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톡톡]대학교육에 바라는 것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3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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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실 좁아 책 읽으며 시간 때우기도… 등록금이 너무 아까워요
‘철학과엔 철학이 없다’는 말도 있어… 대학까지 취업학원 돼서야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 3월 일제히 개학한 대학가에 봄이 왔습니다. 교정에는 젊음이 생동합니다. 하지만 교육 소비자라고 할 수 있는 대학생들은 대학 교육에 진정 만족하고 있을까요. 교육과학기술부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186개 대학의 연간 평균 등록금은 670만6000원이었습니다. 국공립대는 415만 원, 사립대는 737만 원이 넘습니다. 하지만 학생들은 비싼 등록금에 비해 제대로 된 대학 교육, 제대로 된 수업을 받지 못한다고 토로합니다. 물론 감동을 주는 교수님이나 강의도 있지만 수업의 질, 학사행정 등이 아직은 만족할 만한 수준이 아닌 것 같습니다. 권소영(연세대 신문방송학과 4학년) 오혜진(연세대 식품영양학과 4학년) 동아일보 인턴기자가 개학을 맞은 서울 시내 대학가를 돌아다니며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봤습니다. 》

등록금이 너무 아깝다


총장이 얼마 전 “등록금이 싼 편”이라고 말했다. 학생들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교수 한 명당 학생 수가 너무 많아서 수강생이 몇백 명인 대형 강의가 다반사다. 이게 무슨 대학 강의인가.(25·4학년)

무언가 배운다기보다 4000만 원으로 학위를 산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부실한 교수가 많다.(25·3학년)

이제 대학은 기업의 노예로 전락하거나 사회에 굴복해 버린 듯하다. 대학의 교육 서비스 수준으로만 보면 소비자 입장에서 돈이 아깝다.(24·3학년)

‘철학과에는 철학이 없다’는 말을 들었다. 특정 학과뿐 아니라 대학 전체의 문제를 지적하는 말이다. 몇 개 안 남은 인문학 강좌도 비인기 강좌라는 이유로 늘 폐지될 위기에 놓여 있다. ‘학생들의 수요가 없기 때문’이라고 대학 측은 변명하지만, 대학이 그 본연의 기능을 포기하는 것 아닐까.(24·여·4학년)

몇몇 교양수업은 구청 문화센터보다도 못하다. 매년 똑같은 내용을 반복할 때가 많다. 강의계획서 ‘연도’조차 고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26·4학년)

교수들은 바쁘다 보니 학생들에게 할애하는 시간이 적다. 솔직히 학원처럼 과목당 돈을 내고 수업을 듣는다면, 폐강되어야 하는 과목이 수도 없다.(24·여·3학년)

지방대 중국어학과에 재학 중인데 그냥 책을 읽어주는 수준의 수업을 하는 교수도 많다. 그래서 다들 중국으로 자비 어학연수를 떠난다.(24·여·3학년)

실제 현장에서 필요한 것들에 대해서 배우기보단 농담 따먹기로 수업이 채워질 때가 적지 않다.(21·여·3학년)

학교 내에서 교수의 지위가 높아질수록 강의는 빈약해지는 것 같다. 심지어 어떤 교수는 15주 수업 중 수업 소개와 시험을 뺀 12∼13주를 학생들 발표로 때웠다. 또 다른 교수는 한 학기 내내 본인 논문 쓰느라 학생들 논문은 방치했다. 오히려 시간강사 강의가 재미있고 알찬 경우가 많다.(24·여·4학년)

책은 잘 쓰면서 강의는 못하는 교수가 많다. 가르치는 것도 기술이다. 어떻게 잘 가르칠 수 있을지 고민하고 노력해야 하지 않나.(25·여·4학년)

리포트를 내면 피드백을 해줬으면 좋겠다. 사실 학생들은 리포트를 내면서도 자신이 잘하고 있는 건지 모른다. 기말시험까지 친 후에 A, B, C, D로 점수가 나올 뿐이다.(25·여·4학년)

허울뿐인 영어-토론수업, 우리 교수님은 외출 중

우리 학교의 모든 학생은 졸업하기 전에 영어 강의 5개를 무조건 들어야 한다. 문제는 영어를 못하는 교수님들도 있다는 것이다. 한국어로 하면 훨씬 쉽게 와 닿을 것 같은 수업 내용이었다.(21·3학년)

영어 강의는 정말이지 ‘비추(천)’이다. 수업 내용을 깊이 이해할 수 없다. 교수님도 설명을 잘 못하고 학생도 잘 못 알아듣는 것이 문제다. 영어 강의를 듣는다고 영어 실력이 향상되는 것도 아니다. 영어 강의를 해야 할 만큼 외국 학생이 많은 것도 아니다.(23·여·3학년)

교수들은 토론식 강의를 외치지만 미어터지는 중대형 강의실에서 토론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24·여·4학년)

토론은 학생들의 ‘참여와 준비’가 전제되어야 재미있는데 학생들은 아직 토론에 익숙지 않은 상태라 대부분 민망한 정적만 흐르다 끝나버린다. 토론식 수업을 강제로 하기보다 교수의 탄탄한 강의를 듣고 싶다.(24·여·4학년)

교수들이 외부 활동을 많이 하는데 그러다 보니 수업의 질이 많이 떨어진다. 휴강도 잦다. 본분인 수업에 집중하면 좋겠다.(24·3학년)

솔직히 휴강 싫어하는 학생, 별로 없다. 그러나 한 학기에 여러 번 휴강하는 건 문제다. 이런저런 출장 때문이라고 하지만 결국 교수 개인과 관련된 출장이 아닌가.(23·2학년)

교수와 학생 간의 커뮤니케이션을 기대했는데 막상 대학에 와 보니 상상했던 것과 달랐다. 말만 지도교수지 실제 얼굴도 모르는 지도교수가 많다.(21·여·2학년)

이런 선생님도 계세요

지금까지 가장 기억에 남는 수업은 박사과정인 기간제 강사의 강의였다. 젊은 시각과 본인의 경험을 녹여내어서 무척 재미있었다. 학생과 소통을 하면서 최대한 학생들이 바라는 방향으로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22·여·4학년)

교수가 강의를 위해 홈페이지를 직접 만들고 학생들에게 피드백도 주면서 체계적으로 관리를 했던 수업이 있었다. 매주 과제를 하면서 지식이 늘어나는 걸 느꼈다. 대학 들어와서 처음으로 등록금이 아깝지 않다고 생각했다.(24·3학년)

수업이 오전 9시였는데 교수가 오전 6시부터 나와서 준비를 하고 있는 모습을 우연히 보았다. 강의안도 매년 바꾸고 학생들이 이해하기 쉽게 새로운 자료들을 늘 찾아준다. 모든 학생이 감동받고 열심히 수업에 참여했다.(26·4학년)

제출했던 과제나 시험, 보고서에 대해 교수가 단 몇 줄이라도 평가를 해준 것이 공부를 이어가는 데 추동력이 된다.(24·여·4학년)

학생이 스스로 노력하지 않고 교수에게만 뭔가를 바라면 힘들어진다. 교수가 열심히 하는 것은 학생들이 얼마나 열심히 하느냐에 달려 있다. 학생들이 놀고 있으면 교수도 열심히 하지 않는다. 다만, 잘 가르치든 못 가르치든 교수의 자리가 보장되는 건 구조적으로 문제가 있다.(33·대학원생)

내 등록금 제대로 쓰이고 있나

이공계에서는 실험 수업이 많은데 실험실이 너무 협소하다. 실험할 때 위험한 시약을 주로 사용하고 쉽게 깨지는 유리 도구들을 이용하는데 실험실이 좁아서 시약을 쏟거나 도구를 깨서 다치기도 한다. 실험 도구와 시약도 늘 부족하다. 공대는 등록금이 비싼데 실험 기회가 부족하다. 실험 없이 그저 책 읽는 것으로 때우거나 교수가 준비해 온 발표 자료만 보는 것으로 수업을 채운 적도 많다.(24·여·3학년)

학생 대 교수 비율이 30 대 1 정도까지만이라도 조정되면 좋겠다. 적게는 50명 많게는 100명 넘게 수업을 들으니 교수와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시간이 많이 부족하다.(22·3학년)

등록금을 건물 짓는 데만 쓰는 것 같다. 그것도 학생을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지금 당장 장학금이나 학생복지가 잘되고 있는지 의문이다.(22·여·3학년)

몇몇 사립대의 수천억 원에 달하는 재단적립금을 보면 등록금이 학생을 위해 쓰이는 것이 아니라 재단 배불리기에 이용되는 것 같다.(27·4학년)

내 등록금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 알고 싶다. 공개해 달라고 요구해도 매번 무시당하기 일쑤다.(24·여·4학년)

행정 서비스가 엉망이다. 교직원들이 학생들에게 반말을 하고 기본적인 예의도 지키지 않을 때가 많다.(25·4학년)

수강신청하면서 화날 때가 많다. 등록금은 비싼데 듣고 싶은 수업은 별로 없다. 괜찮은 수업에는 사람이 너무 몰려 수강신청이 하늘의 별 따기다.(23·여·2학년)

학교 강의실 배정에도 신경을 썼으면 좋겠다. 전에 수강했던 어느 수업은 토론과 발표 위주인데도 불구하고 계단식 대형 강의실이라 한 학기 내내 토론다운 토론이 이루어진 적이 없었다.(24·남·3학년)

‘취업 사관학교’가 아니라 ‘인생 사관학교’를 원해요

특정 분야가 인기 있다고 대학에서 그것만 다룰 수는 없다. 취업 관련 수업을 대학에 요구하는 것은 무리다. 대학은 좀 더 순수학문을 중점적으로 가르쳤으면 좋겠다.(28·4학년)

역사와 인간에 대해서 배우고 싶다.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할 때 생각을 정리할 수 있도록 대학이 도와줬으면 좋겠다.(26·4학년)

1990년대 우후죽순 생겨났다가 인기가 시들해진 컴퓨터 관련 학과들이 지금은 모두 쇠퇴했다. 그런 걸 보면 취업용 맞춤 교육 서비스란 것은 없다. 사회 전체가 취업이나 실용주의에만 매몰된 것 같다.(24·여·4학년)

예전에는 영문학의 경우 배우는 게 쓸모없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아닌 것 같다. 학교 수업마저도 사회 진출을 위해 달려가면 숨이 막힐 것 같다. 이때가 아니면 언제 배워 보고 혼자 부딪쳐 보겠나.(25·여)

대학까지 학원화되고 있다. 순수학문을 다루는 학과는 취업 같은 대중적 수요에 부응할 필요가 없다. 대학 본연의 목적은 학문 발전이 아닌가.(24·여·3학년)

순수학문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취업에 관심 많은 학생을 위해 취업캠프나 산학협력, 취업에 도움이 되는 각종 활동을 지원해 줬으면 좋겠다.(25)

최소한 ‘대학’이라면 취업 외에 학생들의 삶을 보다 의미 있게 할 만한 무언가를 심어줄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이런 평생의 가치를 배워야 우리는 360만 원의 대학 등록금에 반감을 갖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23·여)

정리=노지현 오피니언팀 기자 isit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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