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리포트]“13억 소비자를 잡아라” 외국기업 구애경쟁

  • 입력 2001년 3월 8일 18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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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커우커러’(可口可樂·코카콜라)는 올해 설 연휴기간 때 중국 전역의 매장에 ‘새 얼굴’이 새겨진 콜라캔을 진열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중국의 전통인형 ‘아푸’(阿福)의 캐릭터를 등장시킨 것. 지난해 말에는 올해 뱀의 해를 기념해 뱀의 우스꽝스런 캐리커처가 든 캔을 선보이기도 했다.

코카콜라의 세계시장 진출사상 현지의 상징물이 캔에 그려진 것은 유례를 찾기 힘든 일이었다.

80년대 초 중국에 진출한 뒤 지금까지 8억달러를 투자해 20여개의 콜라병 제조공장을 세웠고 10만여명을 고용중인 코카콜라. 이처럼 중국에 안착한 세계 초일류기업도 13억 소비자를 향해 다양한 방법으로 ‘구애’(求愛)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시장 진출의 키워드는 모든 것을 중국식으로 바꾸는 ‘현지화’(localization)로 집약된다. 이는 단순히 기술협력이나 자본제공 등 ‘기술적 현지화’가 아니라 사회문화 배경의 철저한 이해와 이를 토대로 한 상품개발 등을 아우른다.

다시 말해 중국시장은 ‘중국에서는 중국식으로’를 외치며 외국기업들에게 ‘환골탈태(換骨奪胎)’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푸단대 루이밍지에(芮明杰·경영학)교수는 “중국시장을 점령한다기보다 중국시장에서 버림받지 않는 전략을 택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국제적으로 공인된 ‘기업 순위’가 이 현지화 정도에 따라 뒤바뀌는 일도 다반사다.

중국 진출이 조금 늦었던 KFC는 ‘큰더지’(肯德基)로 개명한 뒤 어린이를 마케팅 포인트로 정했다. ‘1가구 1자녀’의 흐름에 주목한 것. 놀이방 설치는 물론 생일을 맞은 아이와 그 가족들에게 공짜 생일파티까지 열어주고, 어린이 행사마다 제품을 내밀었다. 결과는 대성공. 상하이의 번화가 난징루(南京路)에 있는 KFC의 하루 매출액 50만위안(한화 750만원)은 인근 맥도널드의 4배에 해당하는 액수다.

이런 현지화 전략은 때때로 중국 소비자에 대한 ‘퍼주기’로 이어진다.

코닥사는 97년 “상하이를 놓치면 망한다”고 판단, 현지의 후지필름 아성에 도전장을 던졌다. 3달러이던 필름 한 통 값을 2달러로 낮췄다.

“9만9000위안(한화 1400만원)이면 당신도 사장이 될 수 있다”는 슬로건 아래 즉석현상소도 늘렸다. 설립 및 운영자금의 50%를 저리로 빌려주고 장비도 염가로 대여했다. 1년만에 전국에 5500여개의 코닥 즉석현상소가 생겼고 마침내 후지필름과 대등한 위치에 설 수 있었다.

▼글 싣는 순서▼
1. 총성없는 전쟁
2. "나를 더 이상 중국인이라 부르지 마라"
3. 피말리는 자발적 구조조정
4. 강요된 현지화:"내 돈은 내돈,네 돈도 내돈"
5. 발화하는 주식시장:'미래의 노다지'인가
6. 실리콘 밸리도 두려워하는 폭발 직전의 IT산업
7. 아시아 물류의 중심지로 거듭나는 상하이

각종 기부나 교육비 지원 등도 중요한 마케팅의 일환. 코카콜라는 지금까지 2000만위안을 들여 5개의 초등학교와 100여개의 도서관을 설립했고, ‘스쉬에’(失學·중퇴) 청소년을 위해 500만위안을 기부했다.

1월 상하이에서 열린 ‘국제기업혁신포름’에서 “‘윈윈 효과’의 전형”이라고 평가됐던 모토롤라는 현지직원 교육비에만 연간 4000만달러를 투입하고 있다.

외국기업들이 이렇게 현지화에 전력투구한다고 해서 중국인들이 기꺼이 시장을 내주는 것은 아니다.

자오강메이(趙抗美) 상하이시 외자(外資)종합처장은 “중국에서 활동중인 기업은 ‘중국기업’”이라고 말했다. 외국자본을 중국화하겠다는 자신감의 표현이다.

구체적으로 외국기업들이 주요 업종에 진출하려 할 때 당국은 ‘합작’형태로 유도한다. 그리고 이익금을 해외로 송금하려면 5단계 이상을 거쳐야 한다. 인민은행이 외환보유고 유지를 위해 외화의 흐름을 유리알 보듯 꿰뚫어 보고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지난해말 중국의 외환보유고는 1286억6000만 달러로 전년대비 24.3%나 늘었다.

홍콩 기업가인 주앙리키(庄立奇·43)는 “중국측은 13억 시장을 잡으려고 안달하는 외국기업들의 입장을 활용, 돈도 벌고 기술도 거저 얻는 양수겸장의 장사를 하고 있다”고 비꼬았다.

결국 중국에서 번 돈은 생산설비 확충 등에 재투자할 수밖에 없고 ‘합작’이라는 틀 때문에 수십년 축적해 온 기술도 고스란히 중국측에 넘겨줘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같은 상황을 ‘기회’로 연결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중국 소형차시장의 54%를 점유한 폭스바겐. 20여년전 진출 초기에는 공무용 차량, 국민소득이 높아지기 시작한 90년대 들어선 소형승용차에 주력하는 철저한 현지화 전략을 구사했다. 물론 합작형태지만 중국기업인지 독일업체인지 구별할 수 없을 정도다.

아무튼 ‘내 돈은 내 돈, 네 돈도 내 돈’이라는 중국과 ‘미래를 담보할 수 있는 기회의 땅이라 지금은 참는다’는 양측의 입장이 묘하게 얽혀 공존하는 것. 이제 WTO가입에 따른 시장개방으로 국제무대에서 그 중국시장의 실체를 검증할 시기가 점점 다가오고 있다.bbhe424@donga.com

▼중국기업 6가지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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