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서승환]지역균형발전정책 다시 짜야

  • 입력 2004년 10월 24일 18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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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는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이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법에 대해 문외한인 나 같은 사람은 헌재의 이번 결정으로 수도 이전에 관한 논란이 종지부를 찍었다고 생각하지만 정부 여당의 반응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이번 헌재의 결정이 경제에 미치는 파장의 강도는 정부 여당이 헌재의 결정을 겸허히 수용하느냐의 여부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헌재 결정으로 기존정책 무효▼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이 위헌이므로 이 법에 기초해 수행된 각종 정책은 당연히 무효다. 신행정수도의 후보지 지정도 무효이고, 신행정수도와 관련해 예산에 반영된 부분도 즉각 조정되어야 한다. 당장 내년 예산에 신행정수도의 건설과 관련해 반영된 1조원을 조정해야 할뿐만 아니라 중장기 재정운용 계획의 수정도 불가피하다. 이런 일들은 헌재의 결정에 대한 정부 여당의 속내가 무엇인지와 무관하게 해야만 하는 것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수도 이전을 전제로 수립한 지역균형발전 관련 정책들이다. 수도권 규제 완화를 내용으로 하는 ‘3단계 신수도권 발전방안’, 신행정수도를 연결하는 ‘X자형 교통망 구축계획’,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 수도권 및 충청권을 배제하는 기업도시 및 혁신도시 건설 등에 대한 수정이 불가피하다. 수정의 방향은 정부 여당이 헌재의 결정을 바로 수용할 것인지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

수도 이전을 포기하고 지방분권과 지역균형 발전을 이룩할 새로운 수단을 원점에서 다시 모색하는 경우의 해법과 헌재의 결정을 우회하면서 수도 이전을 계속 밀어붙일 수 있는 묘수를 궁리하는 경우의 해법은 전혀 다르다. 전자가 백지 위에 새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라면 후자는 망가진 동양화에 계속 덧칠을 하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 더 효율적인 해법이 모색될 것인지는 자명하다.

정부 여당이 어떻게든 수도 이전을 다시 밀어붙일 의사가 있다면 갈등과 반목 속에서 새로운 형태의 수도 이전에 관한 논쟁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 하에서는 전면적인 계획 수정은 수도 이전에 대한 의지 약화로 비칠 것이므로 불가능할 것이다. 따라서 수도 이전을 전제로 수립한 지방분권과 지역균형 발전에 관한 각종 정책은 어정쩡한 상태에서 계속 연기되고 표류될 수밖에 없어 노무현 정부의 주요 국정목표의 하나인 국가균형 발전은 물 건너가게 될 것이다.

충청권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수도 이전이 된다고 철석같이 믿었던 기대가 한순간에 연기처럼 사라진 데에 따르는 상실감은 신뢰의 붕괴라는 측면에서 큰 문제다. 당장의 문제는 충청권 경기가 급랭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이 파장이 충청권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2000년 하반기 이후 계속 수축만 하고 있는 경기가 회복될 가능성이 낮은 상황에서 나라 경제 전체로 보아도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충청권을 위해 어떤 정책을 쓸 것인가. 유력한 대안으로 많이 거론되는 것이 충청권에 기업도시를 건설하자는 것이다. 현재 충청권에는 기업도시와 혁신도시를 허용하지 않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 지역으로 수도가 이전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충청권에 기업도시를 허용한다면 수도 이전은 포기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수도 이전도 계속 모색하고 기업도시도 허용한다는 것인데 이러한 정책조합은 아주 바람직하지 않다.

▼정부 입장 고수땐 국정 표류▼

처음부터 정책목표인 지방분권과 지역균형 발전을 정책수단인 수도 이전과 패키지로 보는 것 자체가 문제였다. 헌재의 결정을 겸허히 수용한 후 진정한 지방분권과 지역균형 발전을 위한 대안을 원점에서부터 다시 모색해야 한다. 이것이 노무현 정부의 주요 국정목표의 하나인 국가균형 발전을 이룩하고 경제의 불확실성을 줄여 나라 경제가 다시 도약할 수 있는 전기를 마련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명심해야 한다.

서승환 연세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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