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저편 243…입춘대길(4)

  • 입력 2003년 2월 14일 18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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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다가 깨는 것은 잠자는 것보다 더 두렵다. 한숨도 못 잔 채 아침을 맞으면 머리가 깨질 듯이 잠이 오고, 잠자는 동안만은 두 사람의 죽음을 잊을 수 있다. 꿈속에서는 그 사람과 그 아이가 살아 움직인다. 잠에서 깨어난 순간은 아직 그것이 꿈인 줄 모르는데, 몇 번인가 눈을 깜박이고 아침 햇살이 눈에 들어오면 얼어붙은 발을 따스한 물에 담가 감각을 되살리는 것처럼, 슬픔과 두려움이 자기 안에서 밀려 올라온다. 그리고는 이소원은 강에 빠져 죽었습니다, 이용하는 단독으로 죽었습니다, 하고 두 사람의 죽음을 스스로 선언한다. 잠에서 깨어날 때마다 두 사람의 죽음은 새로워질 뿐, 절대 과거사가 되지 않는다. 잠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고, 잠에서 깨어남은 고통에 지나지 않는다.

고리짝에 두 사람의 유품을 정리하자, 두 사람의 부재가 고스란히 드러나 집안에 있기가 어려워졌다. 엊그제도 어제도 가게에서 지냈다. 며느리가 밥상을 날라다 주었고, 입도 대지 않은 것을 보고는 아무 말 없이 상을 물리고 잣죽과 미음을 다시 갖다 주었다. 잣죽과 미음은 넘길 수 있지만 배가 부르도록 먹지는 못했다. 밥주머니를 먹을 것으로 채우면, 두 번 다시, 아무것도 먹을 수 없는 두 사람에게 죄스럽다. 그럼에도 시간에 끌려 배고픔을 느끼고는 한 숟가락 두 숟가락 잣죽을 입으로 가져가는 자신을 용서할 수 없어, 어제는 절반도 못 먹고 화로에다 토해내고 말았다.

그 사람도, 그 아이도 장이 서는 날에 갔다. 시간의 흐름을 증명하듯 장이 서는 날은 닷새마다 돌아온다. 그 사람이 가고서 아홉 번, 그 아이가 가고서 스물다섯 번, 며느리는 애 키우랴 집안일 하랴 바빠서 내가 가게에 나와 있다. 그렇게 일해대면 몸이 남아나겠나, 엄마, 나하고 인혜하고 꾸려나갈 수 있으니까네, 좀 쉬라, 엄마. 지금, 엄마까지 쓰러지면 나는 우예하란 말이고, 우철은 그렇게 말하지만 팽이처럼 일하지 않으면, 빙글빙글, 속도가 떨어져 기울면, 채로 쳐서 핑핑, 지금은 쓰러질 수 없다, 차라리 죽을 수 있으면 편하겠지만, 나는 우근의 엄마다, 우근이는 아직 다섯살, 아버지와 누나를 잃은 그 아이에게서 엄마까지 빼앗을 수는 없다, 내게는 죽음조차 금지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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