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형교수의 아이키우기]유아시설 '성추행'

  • 입력 2001년 2월 14일 18시 44분


최근 중학생이 유아들을 수십 차례 성폭행한 일이 있었다. 가해자는 13세로 미성숙한 아동으로 간주되어 처벌되지 않았다.

몇 년 전 경기 안산시의 한 유아 기관에서 원장이 여러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성적 학대행위를 하는 끔찍한 일이 일어났었다.

외국에서도 유아시설에서 가끔 성적 학대사건이 일어나지만 비정상적인 성인들이 방어할 힘이 없는 어린이에게 성폭행한 일에 대해서는 법정에서 극형으로 처벌한다.

교사는 어린이를 세상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야 하는 의무와 책임을 진 사람이다.

예를 든 두 사건에서 보듯 우리 사회에서는 교사의 책임을 묻지 않는다. 안산시의 경우 유아시설의 폐쇄명령은 있었으나 원장의 책임을 추궁하지 않았다.

유아기 어린이가 당한 성적 학대 경험은 신체적 고통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 때 받은 심리적 상해는 상당히 오래 지속되고 피해자 부모들은 원망과 분노를 억누를 길이 없다.

눈물을 삼킨 채 아이들이 악몽의 기억에서 빨리 벗어나기만 기다리는 부모의 심정을 우리가 어찌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안산시 사건의 경우 상해를 입은 유아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간 이후의 행적을 추적 조사한 결과 아이와 부모의 고통이 수년간 지속됐다.

이들 사건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행정 제도의 맹점이 여실히 드러난다.

중앙부처 담당공무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행정규제 완화라는 명분에 밀려 유아시설 설립이 인가가 아닌 신고 사항으로 바뀌었고 원장(시설장)의 자질을 법적으로 강화하자고 주장한 유아 전문가들의 의견도 무시됐다.

미국에서는 아동을 대상으로 성학대를 한 사람들을 특수위험자로 관리하고 시설장을 임명할 때 철저한 신원조회를 통해 부적격자를 가려낸다.

이같은 제도는 우리도 손쉽게 도입해도 좋으련만 “남을 의심하는 것은 부도덕하다”는 인정주의에 묻혀 거부되곤 한다.

안산의 유아시설을 운영하던 원장은 무자격자였다. 자격이 있었던 원장으로부터 유아원을 인수했던 것이다.

앞으로도 이와 유사한 사건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지만 우리가 믿고 매달릴 곳은 교사들이다. 교사들은 어린이를 위험으로부터 지켜내는 파수꾼으로서의 소명을 충실히 이행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도 어린이의 안전과 권리를 우선적으로 보장할 수 있도록 법을 강화할 시점이 되지 않았을까.

이순형(서울대학교 아동가족학과교수)ysh@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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