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문화]가요순위프로그램 놔둬야 하나 없애야 하나

  • 입력 2001년 2월 8일 19시 00분


서태지를 좋아하는 고1 여학생 강현주양.

현주양은 낮에 레코드 가게에 가서 서태지 앨범을 샀다. 이 앨범은 판매량 1위를 달리고 있어 현주양은 며칠전부터 예약주문한 끝에 겨우 살 수 있었다.

앨범을 구입하고 집에 와서 TV를 켠 현주양. 마침 가요순위프로가 방송중이어서 현주양은 서태지 오빠가 나오지 않을까 유심히 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게 웬일? 좋아하는 오빠가 나오기는 커녕 노래가 50위 순위에도 들지 못한 것이었다.

분명 태지오빠가 음반판매 1위인데 어째서 가요프로에선 순위에도 들지 못한 거지?

알고보니 서태지오빠가 다른 방송사에 독점출연하기 때문에 '괘씸죄'로 순위에 넣지 않았다는 것이다. 현주양은 공정하지 않은 방송국의 순위 선정에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미 공중파 방송의 가요프로그램은 객관성을 상실했습니다. 정확한 음반판매 집계량조차 반영되지 않은 순위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대중음악평론가 강헌씨는 '가요순위프로그램 폐지'를 논의하는 공청회에서 이같이 말하고 순위 프로그램은 폐지돼야 한다고 말했다.

문화개혁을 위한 시민연대 주최로 8일 오후 2시 국회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가요순위프로그램 폐지와 대중음악 개혁'관련 공청회.

이날 공청회에서는 대부분의 토론자가 순위의 불공정성, 장르의 편중, 음악프로그램으로서의 정체성 등을 이유로 프로그램 폐지를 주장했다.

그러나 비록 극소수였지만 한편에서는 당장 프로그램을 없애기보다는 개선을 통해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와 토론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강헌씨는 "방송사가 순위프로그램에 집착하는 이유는 가요시장과 대중스타를 방송의 지휘하에 두려는 것 때문"이라며 "공정한 음반판매 집계가 반영되지 않는 순위프로그램은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이동연 문화연대 사무차장의 주장도 강헌씨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차장 역시 객관적이지 못한 순위선정방식을 꼬집고 "현재 가요순위 프로그램은 음악프로그램이 아니라 하나의 쇼이벤트에 불과하다"고 비난했다.

이차장은 "순위프로그램은 가수가 순위에 올라간 노래만 부르게 하고 그러다보니 음반사가 노래 하나만 소위 '뜨게' 만들고 나머지는 대충 만드는 기형적인 구조를 낳게 된다"고 지적했다.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김창남 교수도 "순위프로그램이 음반기획사를 상업적으로 만들고 있다"며 "이 연결고리를 끊어내기 위해선 프로그램 폐지가 우선"이라고 주장했다.

김교수는 또 "대중의 문화적 삶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방송이 제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다.

한국민족음악인협회 김보성 사무총장도 방송의 공공성을 들며 "음악문화를 바로잡는 주체로서의 역할을 방송이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이어서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방송모니터위원회가 발표한 공중파 3개 방송사 가요순위프로그램 모니터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1월까지 KBS·MBC·SBS 가요순위프로그램에서 가수가 립싱크를 한 비율이 각각 62.06%·78.49%·74.28%인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결과를 발표한 민언련 이송지혜 간사는 "음악프로그램으로서의 정체성이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날 '폐지론'의 목소리만 높았던 것은 아니었다.

한국연예제작자협회 백강 이사는 "지적사항에는 공감하나 당장 폐지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며 "편성의 개선을 통해 가요프로그램은 유지돼야 한다"고 존속론을 폈다.

반박열기가 가라앉기 전 현재 가요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는 KBS뮤직뱅크 박해선 주임PD의 발언이 이어졌다.

박PD는 먼저 댄스음악 등 장르가 편중돼 있다는 지적에 대해 "현재 가요순위프로그램은 분명한 청소년 프로"라고 못박았다.

이어 박PD는 "어린이를 위해서는 동요프로그램, 청소년을 위해서는 순위프로그램, 2~30대를 위해서는 콘서트 프로그램, 4~50대를 위해서는 분명 전통가요프로그램이 존재하는 데 어떻게 장르가 편중돼 있다고 볼 수 있느냐"며 "한 프로그램이 아닌 전체적인 시각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PD는 또 "순위경쟁을 하는 프로그램이 꼭 나쁘다고 볼 수 없으며 어느정도의 경쟁은 꼭 필요한 것"이라면서 "시민단체에서 댄스음악 등의 대중음악을 편협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은 문제"라며 꼬집었다.

대중음악평론가 신현준씨는 폐지론을 주장하면서도 "유지해야한다면 장르를 나눠 순위를 매기는 방향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토론은 전체적으로 가요순위 프로그램의 폐지를 주장하는 쪽이 대세를 이뤘다.

하지만 연예제작자협회 관계자와 일선PD를 제외한 나머지 토론자들은 모두 '폐지론'을 주장할 법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어서 토론자 구성에 문제가 있지 않느냐는 의문이 들게 했다.

한편 이날 공청회에는 200여명이 참석해 '가요순위 프로그램 폐지논란'에 대한 시민들의 뜨거운 관심을 보여줬다.

이희정/동아닷컴 기자 huib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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