의 광경을 떠올리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태워버릴 수는 없다. 이 가게에서 돈을 벌고, 이 집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으니.

그 사람처럼 등을 구부리고 동그란 의자에 앉아, 가끔씩 화로에 손을 쪼이면서 잰 걸음으로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그 사람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그 사람을 대신하는 것도 아니고, 그 사람으로 바뀐 것도 아니고, 그 사람이 바라보던 것처럼 바라보는 것하고도 다르다. 그 사람이 등뒤에 서서 나를 응시하고, 뒷통수에 꽂히는 그 사람의 시선이 내 눈알을 통과하여 내 시선과 겹치는 것이다.

운명과 동시에 온 가족이 길거리로 나가 아이고, 아이고 곡을 했다. 우철은 안방문을 떼어내 윗목에 놓고 그 위에 짚을 네 단 깔고 시신의 머리를 북동쪽으로 하여 눕혔다. 나는 햇솜으로 귀와 콧구멍을 막고 턱을 받치고 입을 닫았다. 우철이 마당에 서서 그 사람이 입고 있던 속저고리의 등판을 감아 잡고, 아버님, 복! 복! 복! 돌아보이소, 옷이라고 갖고 가이소! 하고 속옷을 지붕으로 던지며 혼부르기를 했다.

우철은 그 사람의 옷을 전부 벗기고, 쑥을 삶아낸 물에 천을 담궈 짜서는 위에서부터 닦아내려갔다. 머리, 목, 가슴, 배, 겨드랑이, 어깨, 두 팔, 팔꿈치, 손, 등, 허리, 엉덩이, 성기, 고환, 항문, 허벅지, 무릎, 정강이, 발목까지 내려갔을 때, 입을 열었다.

어머니, 아버지는 화장합니다.

놀라 그 사람의 얼굴을 보았지만, 보인 것은 솜이 틀어박힌 콧구멍이었다.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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