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엽교수 이미지로 보는 세상]인간 복제… 복제 인간…

  • 입력 2001년 7월 3일 19시 00분


“하나님이 자신의 이미지대로 인간을 창조하시니… 이는 여섯 번째 날이니라.”

성경의 창세기 1장에서는 신이 인간을 창조하는 여섯 번째 날의 모습이 펼쳐지지만, 최근에 비디오로 출시된 아널드 슈워제네거 주연의 영화 ‘6번째 날’에서는 과학기술이 인간을 복제해 내는 미래의 모습이 그려진다.

무대의 한편은 미래의 인간 복제 공장. 여기서는 인간을 완벽하게 복제해 낼 수 있다. 예컨대 아담과 눈, 코, 다리 등 육체뿐만 아니라 가치관, 애정관, 종교관 등 정신까지도 완벽하게 똑같은 복제 아담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영화 ‘6번째 날’은 이런 인간 복제가 낳을 수 있는 여러 사례들을 보여준다. 이 영화를 참고로 하여 인간 복제와 관련된 다음의 두 가지 사례들을 생각해 보자.

사랑하는 사람이 불의의 사고로 죽어 영안실에 있다는 전갈을 받았다. 사고 후 72시간 내에는 육체 및 정신 모두 완벽한 복제가 가능하다고 한다. 복제 비용이 큰 부담이기는 하지만, 주저 없이 복제를 요청했다. 몇 시간 후, 그 이가 복제실 문 밖으로 환하게 웃으며 걸어 나왔다. 모든 것이 예전과 똑같다. 그 이의 건강한 육체도, 우리의 사랑도.

오늘은 내 생일. 저녁에 생일 파티가 있으니 늦지 말라는 아내의 전화가 걸려왔다. 평소보다 조금 일찍 직장을 나섰다. 반가와 할 아내와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문을 따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벌써 누군가가 생일 케이크 촛불을 훅 불어 끄고 있는 중이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 누군가는 ‘나’였다. 촛불을 끄는 나의 모습을 내가 바라보며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인간 복제란 첫 번째 사례의 경우에서처럼 우리에게 큰 기쁨을 가져다 줄 수도 있으며, 두 번째 사례에서처럼 큰 재앙을 몰고 올 수도 있다. 이렇듯 명암이 극단적으로 엇갈리는 경우가 발생하므로, 어떤 한 사례를 편들어 인간복제에 대한 논의를 칼로 두부 자르듯 명료하게 해결할 수는 없다.

그러나, 명료한 해답이 어렵다는 이유로 충분한 논의를 미룰 수만은 없다. 핵이나 컴퓨터가 그러했던 것처럼, 인간복제도 머지 않아 우리 문명의 중심으로 떠오를 것이기 때문에 그 기술을 제어할 나름의 기준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과학기술이 절정에 오르는 여섯 번째 날 이후, 우리 또한 일곱 번째 날에 안식할 수 있을까. 아니면 생일 케이크의 촛불을 끄기 위해 나와 내가 싸우고 있을까.

김진엽 (홍익대 예술학과 교수)jinyupk@wow.hongi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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