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리포트]인기영합 정책/무원칙…빈말…실언

  • 입력 2000년 12월 20일 18시 57분


▽은행 감자(減資)관련〓은행감자를 단행하는 과정에서 정책당국자들이 밝힌 입장은 ‘상황 모면하기’와 ‘숨기기’로 일관한다. 대통령 말대로라면 국민세금을 걷어 은행주식에 투자한 사람들에게 돈을 물어줘야 할 판이다.

“조흥 한빛 외환은행에 대한 감자는 없다.”(5월 23일 이헌재 당시 재정경제부 장관)

“평화 광주 제주은행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이 0%, 서울 한빛은행도 각각 0.58%와 6.70%에 불과하다.”(10월 24일 재경부 국감 자민련 이완구 의원)

“이의원이 주장한 BIS비율은 예금보험공사 직원이 개인적으로 추산한 것이다. 예보 직원을 문책하겠다.”(10월 24일 윤용로 재경부 은행제도과장)

“한빛 서울 평화 광주 제주 경남은행의 주식을 전부 없애는 완전감자를 실시한다.”(12월 18일 이종호 금감원 은행감독국장)

“은행 소액주주를 희생시키는 것이 타당한가 하는 문제제기가 있다. 대책을 마련하라.”(12월 19일 김대중 대통령)

▽벤처와 코스닥 키우기〓대통령은 ‘벤처강국’을 외쳤고 각 부처들은 벤처 육성책을 쉴새없이 쏟아냈다. 정부의 이런 의지를 믿고 뒤따라간 개미투자자들은 원금의 10분의 1밖에 남지 않은 채 중산층 몰락이라는 위기감에 처해 있다.

“코스닥시장을 지금까지의 개념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벤처 육성시장으로 만들겠다. 진정한 ‘프로’들이 노는 시장으로 변신할 것이다.”(99년 5월 당시 이헌재 금융감독위원장)

“당시 정부가 워낙 벤처육성을 하겠다고 하는 바람에 제대로 주가작전 조사 한번 못했다. 코스닥이 작전 천국으로 돼 있는데도 금감원이 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은 직무유기다.”(2000년 10월 정현준 진승현 사건후 금감원 실무자)

▽인력구조조정〓정부의 무원칙 발언 탓에 인력 구조조정의 당위성에 대한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

“금융지주회사로 편입하더라도 인원감축 문제는 노조와 협의하겠다.”(7월 11일 은행 파업 때 노정합의 사항)

“노조와 합의해놓고 지금 와선 사람이 바뀌었다고 약속을 지키지 않으려 한다. 지키지 못할 약속을 왜 했나.”(12월 은행노조 관계자)

▽선심성 발언〓실현가능성을 세심히 따지지 않고 발표하는 정책은 오랫동안 무리를 낳을 수 있다.

“올해 주택 50만호를 건설하는 등 주택건설을 획기적으로 늘려 2002년까지 모든 가구가 주택을 보유하거나 전세로 입주, 불안한 셋방살이 신세를 마감하도록 하겠다.”(김대중 대통령, 2000년 신년사)

“연체 농가는 통상적인 금융관행상 부채경감 자금을 받을 수 없어 어려움이 많았다. 그렇지만 재경부 등과 협의해 파격적인 방식으로 지원대책을 마련키로 했다.”(김성훈 전농림부장관, 총선전 농가부채 경감 대책을 발표하며)

<최영해·정용관기자>moneychoi@donga.com

▼정부의 반론▼

정부의 경제정책이 그때 그때의 여론이나 인기를 지나치게 신경쓰는 포퓰리즘적 성격이 짙다는 지적에 대해 정부 관계자들의 시각은 다소 다르다.

때로 임기응변적 정책이 나오기도 했지만 이는 수시로 달라지는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대책일 뿐 이를 ‘선심성 정책’이라고 몰아붙이기는 어렵지 않느냐고 항변한다.

또 현실적으로 정부가 언론으로 대표되는 여론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는 만큼 언론이 주요한 경제 현안에 대해 일관된 논리를 펴줄 것을 주문하는 목소리도 많다.

재정경제부의 한 당국자는 “일부 언론 매체는 현상의 어려움을 지적한 뒤 사실상 노골적으로 선심성 정책을 촉구하는 기사를 보도한다”면서 “정부로서는 여론을 존중한다는 측면에서 대응책을 내놓을 때가 많다”고 말했다.

정부내에서 자성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다. 재경부 A국장은 “올해초 경기 과열 조짐이 나타날 때 일단 현시점에서 한번 경기 브레이크를 밟을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냈으나 대부분 외면하는 분위기였다”며 정부 조직내의 경직적인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우리나라에서는 정부는 물론 각계에서 경기가 약간 들떠 있어야 한다는 일종의 ‘미신’이 ‘상식’이 돼 있다”며 “이번 기회에 정부는 물론 각 경제 주체가 스스로를 한번 되돌아봤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권순활기자>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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