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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최철주의 ‘삶과 죽음 이야기’]무의미한 연명치료하다 죽는 사람 매년 3만 명

입력 2012-10-09 03:00업데이트 2012-10-10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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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무의미한 연명치료하다 죽는 사람 매년 3만 명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서울대병원은 우리나라 의료 권력의 핵심 가운데 하나이다. 제주도에서 당일치기로 드나드는 해녀에서부터 장차관과 국회의원, 전현직 대통령이 기꺼이 진료를 받는다. 전국에서 몰려든 환자들로 병원은 언제나 남대문시장처럼 북적거린다.

이곳에서 ‘의사 3분 진료’를 거친 후 느끼는 허망함과 쓸쓸함을 털어내지 못하는 환자들이 본관 앞 나무그늘에서 온갖 상념에 젖은 채 앉아 있다. 금연구역인데도 꾸역꾸역 담배연기를 뿜어대는 사람도 있다. 가을 날씨를 만끽하기 위해 링거병과 항생제 등 각종 의약품을 주렁주렁 거치대에 달고 산책하는 환자들이 맨 먼저 마주치는 것은 본관 앞 시계탑이다.

여론조사에선 “연명치료 중단 찬성”

그들이 올려다보는 시계탑의 의미가 남다르다는 것을 알아챈 것은 2년 전이었다. 내 옆에 있는 중년의 남자 환자가 아내로 보이는 여성에게 턱으로 시계탑을 가리키며 저 작은 바늘이 100여 바퀴를 돌 때쯤 자신은 딴 세상에 가 있으리라고 하는 말을 우연히 들었다. 휠체어에 앉아 있던 내 아내도 귀담아들었다. 시계의 작은 바늘이 100여 바퀴를 돌면 두 달이 채 못 되는 세월이다. 아니야, 1000여 바퀴야, 왜 그리 마음이 약해, 하고 여자가 남자를 쳐다보며 정정해 주었다. 남자는 말이 없었다.

1000여 바퀴? 그러면 1년 반 정도로 수명이 늘어난다. 그 말기 환자가 세상을 떠나는 시간을 계산할 때 일반 환자들은 삶의 시간을 셈할 것이다. 시계탑은 생사의 경계선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저리도 다른 계산법을 주었나 보다 생각하고 있을 때쯤 낯익은 노년의 신사가 내 앞을 가로막았다.

무더위가 시작된 7월 중순이었는데 그는 검은 중절모를 깊이 눌러 쓰고 검은 겨울 외투에 가죽장갑까지 끼었다. 면도도 하지 않은 초췌한 모습이었다. 부도난 H그룹 C회장이었다. 대장암 판정을 이유로 형 집행정지 결정이 내려진 시기였다. 그런데 그의 시선이 바로 시계탑에 머물러 있었다. 나는 그때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싶은 욕심으로 주머니 속에 있는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렸으나 아내의 신경을 건드릴까 봐 그만두었다. 재벌과 권력, 돈과 명예 그리고 삶이란 주제들이 번개처럼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로부터 다시 2년여의 세월이 흐른 뒤 나는 허대석 종양내과센터장과의 인터뷰 시간을 기다리면서 그 쉼터에 앉았다. 1세기 전에 세워진 시계탑은 수많은 삶과 죽음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었다. 그런데 허 교수는 벌써 수천 명의 죽음을 기억하고 있었다. 잊어버린 죽음은 이의 몇십 배에 이를 것이다.

본관에 있는 그의 연구실은 각종 데이터로 넘쳐 났다. 그는 얼마 전에 같은 아파트에 사는 주민이 한밤중에 문을 두드리며 응급환자를 봐 달라고 애원하는 바람에 밤잠을 설쳤다고 했다. 우리들은 너무 죽음을 모르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 독특한 문화 때문에 삶이 고달프다고도 했다. 온 가족이 동으로 서로 뛰어다니면서 끝까지 환자를 치료하려고 명의에게만 매달리는 우리의 임종문화에 어떤 모멘텀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하다가 사망한 환자가 한 해에 벌써 3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죽음 문화의 실상을 알려주는 숫자입니다. 매년 총사망자 25만 명 중 18만 명이 암 등 만성질환자인데 그중 18% 정도가 연명치료를 받은 셈이지요. 국민건강보험공단의 2007년도 자료를 기준으로 분석해 낸 것입니다. 실제 이 자료에 잡히지 않는 것까지 감안하면 사망자는 훨씬 많아요.”

중환자실이 없는 요양시설이나 자택에서 사망하는 연명치료자도 허다하다. 동네마다 알게 모르게 간병을 받고 있는 이른바 식물인간까지 감안하면 무의미한 연명치료 사망자는 더욱 늘어난다. 우리의 임종문화가 매우 거칠고 환자의 존엄이 크게 훼손되고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가족이 받은 상처도 엄청 컸으리라고 짐작이 간다.

허 교수는 15년 전부터 사전의료의향서(이전에는 생전 유언 또는 사전의료지시서로 불렸다) 쓰기 캠페인을 벌여 왔다. 그가 한국보건의료연구원장을 겸임하고 있었던 2009년에는 이 의향서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바탕을 마련했다. 회생 가능성이 없는 말기환자는 단순히 죽음의 시간을 연장하는 연명치료를 거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서울대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는 환자가 희망하면 사전의료의향서를 제출할 수 있는 시스템도 만들었다. 공공의료기관으로서의 롤모델이 되는 기회였다.

죽음 맞닥뜨리면 환자-가족이 반대

최철주 칼럼니스트최철주 칼럼니스트
“여론조사를 하면 대부분이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해야 한다고 찬성하면서도 막상 죽음과 맞닥뜨리면 환자나 가족이 그걸 행동으로 옮기지 못합니다. 의료진도 마찬가지이지요. 그냥 마지막까지 치료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믿고 있어요. 그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떤 동기가 필요합니다. 우리에겐 그게 없어요. TV에 의학 드라마는 엄청 늘어났는데 죽음 문제 처리는 어디까지가 최선인지 아직 정리가 안 됐어요.”

2009년 세브란스병원 김 할머니에 대한 존엄사 판결은 회생 가능성이 없을 경우 환자의 삶의 가치를 요구하는 가족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그런데 그 이후 정부는 후속 조치도 취하지 않은 채 지금까지 계속 손을 놓고 있다. 2000년의 대만처럼 존엄사 관련법을 만들 생각도 하지 않았고 2007년 일본처럼 정부 가이드라인을 고시할 엄두도 내지 않는다. 정부가 존엄사 논쟁을 피해 다니는 모습이다.

최철주 칼럼니스트 choicj114@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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