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현장]이돈희장관과 교사와의 대화

  • 입력 2001년 1월 18일 18시 44분


17일 오후 교육부 대회의실에서 열린 이돈희(李敦熙) 교육부장관과 중학교 교사 16명간의 간담회는 다소 김빠지고 서먹서먹했던 전날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전날 초등학교 교사 16명과의 간담회는 이장관이 당정협의에 참석하느랴 1시간30분 정도 늦은데 대해 '교사를 뭘로 보느냐'는 항의도 있었으나 이날은 간담회가 시작되면서 좌중에 웃음꽃이 피기도 했다.

교육부는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간담회를 진행할 예정이었으나 이장관과 교사들의 질문·응답이 길어지자 충분한 대화가 이뤄지도록 간담회 시간을 1시간 30분 정도 연장했다.

▼관련자료▼
- 이장관 16일 발언내용 동영상보기
- 17일 장관과의 대화 전체 음성듣기
- 발언파문 관련 이장관 해명 음성듣기
- 이돈희 교육장관 발언파문 "공부 안하는 교사 퇴출"
- 이장관 '교사비판 파문 "학교 현실도 모르면서…"

교육부 관계자는 간담회를 시작하기 전 "간담회중에 휴대전화가 울린 것이 언론에 보도돼 마치 교육부 사무관들의 전화가 마구 울렸다는 듯 오해가 있었다"면서 휴대전화를 꺼주도록 당부했다.

특히 교육부는 참석 교사들이 자신의 장점과 특징을 자세히 소개하도록 배려하는 등 전날보다 부드러운 분위기 속에서 간담회가 이뤄지도록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인천 동암중 이 연 교사(37·여)가 자신의 이름을 부를 때에는 발음을 세게 하면 안된다('이년')고 말해 좌중에 1차로 웃음꽃이 폈는가 하면 강원 함태중 신성우 교사(46)가 벽지학교 교사의 어려움에 대해 "나는 혼자 밥을 해먹고 유배생활을 하는 독립군"이라고 소개하자 이장관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폭소를 터뜨렸다.

교육부는 그러나 기록요원을 비롯해 교육부 관계자들이 배석했음에도 불구하고 첫날처럼 간담회가 끝난 뒤 참석 교사들에게 질의요지를 적어 제출하라고 사실상의 지시를 내렸으며 이장관이 교사들의 건의사항에 대해 '노력하겠다''검토하겠다' 며 시원스럽게 답변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교사의 복수자격증 제도에 대해서는 이장관과 교사들 사이에 의견이 엇갈리기도 했다.

참석 교사들은 강원 함태중 신성우 교사가 "어버이가 자식을 남 보는데서 때리면 어떻게 하느냐. 교원의 사기진작을 위해 힘써 달라"며 이장관의 '공부 안하는 교사 퇴출 발언'의 문제점을 지적하자 공감하는 분위기였다.

이장관은 "이번 발언 파문으로 학부모·시민 등 (나에 대한) 지지세력이 생겼는데 아무리 천군만마를 얻는다 해도 교사들이 불신을 갖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고 반문하고 "말이 와전돼 마치 교사와 학원 강사를 단순 비교한 무식한 장관이 되어 버렸다. 발언에 대해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고 이해해달라.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다음은 이장관과 교사들과의 질문·답변 요지.

-강원 함태중 신성우 교사(46)=이장관께서 언론을 통해 교사들이 위축될만한 발언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버이가 자식을 남 보는데서 때리면 어떻게 하느냐. 교원의 사기진작을 위해 힘써달라.

7차 교육과정을 실시할 여건이 마련돼 있지 않다. 농촌 벽지 등 소규모 학교에서는 한과목만 전담하는 교사가 없다. 교사 한명이 2,3과목을 맡고 학교 업무에 치이다보면 7차 교육과정 수업을 위한 자료를 찾을 시간이 없다.

▲이장관:교사 수가 적은 것도 문제지만 과목자격증이 한개 밖에 없기 때문에 생긴 문제이기도 하다. 앞으로는 교사 양성과정에서 복수자격증 제도를 권장하도록 노력하겠다. 같은 지역에서 초중고교간 교사들의 교류를 적극 이용할 것을 권장하겠다. 학교교사가 학원강사보다 공부를 안한다고 한 것은 학교 교사들의 전문성과 경쟁력을 키우자는 취지에서 한 말이었다. 앞으로는 교사들이 연구와 공부에 몰두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

이번 발언 파문으로 학부모·시민 등 (나에 대한) 지지세력이 생겼는데 아무리 천군만마를 얻는다 해도 교사들이 불신을 갖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말이 전해지며 와전되어 마치 교사와 학원 강사를 단순 비교한 무식한 장관이 되어 버렸다. 발언에 대해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고 이해해달라. 죄송하다.

-경기 포천중 김명수 교사(37)=나라가 어려울수록 교육에 투자를 많이 해야 한다. 교사의 사기를 올릴 수 있도록 교사의 대학원 진학 지원, 자녀 대학 학자금 지원, 해외연수 확대 등의 지원을 아끼지 말아 달라. 체벌금지, 비리교사 고발 등으로 교사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다. 교사의 권위 회복을 위해서도 노력해 달라.

-충남 복수중 김명자 교사(30·여)=복수자격증 확대는 교사들의 업무량이 적어지고 전문성을 기를 수 있는 여건이 될 때 시행하는 것이 좋다. 지역상황 등을 고려한 교육정책이 이뤄져야 한다.

-서울 화원중 김용호 교사(39)=복수자격증을 권장하는 것은 급조된 자격증을 만들어내 오히려 교사의 전문성을 잃게 할 수 있다. 교사의 권위가 많이 떨어졌기 때문에 유급제 도입 등 학생들을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이 확대됐으면 좋겠다.

▲이장관=교사 정원 확보를 위해 기획예산처와 행정자치부와 논의중이다. 학생제재 수단에 대해서는 옛날과는 달리 요즘 아이들의 인권의식이 매우 높아졌다는데 유의해야 한다. 아이들을 하나의 인격체로 보고 모멸감을 주는 행동과 언어를 피해야 한다.

-부산 다대중 이민영 교사(35·여)=교사양성과정에서 실습시간 확대, 수습형태의 현장 교육 등 현실감있는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최근 교사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졌으나 꼭 교육개혁의 대상이 교사 뿐만 아니라 학생 학부모도 해당됨을 모두 알게 해야 한다.

-충북 별방중 서주선 교사(39)=벽지학교 교사 대표로 나왔다. 벽지학교 학생들이 이용할 수 있는 문화공간을 확충해주고 통학버스도 운영되도록 지원해 달라. 교사들에게도 무료건강검진 서비스를 제공하고 벽지학교 교사의 자녀학자금 우대 등의 조치도 있었으면 좋겠다.

-광주 문산중 강덕희 교사(55)=교사연수가 승진을 위해 학점을 따기 위한 방책으로 본질이 변했는데 이를 시정해 달라.

-전남 무안북중 윤경자 교사(48·여)=현재 운영되고 있는 교과교실(학생들이 해당과목 교실로 이동해 수업을 받는 형태)이 더욱 활성화되어야 한다.

-대구 상서여중 구경수 교사(38)=사립학교에서 교사수가 현저히 부족하나 공립과 사립간에 교원 교류가 없어 어려움이 많은데 교원 교류가 가능하도록 조치해 달라.

▲이장관=공사립학교 교원간의 교류가 가능하도록 노력하겠다. 앞으로는 학교가 소형화되는 추세인데 이렇게 되면 한 지역의 교사들이 함께 그 지역의 교육을 책임지는 제도로 발전할 것이다. 교사들이 사명감을 가지고 벽지학교에서 일할 수 있도록 유도책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겠다. 교과교실 확대방안을 정책적으로 추진하겠다. 교육현장에 대한 언론의 편파적 보도에 대해 교사들이 느끼는 것처럼 나도 언론에 대해 섭섭한 부분이 있다. 아무튼 교사들이 열심히 연구할 수 있는 분위기가 정착되도록 제도적인 뒷받침을 하겠다. 연수학점제의 비리가 많아서 이번 교직발전종합방안에 개선된 안을 마련했다(배석한 교원정책심의관의 답변).

◆16일 초등교사와의 첫번째 간담회◆

"장관께서 일선 교사들의 의견을 듣는 자리라고 해서 전국 교사를 대표해 초등교사들이 모였는데 두시간 가까이 늦는다는게 말이 됩니까"

16일 오후 교육부 대회의실에서 이돈희(李敦熙) 교육부장관과의 간담회를 기다리던 전국 초등학교 교사 16명은 이장관이 고위당정회의 등으로 1시간35분 정도 늦어지자 실망한 표정이 역력했다.

이날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진행될 예정이었던 간담회가 늦어지자 전남 안좌초등학교 박현순 교사(48)는 "벽지 도서에 근무하는 교사들은 토요일에나 육지로 나와 김치를 가져가 1주일을 생활하는 여건 속에서도 어린이를 하늘 처럼 섬기며 가르치고 있다"며 "장관이 교사를 하늘처럼 섬긴다면 이러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따졌다.

이장관의 지각으로 기분이 상한 교사들은 이장관과의 대화도중 배석한 교육부 공무원들의 휴대전화 신호음으로 인해 또한번 눈쌀을 찌푸리기도 했다. 이장관도 교육부 공무원들의 휴대전화가 울릴 때마다 다소 언짢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장관이 도착하기전 회의실 테이블과 다소 떨어진 곳에 별도의 자리를 마련한 교육부 관계자 10여명은 휴대전화를 '진동'으로 바꾸거나 전원을 끄지 않았으며 일부는 그냥 전화를 받아 이들이 일선 교사들의 현장의 목소리를 들을 자세가 있는지를 의심케 했다.

교사들은 "장관이 있는 자리에서 휴대전화 벨이 자주 울리고 하는 걸 보니 교육부 분위기가 많이 바뀐 것 같다"며 의아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일부에서는 이장관의 업무스타일이 자유스럽던가, 아니면 조직장악력에 문제가 있는게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대화가 끝날 쯤 교육부에서는 교사들에게 질문한 내용을 직접 적어달라는 A4용지를 돌리기도 했다.

'안녕하십니까. 교육부 000입니다. 선생님들의 의견을 잘 들었습니다'로 시작하는 이 문서에는 교사들이 한 이야기중 주요내용을 400자 정도(손글씨 5줄 정도)로 직접 작성해 달라는 내용이 써 있었다.

배석한 공무원들이 10여명이나 있었는데도 교사들의 질문내용을 해당 교사에게 적어달라고 하는 것은 '자신의 일을 스스로 하지 않고 지시만 하는 중앙정부 관료들의 구태의연한 모습'을 연상시켰다.

일부 교사들이 이장관의 지각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뒤 회의장에 들어선 이장관은 "고위 당정정책조정회의에 이어 국무위원 회의가 잇따라 열리는 바람에 늦어 미안하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장관은 "현장에서 겪는 교사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서 "특히 올해부터 시행중인 7차 교육과정의 문제점을 지적해달라"고 주문했다.

대부분의 교사들은 교육부가 지난해 초등학교 1, 2학년생을 상대로 수준별 교육 등을 실시했고 올해 3, 4학년으로 확대하는 7차 교육과정의 문제점을 낱낱이 지적하고 교육부의 대책마련을 요구했다.

또 이들은 과밀학급 해소, 부족한 교사 충원, 도서·벽지 학교 교사의 처우 개선, 교원 편의시설 확충, 육아문제를 안고 있는 여교사들에 대한 지원 등이 선결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이장관은 "선생님들의 의견이 받아들여지도록 관련부처와 협의하겠다""적극 검토하겠다""교육부에만 의존하지 말고 현장에서 머리를 맞대고 창의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라" 등으로만 대답해 다소 맥빠진 분위기였다.

이장관은 특히 교사들과의 대화가 끝날 즈음에 "무능교사 퇴출에 대해서는 직접적으로 언급한 적이 없다"면서 "언론이 앞뒤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내용을 와전했다"며 파문의 책임을 언론에 돌렸다.

이장관은 그러면서 "무능하고 나태한 선생님이 많다면 교원 사기진작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고 반문해 '무능교사 퇴출 발언'이 소신에서 비롯된 것임을 엿보게 했다.

다음은 이장관과 참석 교사들과의 대화내용

-인천시 승학초등학교 조선옥 교사(47·여):7차 교육과정을 현장에서 적용하기에는 학급당 학생수가 많다. 특별실도 마련돼야 하고 자료개발을 해야 하는 등 현실적 여건이 구비돼 있지 않다. 대부분의 교사들은 조교사의 주장에 공감을 표한 뒤 "교육현장에서 자료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장관:교육부내에 마련된 7차 교육과정 지원센터를 적극 활용해달라. 현실적으로 기자재가 지원되도록 노력하겠다.

교육부 자료보다는 현장의 교사들이 실제로 적용해본 모범사례를 제시하고 이를 거꾸로 교육부에 제안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다. 교육부 내 연구원들의 연구보다는 현장 교사들이 머리를 맞대고 창의적인 노력을 하는 것이 바로 열린 교육이다.

-대전 양지초등학교 이희자 교사(48·여):현재 교사들은 가르치는 일에만 전념할 수 없고 각종 공문서 작성 등 부수적인 일에 시달리고 있다.

▲이장관:교사들이 잡무에 얽매이지 않고 가르치는 일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울산 영덕초등학교 김미진 교사(여):울산에서는 학급당 학생수가 많은데 비해 교사가 턱없이 부족하다. 정상적인 수업을 위해 충분한 교사 수급이 이뤄져야 한다.

▲이장관:학급당 학생을 1명 줄이는데 무려 1조원이 추가로 들어가는 등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다. 하지만 행정자치부와 논의해 교사수를 확충하기 위해 노력하겠다.

-이장관:초등학교에서도 왕따나 학교폭력 등 교실 붕괴현상이 있는지 궁금하다. 선생님들이 학생에게 끊임없는 관심을 보여 달라.

▲경북 포철동초등학교 김향미 교사(42·여):중고등학교와는 달리 아직은 초등학교에서 그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잠재적으로 내재돼 있다고 생각한다. 7차 교육과정에 대해 추상적인 설명서 대신 시범실시한 학교의 사례를 뽑아 정리된 사례서를 만들어 지급하고 우수인력을 보조교사로 지원해주길 바란다.

-이장관:(그는 논란을 빚은 '무능교사 퇴출' 발언에 대해 해명하려는 듯 교사들과의 대화 말미에 본의가 아니게 언론에 의해 왜곡됐다는 점을 강조했다). 얼마전 교사들이 공부 안한다는 소리를 한 적이 있는데 이는 교사들이 게으르다는 것이 아니라 교사들이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이 안돼 있다는 이야기였다. 무능교사 퇴출에 대해서는 직접적으로 언급한 적이 없다. 언론이 앞뒤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내용을 와전했다. (하지만) 무능하고 나태한 선생님이 많다면 교원 사기진작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교사들이 연구할 수 있는 분위기와 학생들과의 긴밀한 면담이 가능한 연구형 교무실을 만들어야 한다. 그동안에는 집무형 교무실로 운영된 것 같다.

초등학교 선생님들도 연구프로젝트로 연구비를 지원받고 해외연수를 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진정으로 열심히 가르친다면 교육부는 그에 대한 행정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한편 이장관은 이날 초등학교 교사를 시작으로 17일 중학교 교사, 18일 인문계 고교 교사, 31일 실업계 고교 교사의 순으로 모두 4차례 대화의 시간을 갖는다.

교육부는 시·도교육청이 추천한 3∼4명의 교사 중에서 대상자를 선정했으며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과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한국교총) 등 교원단체와 참석자 문제를 협의하지 않았다.

전교조 관계자는 "교육부로부터 장관과 일선 교사와의 대화에 관해 통보받지 못했지만 현재 교육위기 문제가 계속 제기되는 상황에서 이장관이 현장교사들을 만나는 자리인 만큼 충실히 듣고 현실성있는 정책마련의 토대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국교총도 "이런 행사의 경우 예전에는 교원단체들과 협의했으나 이번에는 협의하지 않았다"면서 "현장의 소리를 듣기 위한 행사이므로 교총이 나서기보다는 일선교사들의 목소리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희정·최건일/동아닷컴 기자 gaegoo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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