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를 다시보자]<2>벽화로 본 고구려…(1)미스 고구려

  • 입력 2004년 1월 19일 18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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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진’황해도 안악군 안악 2호분 안 칸 서쪽 벽에 그려진 ‘비천상’의 모사도(평양미술관 소장). 북방형의 청초한 미인으로 고구려인들이 이상형으로 꼽은 얼굴이다. -사진제공 이태호 교수
‘고구려 진’
황해도 안악군 안악 2호분 안 칸 서쪽 벽에 그려진 ‘비천상’의 모사도(평양미술관 소장). 북방형의 청초한 미인으로 고구려인들이 이상형으로 꼽은 얼굴이다. -사진제공 이태호 교수
《고구려 고분벽화의 가치는 뛰어난 회화미나 과학적 제작기법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벽화는 1400∼1600년 전 고구려인들이 무엇을 먹고 어떤 옷을 입었는지, 여가생활은 어떠했고 교통수단은 무엇이었는지를 생생히 증언하는 ‘타임캡슐’이기도 하다. 필자 이태호 교수는 2부에서 고구려 고분벽화를 통해 고구려인들의 생활상을 밝히고 그것이 현재 우리 삶 속에 어떻게 녹아 있는지 소개한다.》

최근 20년 사이 한국인, 특히 여성의 얼굴형이 전반적으로 많이 바뀌었다. 얼굴이 갸름하며 턱이 좁고 뾰족해지면서 광대뼈와 눈두덩의 뼈가 덜 도드라진다고 한다. 그런데다 성형수술로 눈이 깊고 코가 높은 서구형 취향으로 흐르고 있다.

그래서인지 지난해 대구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에 참가한 북한의 미녀 응원단은 예스러운 미인상으로 인기를 끌었다. 나도 그들을 보러 부산과 대구로 내달려간 사람 중의 하나였다. 1998년 평양을 방문했을 때 스쳤던 여성들의 사근사근한 얼굴이 떠올랐고 혹여 고구려 고분벽화의 여인들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 미(美)는 남방계의 건강미인

고구려 고분벽화에는 많은 여인이 등장한다. 묘 주인의 부인인 왕비나 귀족 여성을 비롯해 무용수와 악사, 그리고 시녀 등 다양하다. 이들은 황해도 안악군에 있는 안악 3호분의 왕비상과 궁중여인을 제외하고는 뚱뚱한 여인이 드물다. 대체로 키가 크지 않고 턱이 둥근 얼굴형을 보여준다. 또 사후세계의 공간이라는 무덤의 특수성 때문인지 미소 짓는 모습을 찾기 힘들다. 그럼에도 벽화에는 고구려의 여성상과 미의식이 잘 표출되어 있다.

벽화를 제작한 화가가 낮은 신분인 데다 남자여서일까. 호사스러운 옷차림의 상류층 여인은 자태가 당당하나 멋있게 그려지진 않았다. 그보다는 서민층 여성이나 어린 소녀를 한층 돋보이게 그렸다.

고분벽화에 등장하는 여성들을 통틀어 ‘미스 고구려’의 진선미(眞善美)를 가려 보자.

먼저 건강미인의 으뜸은 중국 지린(吉林)성 퉁거우(通溝) 지역의 5세기 벽화고분인 무용총에서 음식상을 들고 부엌문을 나서는 두 여인일 법하다. 왼편 벽 쪽으로 걷는 여인들의 방향으로 보아 묘 주인이 서역의 두 손님을 맞이하는 벽화와 연결된다. 앞 여인은 다리가 달린 소반을, 뒤쪽 여인은 평반을 들고 따르고 있다.

검은 점의 물방울무늬가 있는 흰색과 붉은색 두루마기 형태의 겉옷차림이다. 겉옷의 가장자리에는 검은 띠가 둘러져 있고 허리띠로 묶여 있다. 그 밑으로 흰 주름치마와 붉은색 바지를 살짝 드러내고, 버선 같은 신발을 신고 있다. 귀빈을 접대하는 맵시 있는 차림새다.

두 여인은 하체가 튼실하고 키가 작다. 둥글납작한 얼굴에 머리를 올리거나 뒤로 묶은 맨머리의 맵시는 함박꽃을 연상시킨다. 무던하고 후덕하게 자랄, 젊고 건강한 10대 후반∼20대 초반의 남방계 미인형이다. 일하는 여성의 아름다움을 갖추었으니 미스 고구려 ‘미(美)’ 쯤이 어떨까.

● 선(善)은 북방계 시녀, 진(眞)은 비천상

다음으로 청순한 소녀상이 떠오른다. 5∼6세기에 그려진 남포시의 수산리 고분벽화에서 찾을 수 있다. 안 칸 서벽 상단에 무덤 주인 부부가 가족과 함께 나들이를 하는 장면 가운데 부인의 양산을 받쳐 든 시녀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고구려 벽화는 고대 회화의 일반적인 경향으로 신분에 따라 인물을 크거나 작게 그렸다. 귀부인의 허리춤밖에 안 차는 키의 소녀는 흰 주름치마에 긴 저고리 차림으로 10대 초반쯤으로 보인다.

벽화의 손상이 심하지만 치마의 잔주름 처리가 움직이는 자세의 리듬감을 살려 화가의 묘사력이 돋보인다. 턱이 둥글고 달걀형인 갸름한 소녀의 얼굴은 북방형에 속한다. 마치 달밤에 활짝 핀 하얀 박꽃처럼 아리따운 미모이고 수줍어 고개를 숙인 수선화 향기가 물씬 난다. 양산의 무게에 개의치 않고 언제나 생글거릴 앳된 표정에는 착하디착한 심성이 그대로 우러나 있다. ‘미스 고구려 선(善)’ 으로 선정하고 싶다.

5∼6세기 고구려인들은 이런 참한 소녀상을 기준 삼아 지고의 이상미(理想美)를 추구한 모양이다. 안악군 안악 2호분에 보이는 안 칸 서벽의 비천상(飛天像)들이 눈을 번뜩이게 한다. 비천은 연꽃 수반(水盤)을 들고 하늘을 헤엄친다. 하늘에 떠서 두 손으로 연꽃잎을 뿌리는 자연스러운 자태이다.

두광(頭光)을 먹으로 강조한 얼굴에 검은머리를 붉은 천으로 감아 곱게 올리고 있다. 짙은 눈썹의 또랑또랑한 눈에 입을 반쯤 벌린 표정은 그야말로 뇌쇄적이기까지 하다. 허리 부분이 지워졌지만 바지를 입은 맨발의 뒤꿈치를 보면 돌 지난 아기의 보드라움이 느껴진다. 꽉 깨물어 주고 싶은 충동이 들 정도다. 고구려 사람들이 하늘신의 축복이 내리기를 염원하던 것을 이같이 소녀형의 비천상으로 묘사해 놓았다. 단연 미스 고구려 ‘진(眞)’이다.

그런데 여인상에 구현한 미의식은 ‘고구려’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다. 고구려의 여인들이 억세고 적극적일 듯하지만 선입견과 달리 소담하면서 여성스럽다. 이에 걸맞게 선묘법이나 색감도 섬세하고 유연하다. 집안일을 돌보며 자식을 키우던 전통적인 우리네 어머니의 소녀시절 마음결 같다.

명지대 미술사학과 이태호교수



▼‘미스 中國’은 서시-양귀비형… 고구려와 달라▼

지난해 8월 대구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에 참가한 북한 응원단. 둥그스름한 턱선이 고구려 벽화에 나타난 미인들과 닮았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중국에서는 전통적으로 미인을 크게 두 유형으로 나누었다. 하나는 춘추시대 서시(西施)로 대표되는 ‘버들가지형’으로 호리호리한 미인이었고, 다른 하나는 양귀비(楊貴妃)형의 풍만한 당나라 미인이었다.

그러나 고구려 고분벽화에는 서시형이나 양귀비상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중국의 구분법이 잘 맞지 않는 것이다. 통상 한(韓)민족은 유목민 계열의 북방계와 농경민 계열의 남방계, 그리고 그 중간형인 귀화계 세 유형으로 분류된다.

북방계는 대체로 체격이 크고 얼굴이 갸름하며, 남방계는 상대적으로 체격이 작고 얼굴이 넓적한 편이다. 고구려 벽화에 표현된 여인들을 보면 남방계나 귀화계로 추정되는 얼굴이 많다.

무용총의 두 여인은 퉁거우 지방의 그림인데도 이마가 좁고 얼굴이 각진 남방형에 가깝다. 이에 반해 평양 수산리 고분벽화의 소녀상과 안악 2호분의 비천상은 북방형의 청초한 이미지다. 특히 수산리 고분의 소녀상은 시원한 이마에 가늘고 둥근 눈썹과 큰 눈의 미인상이다.

현재의 미인형에 가까우면서도 턱이 원만해 요즘 여성들의 뾰족한 턱에 비해 훨씬 예쁘다. 현대의 미의식이 이미 1500년 전에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정은령기자 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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