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 저편 232 … 강의왕자 (8)

  • 입력 2003년 2월 2일 19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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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왜 며느리가 내 병 수발을 들고 마누라는 식사 준비를 하는 것인가? 내 아내다. 아내가 남편의 병 수발을 들어야 마땅하지 않은가. 아내는 나를 싫어하고 있다. 말은 하지 않지만 그 일을 아직도 가슴에 담고 있는 것이다, 그 일을.

문이 스르륵 열리고 인혜가 청국장을 담은 뚝배기와 물그릇을 얹은 상을 들고 들어왔다. 인혜는 시아버지와 마주 앉은 자세로 오른 손을 등에 두르고 왼손으로 손을 잡아당겨 안아 일으키고는 물그릇을 입에 갖다댔다. 용하는 뜨거운 물이라도 마시듯 한 모금 홀짝이고는 또 기침을 했다. 인혜가 등을 쓸어주고 젖은 입가를 닦아주자 용하는 뚝배기에서 피어오르는 김을 들이마셨다.

“아범…불러라…새벽까지…살아…” 가래가 엉켜 말까지 끈적거리고, 말과 말 사이가 제대로 분리되지 않는다.

“아버님, 무슨 소리를 하시는 깁니까? 지금은 힘들고 괴롭지만도, 반드시 좋아질 겁니다. 단독은 쉬 낫는 병이라고 의사도 그랬다 아입니까”

용하는 집게손가락을 펴고 흔들었다.

“아범을 불러와라”

용하는 인혜가 나가자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고 손녀를 바라보았다. 태어난 지 2개월…첫손녀…이 아이의 기억에는 흔적도 남지 않는다…그런 생각을 하면 좀 서글프다. 할배가 이런 사람이었다는 흔적 정도는 남기고 싶다. 하지만, 이미, 시간이 없다. 이제 곧 숨이 끊어진다. 의사야 뭐라고 했든, 내 몸은 내가 제일 잘 안다. 숨이 붙어 있는 동안에…맏이에게…이씨 집안의 주인이 될 우철이에게….

안방으로 들어온 우철은 아버지의 얼굴 위로 고개를 숙였다.

“아버지”

떨리는 혀 위에서 말이 우왕좌왕하다가, 이제 한 걸음이면 목소리가 되려는 차에 입안에서 기진맥진하여 숨과 함께 목구멍 깊은 곳으로 잠겨버리고 말았다.

“아버지, 괜찮습니까?”

“컥…컥…” 괴롭다…숨을 쉴 수가 없다…가래 덩어리가 목구멍에 걸려 있다.

우철은 아버지를 안아 일으키고 입가로 손바닥을 내밀었다.

“아버지! 가래가 걸리면 큰일입니다! 펫! 펫!”

용하는 아들의 손바닥에 커다란 가래 덩어리를 뱉어내자, 후우, 휴우, 후우, 휴우, 하고 심호흡을 몇 번 하고, 말을 그러모으듯 입술을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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