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포럼]허영/수도이전 법률 따로 필요하다

  • 입력 2004년 6월 20일 18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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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행정수도 건설’이 ‘수도 이전’으로 변질 강행되고 있다. 신행정수도 건설은 충청권의 표를 노린 노무현 대통령의 대선 전략적인 선거공약이었다. 노 대통령은 이 공약으로 ‘대선에서 재미 좀 보았다’고 말했었다. 수도 이전 후보지가 발표되고 대통령이 이 사업에 ‘정권의 명운’을 거는 등 루비콘 강을 건너려 하고 있다.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이하 ‘특별법’)이 작년 말 국회를 통과한 것은 다수당이던 한나라당의 중대한 정책적인 잘못이었다. 한나라당은 더 늦기 전에 국익 차원에서 특별법 제정의 과오를 솔직히 국민 앞에 사과하고 수도 이전으로 변질된 정부여당의 무리한 정책추진을 막는 데에 당력을 모아야 한다.

▼이전 대상기관과 협의규정 무시▼

나라를 상징하는 국기, 국가, 수도 등은 헌법과 법률의 명문규정을 떠나 그 나라의 역사성과 통일성 및 국민통합을 나타내는 중요한 상징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상징물을 바꾸는 문제는 애당초 대선공약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국회의 동의만으로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노 대통령이 공약한 신행정수도건설의 헌법적인 한계가 바로 여기에 있다. 노 대통령이 천도를 염두에 둔 일이었다면 그것은 처음부터 성립될 수도 없는 공약이었다. 그런 뜻이었다면 대선에서 ‘재미 본’ 일로 끝내고 말아야 할 일이다.

그런데도 정부와 여당은 수도 이전이다 아니다 오락가락하면서 실질적으로는 입법 행정 사법부를 모두 옮기는 사실상의 천도를 서둘고 있다. 공약 당시의 국민투표 약속은 고사하고 특별법이 정하는 광범위한 여론수렴 절차와 협의과정조차 무시하고 있다. 특별법은 비행정기관의 이전에는 해당기관과의 협의를 반드시 거치라고 정하고 있는데도, 이전 대상기관 발표 전에 국회 대법원 헌법재판소 등과 협의를 거친 것 같지 않다. 특별법에서 이전 행정기관의 윤곽을 특정하지 않고 이전 대상기관을 추진위가 임의로 선정하게 포괄적으로 위임한 것도 위임입법의 한계를 지킨 것인지 의문이다. 수도와 대법원을 옮기려면 법적인 걸림돌도 없애야 한다. 지방자치법과 서울특별시행정특례법에는 서울시가 갖는 ‘수도로서의 특수한 지위와 특수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명문 규정이 있다. 법원조직법은 대법원을 ‘서울특별시에 둔다’고 정했다. 따라서 서울시가 갖는 수도로서의 특수한 지위와 특수성을 박탈하고 수도를 옮기기 위해서는 특별법이 아닌 ‘수도 이전에 관한 법률’이 따로 필요하다. 그러한 법률은 국가의 상징물을 바꾸는 내용이기 때문에 반드시 국민투표 절차를 거쳐야 한다. 지금처럼 특별법을 근거로 서울시의 수도로서의 지위와 특수성을 무시한 채 수도와 대법원 이전이 무리하게 강행되는 경우 서울시장과 대법원장은 대통령을 상대로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해서 헌법재판소의 심판을 받아보아야 한다.

천도가 아닌 행정수도 이전이라 해도 국가예산의 관점에서 진지한 논의가 필요하다. 애당초 4조원으로 예상한 신행정수도건설사업이 실제로는 최소한 11조3000억원(총사업비 약 46조원)의 재정지출이 필요한 일이라면 국가재정의 효율성 측면에서 재검토가 필요하다. 그런 규모의 재정집행이 지금 과연 국민의 이익과 국가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최우선 순위의 정책과제인지 여러 각도에서 따져보아야 한다. 더욱이 향후 10년간 다음 정권에서도 계속 추진해야 할 장기적인 사업이라면 사업 중단에 따른 예산낭비를 막기 위해서도 폭넓은 국민적 합의가 필수적이다. 현 상황에서 11조원의 국가재정은 우리 국력의 수준에서 결코 함부로 다룰 적은 액수가 아니다.

▼정권 아닌 나라의 명운 걸린 일▼

책임을 국회에 떠넘긴 채 약속한 국민투표를 피하려고 해서는 아니 된다. 정권이 아닌 나라의 명운이 걸린 중대한 일이기 때문이다. 집권세력이 국민의 뜻과 달리 무리하게 충청권 어디에 새 수도를 만들어 태극기 대신 한반도기를 내걸고 ‘산 자여 따르라’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합창하며 감격하는 그날이 온다면 우리나라는 이미 대한민국이 아니다.

허영 명지대 초빙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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