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紙上 배심원평결]유아용 영어교재 구입

  • 입력 1998년 5월 27일 19시 40분


▼ 남편 ▼

최영준(29·SK건설 국제금융팀대리)

혼자 두 아이를 돌보느라 선진이의 고생이 말이 아닙니다. 그런 가운데 한글이다 영어다 모두 가르치겠다고 애쓰는 걸 보면 정말 대견해요.

지난해 가을에 ‘플래시카드’로 한글을 가르치더니 요즘은 용원이가 쉬운 그림책쯤은 혼자 읽더라고요. 전공 때문인지 아내는 영어교육에 특히 욕심이 많아요. 알파벳을 가르치고 난 뒤 얼마전 비싼 비디오교재를 구입했더군요.

영준이의 교재 그림책 학습지 값으로 드는 돈은 한달 평균 10만원. 아직 감당하지 못할 수준은 아닙니다. 하지만 회사 선배들 말이 ‘조기영어교육’에 드는 돈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는군요. 교재를 ‘단계별’로 사주다가 영어유치원에 보내게되고 나중에 회화과외까지 시키다보면 한도 끝도 없다는 겁니다.

용원이가 영어를 한마디씩 할 때면 저 역시 기특하게 생각해요. 하지만 우리말이 또래에 비해 약간 더딘 것이 영어 때문은 아닌가 의심이 가요. 우리말을 할 때 발음이 조금씩 ‘꼬이기도’ 합니다.

많은 교육학자들이 너무 일찍 시킨 영어교육의 부작용을 지적하고 있잖습니까. ‘검증’되지 않은 영어조기교육에 계속 ‘투자’하는 것은 현명한 일이 아닌 것 같아요.

▼ 아내 ▼

김선진(28·주·서울 노원구 중계동)

대학 1학년 때 ‘영어성경모임’에서 남편 영준씨를 만났어요. 대학은 달랐지만 저는 영어교육과, 남편은 영문과로 전공이 비슷했죠. 6년 연애끝에 93년10월 서울 중계동에 살림을 차렸어요.

깨소금 냄새만 진동하던 우리집에 말다툼거리가 하나 생겼어요. 한달 전 첫아들 용원(38개월)을 위해 50만원을 들여 유아용 영어교재를 구입했어요. 카세트테이프 20개, 비디오테이프 5개, 책 5권짜리예요.

남편은 교재를 보더니 “아직 어린데 영어공부에 목돈을 들일 필요가 있느냐”는 거예요. 산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앞으로는 신중하게 구입하라는 거죠.

나름대로 고르고 골라 값에 비해 내용이 충실한 교재를 샀다고 자부해요. 1백20만원짜리까지 있거든요. 1단계인 알파벳 익히기는 건너뛰고 2단계만 샀습니다.

며칠 전 사과를 깎아줬더니 용원이가 불쑥 “잇츠 여미(It’s yummy·‘맛있다’는 구어표현)”라며 ‘본토발음’으로 말하는 거 있죠. 얼마나 놀랍고 깜찍하던지…. 효과가 있는 만큼 6,7개월 지나 다음 단계의 교재도 사줄 생각이에요. 올해초 태어난 여동생 혜원이도 나중에 쓸 수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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