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아기공룡 둘리' 40대 노동자로 어른이 됐다면…

  • 입력 2004년 2월 26일 18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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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공룡 둘리’(최규석)에서 40대 공장 노동자로 나오는 둘리. 작가는 “원래 명랑한 소재를 진지하게 그려 코미디를 의도했던 작품”이라며 “많은 사람들이 슬프게 받아들이는 것은 그만큼 둘리를 사랑하기 때문인 듯하다”고 말했다. 그림제공 최규석
단편 ‘공룡 둘리’(최규석)에서 40대 공장 노동자로 나오는 둘리. 작가는 “원래 명랑한 소재를 진지하게 그려 코미디를 의도했던 작품”이라며 “많은 사람들이 슬프게 받아들이는 것은 그만큼 둘리를 사랑하기 때문인 듯하다”고 말했다. 그림제공 최규석
‘아기공룡 둘리’가 살아 있다면 지금쯤 40대 노동자가 됐을까?

한국 아동만화의 대명사인 ‘아기공룡 둘리’(김수정)의 둘리가 40대 공장 노동자가 된 이야기를 담은 만화 ‘공룡 둘리’(최규석)가 최근 ‘독자만화대상 2003’ 단편부문 수상작으로 뽑혀 화제다. 둘리와 그의 친구인 타조 ‘또치’, 외계인 ‘도우너’, 아기 ‘희동이’의 슬픈 후일담을 그린 이 만화는 ‘아기공룡 둘리’에 대한 오마쥬(Homage·존경의 표시) 작품으로 만들어졌다. 이는 ‘아기공룡 둘리’의 성인만화적 요소에 착안한 것.

○ 만화가 최규석씨 ‘둘리와 그 친구들’ 후일담 그려

사실 둘리 마니아들은 둘리의 가족관계와 사회풍자로 미루어 ‘아기공룡 둘리’를 아동만화로 보지 않는다. 만화가 겸 평론가 정경아씨도 이론서 ‘만화세계 정복’(길찾기)에서 둘리가 성인만화라는 견해를 밝힌 바 있다.

둘리가 다시 화제를 모으자 김수정씨의 원작 ‘아기공룡 둘리’는 5월 ‘아동용’과 ‘일반용’의 두 가지로 복간될 예정이다. ‘공룡 둘리’도 3월 최씨의 단편집에 실려 발매된다.

‘공룡 둘리’의 40대 노동자 둘리가 ‘아기공룡’ 시절을 회상했다. (도움말:김수정 최규석)

어이구, 이놈의 어깨! 이제 노가다도 못해먹겠네. 어릴 적 친구들이 보고 싶다. 하지만 ‘공룡 둘리’에서 보듯 또치는 동물원에, 도우너는 과학연구소에 팔리고 희동이는 사람을 때려 감옥에 갔어. 돌이켜 보면 나도 참 힘들게 살아왔어. 난 단순히 명랑만화 주인공이 아니었거든.

내가 갇혀 있던 빙산이 녹아 잠에서 깨어난 건 1983년 4월 22일이었어. 만화월간지 ‘보물섬’에서 날 만난 거, 기억하지?

공룡을 주연으로 삼은 것은 당시 엄격한 심의기준 때문이었대. 어린이가 어른한테 대들고 반말을 쓰거나, 어른이 어린이를 때리는 것을 그릴 수 없었다나. 김수정 아저씨는 인간이 아닌 동물이라는 핑계로 심의를 피해가며 나를 통해 현실을 보여줬어.

○ “꿈을 잃으니 초능력도 잃었어요”

그래서 ‘아기공룡 둘리’는 보통 아동만화와 달리 교훈적이지는 않아. 난 ‘착한 어린이’가 아니었지. 길동 아저씨한테 얻어맞더라도 할 말 다 하잖아? “호이!”하고 초능력을 부려 내 다래끼를 아저씨 눈에 옮겨 붙이고 말이야.

어른 팬들은 나와 길동 아저씨의 싸움은 ‘부자(父子)간 갈등’이고, 그것이 도저히 아동만화 같지 않다나. 내가 “아저씨가 위궤양에 걸려 천국으로 가면 그때부터 나는 먹는 게 살로 갈 거야”라고 말했다가 뺨을 연거푸 맞는 부분 같은 거.

그렇지만 나도 이만큼 크고 나서야 아저씨를 이해하게 됐어. 직장에서 시달려 쉬고 싶은 ‘만년 과장’을 자꾸 귀찮게 했던 게 지금에는 후회돼.

우린 어른들의 문화에 젖어들기도 했어. 돈이 궁해 안마시술소 아르바이트를 할 때 어떤 복부인이 “유혹하지 마, 난 제비 같은 거 안 키워”라고 했지. 나도 끈질기게 “참새는 어때요?”라며 다리를 계속 주물러줬지.

이번에 날 공장 노동자로 그린 최규석 아저씨는 “‘아기공룡 둘리’는 슬픈 작품”이라고 하더라. 엄마를 잃은 내가 길동 아저씨한테 핍박받고, 집을 떠났다가 “갈 데가 없다”며 울면서 돌아오는 결말도 그렇지.

‘공룡 둘리’에서는 가정이라는 보호막조차 사라졌어. 밑바닥 인생들이 잘 살아보기 너무 어려운 세상…. 그래서 도우너는 길동 아저씨에게 사기를 쳤고 아저씨는 화병으로 죽었어. 게다가 희동이까지 감옥에 들어가니까 아저씨의 아들인 철수는 돈이 필요해 도우너와 또치를 팔아버리지. 어릴 적 꿈과 재능들을 어른들이 제대로 키워주기만 했어도…. 하지만 난 이제 초능력도 못 써.

예전 친구들이 그리워. 책이 나오면 꼭 다시 만나고 싶어. 그때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이 그렇듯, 익숙하면서도 새로울 거야.

그림제공 둘리나라

조경복기자 kath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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