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진경/아담과 이브, 짐을 나누자

  • 입력 2004년 2월 29일 18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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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최재천(崔在天)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가 올해의 ‘여성운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호주제 존폐를 둘러싼 헌법소원 사건과 관련해 ‘유전적 측면에서 남성보다 여성의 기여도가 더 크기 때문에 남성 중심의 혈통을 기록 보존하는 호주제는 비과학적’이라는 내용의 의견서를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점 등을 들어 최 교수를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한다.

호주제를 폐지하면 우리 전통사회가 무너질 것처럼 주장하는 우리 사회 일각의 맹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이버테러를 당하면서까지 학자적 소신을 밝힌 최 교수가 그렇게 고마울 수 없다고 여성들은 말한다. 최 교수가 남성 위주 시각의 모순을 깨닫게 된 동기가 개방적인 집안에서 자란 아내 덕분이라고 당당히 밝히는 솔직함도 반갑다고 한다.

여성운동가들은 한때 생물학적 연구물들이 남녀차별을 정당화한다고 공격했다. 남자와 여자는 남성과 여성으로 태어나지 않았고 그렇게 길러지는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게놈지도가 만들어지는 21세기, 여성과 남성의 생물학적 다름을 밝히는 연구가 활발하다.

그 중 미국 하버드대 스티븐 핑커 교수(진화심리학)는 “포유류 전체에서 성적으로 많은 차이들이 발견된다”고 말한다. ‘남자의 뇌에는 뉴런이 더 많은 반면 여자의 뇌에는 회색질의 비율이 더 높다’ ‘남성들은 익명의 파트너와 조건 없는 섹스를 하려 하고 크고 작은 보상을 위해 목숨을 걸고 경쟁한다’ ‘자식에 대한 애착은 아버지보다 어머니 쪽이 강하다’ 등 성차(性差)의 증거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수학은 여학생보다 남학생이 더 잘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부부가 동시에 우울증에 걸려도 증상은 서로 다르다. 남편은 술을 많이 마시고 난폭한 행동을 한다. 반면 아내는 말이 없어지고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는다. 당장 의사들은 질병의 진단과 처방에도 남성과 여성이 다른 정보를 이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얼마 전 미국에서 등장한 피메일리즘(femaleism)은 남녀의 생물학적 차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종래의 페미니즘과 달리 이를 인정하고 남녀가 그에 맞는 역할을 하자고 주장해 환영을 받았다. 다만 남녀의 신체적 구조가 다른 만큼 사회적 역할을 달리할 뿐이지 그동안 우리가 생각했던 것처럼 남성이 여성보다 태어나면서부터 우월하다든가 능력이 있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점은 분명히 했다.

‘여성의 세기가 밝았다’는 최 교수의 말만큼은 아니지만 최소한 여자라는 사실만으로 옛날처럼 홀대받는 시대는 지난 것 같다.

이제 21세기 아담과 이브인 남성과 여성은 가부장적 체제에서 남성들에게만 지워져 왔던 짐을 나누어야 한다. 그러나 그 방법은 남녀의 생물학적 특성을 고려한 것이고, 남녀차별이 아닌 구별을 전제로 한 것이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출산휴가나 양육비 지급 같은 여성보호정책은 정당성을 갖는다.

최 교수는 남성 중심의 법과 제도가 바뀌어야 세계에서 가장 높은 40, 50대 한국 남성들의 사망률을 줄일 수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비과학적이고 비합리적인 호주제를 폐지하는 일은 여성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남성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김진경 사회2부 차장 kjk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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