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홍성걸]국민 마음 못읽은 ‘연말정산’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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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걸 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
홍성걸 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
여윳돈으로 여겨졌던 연말정산이 ‘13월의 세금폭탄’으로 돌아왔다. 정부와 여당, 청와대는 곧바로 보완대책을 소급 적용하겠다는 긴급처방을 마련했고 청와대는 국무총리 교체를 비롯한 일부 공직자의 인선을 단행했다. 느려 터진 정치권이 이처럼 빠르게 대안을 제시한 것을 보면 급하긴 급했던 모양이다.

2013년 여야가 합의해 마련한 세법개정안은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로의 전환을 통해 고소득자가 더 많은 세금을 부담하게 한 것이었다. 정부는 이를 통해 조세형평성 제고와 약 9300억 원의 세수 증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국민에게는 연봉 5500만 원 미만은 거의 변화가 없고 7000만 원 이하는 3만, 4만 원 내외의 증세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그러나 정부의 이러한 예상과는 달리 대다수 직장인은 오히려 한 달 급여 이상을 토해내야 한다는 사실에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의 근본 원인은 관계당국이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13년부터 간이세액표를 개정해 많이 떼고 많이 돌려주던 방식에서 적게 떼고 적게 돌려주는 방식으로 바꿨음에도 불구하고 납세자에게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다. 간이세액표를 개정했다면 적어도 연말정산에 즈음해 그 효과도 설명을 해주었어야 했다. 특히 세금폭탄 논란이 처음 나왔을 때부터 관계당국은 간이세액표 개정 이전과 이후를 비교해 대표적 소득구간에서 실제 세금 부담이 얼마나 늘었는지를 명확히 설명했어야 했다. 그러나 필자가 이 칼럼을 쓰는 지금까지도 기획재정부나 국세청에서 이러한 자료를 제시한 것을 찾을 수 없었다. 그 똑똑한 공무원들이나 정치인들이 어째서 이런 간단한 일조차 하지 않으면서 그저 간이세액표 개정에 의한 것이라는 말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는 것일까?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소득세제 개편은 사실상 늘어나는 복지재정을 충당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증세 없는 복지를 공약했고 공약 이행을 위한 가계부까지 만들었다고 강조했었다. 그러나 현실은 냉엄했다. 세계경제가 악화되면서 국내 경기는 더욱 어려워졌고 2014년 세수결손이 11조 원을 넘어섰다. 그래도 약속은 지켜야 한다는 대통령의 원칙은 재정 확충을 위한 관계당국의 처절한 노력으로 이어졌다. 증세 없는 재정 확충을 위해 정부는 각종 특별공제와 조세특례를 없앴다. 저출산 고령화 대책인 다자녀공제나 노후대비연금저축공제도 그래서 없어졌다. 차라리 증세 없는 복지가 불가능하다고 솔직히 고백하고 국민을 설득했다면 배신감은 이처럼 크지는 않았을 것이다.

국민의 분노가 더욱 커진 것은 법인세는 줄여주면서 개인소득세는 더 걷으려 하는 정부의 입장 때문이었다. 이명박 정부 시절, 법인세는 25%에서 22%로 3%포인트줄었다. 세계 여러 나라가 투자 유치를 위해 다투어 법인세를 인하하고 있는 현실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각종 편법을 동원한 기업 세습과 불공정한 부의 창출도 모자라 세금까지 감면해 주는 것을 국민이 쉽게 이해하리라 기대할 수는 없다. 게다가 ‘땅콩 회항’ 사건을 통해 기업을 개인 재산인 양 온갖 특권을 행사하는 재벌가의 행태를 알게 된 국민에게 법인세 증세 없는 개인소득세의 편법 증세는 분노를 넘어 정권에 대한 절망으로 이어질 수 있다.

결국 이번 사태는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채 재정 확충만을 위해 이루어진 편법 증세와 소통 부재, 거짓말 등이 어우러져 나타난 것이었다. 솔직한 소통으로 국민의 마음을 얻으려 했다면 얼마든지 피해갈 수 있는 사건이었다. 공무원과 정치인들이 계속해서 국민의 눈높이가 아니라 청와대의 시각에 눈을 맞추려 한다면 유사한 사태는 반복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홍성걸 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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