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여자의 사랑(70)

  • 입력 1997년 3월 16일 09시 13분


가을이 깊어지는 동안 〈25〉 『뜻밖이군요. 뭐라고 말해야 할지…』 그가 잠시간의 침묵 끝에 입을 열었다. 『많이 놀랄 거라고 생각했어요. 저도 제가 어떻게 여기에 오게 된지도 잘 모르겠고…』 그렇다고 정문에서 오래도록 이야기를 할 수도 없었다. 이렇게 찾아왔다면 단순히 얼굴만 보기 위해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저녁 식사 시간이 끝난 다음이긴 하지만 밖에서 저녁을 먹고 들어오는 학생들도 적지 않았다. 이 시간 이곳으로 여자가 찾아왔다는 것만으로도 안에선 충분히 얘깃거리가 되고 있을 것이다. 거기다 밖에서 들어오는 그가 여자와 함께 정문에 서 있는 걸 보게 된다면 그 이야깃거리는 금방 두 배 세 배로 늘어날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그것이 두려운 것이 아니었다. 오래 전 정말 어떤 운명처럼 스치고 지나갔던 여자가 이렇게 불현듯 찾아왔을 때, 그는 지금 이것이 현실 속의 자기의 일인지, 아니면 어떤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조차 믿을 수 없는 그런 심정으로 여자를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제가 잘못 온 것 같군요』 여자가 말했다. 그만큼 그의 얼굴이 굳어 있었다. 『잠시 밖에 나가 이야기를 하죠. 여기 서 있을 수도 없고…』 그는 여자보다 몇 걸음 앞서 걸었다. 길 맞은 편에 찻집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곳보다 먼 곳으로 걸어갔다. 여자가 뒤를 따라왔다. 길을 걸으면서도 그는 아직 뭐가 뭔지 모를 마음이었다. 그런 마음으로 그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면 여자는 그를 따라 걸음을 멈추었다. 『그곳엔 다시 가지 않았습니까?』 다시 몇 걸음 앞서 길을 걸으며 그가 물었다. 그 일이 있고, 두 달 만에 그는 제대를 했다. 그때 여자에겐 언제 제대할 거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땐 서로 그런 이야기를 할 사이들도 아니었다.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하듯 여자의 몸속과 머릿속에 남아 있는 한 남자의 기억을 훼손시키고, 두 사람은 그대로 잠이 들었다. 그리고 새벽에 남자보다 먼저 일어난 여자가 남자 모르게 방을 나갔다. 그땐 그것이 전부였다. 『……』 여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도 더 묻지 않았다. 그는 길가의 한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여자가 뒤를 따라 들어왔다. <글:이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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