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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경제

선진 경영원리 기틀된 ‘SKMS’… 잇단 초대형 M&A 성공 이끌어

입력 2019-12-25 03:00업데이트 2019-12-25 0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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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100년 맞이 기획/한국기업 100년, 퀀텀점프의 순간들]
<7> 글로벌 SK 이끈 ‘인간중시 경영’
“설비 경쟁의 시대는 지났다. 이제부터는 ‘경영전쟁’의 시대다.”

고 최종현 SK그룹 회장은 1975년 새해를 맞이하는 자리에서 임직원들을 불러 모아 이렇게 말했다. 국내 선진 경영문화의 효시로 꼽히는 ‘SK경영관리체계(SKMS·SK Management System)’가 태동한 순간이다.

이때 시작된 SKMS 정립 프로젝트는 1979년 첫 결실을 거뒀다. 그해 3월 열린 선경(현 SK) 임원 세미나에서 최 선대 회장은 “주먹구구식의 낡은 경영 방법으로는 치열한 경쟁에 대처할 수 없다. 세계 일류 기업이 되려면 경영 관리 수준이 일류가 돼야 한다”며 4년에 걸쳐 마련한 SKMS를 소개했다.

당시는 2차 석유파동으로 모든 기업이 하루하루 버티는 데 힘을 쏟고 있는 상황이었다. 최 선대 회장은 ‘위기 속에서도 기업은 영구히 존속 발전해야 하며, 그 주체는 사람’이라는 신념을 SKMS에 담았다. 이후 SKMS는 ‘사람의 능력으로 도달할 수 있는 최고 수준’으로 정의되는 ‘수펙스(SUPEX)’ 추구라는 경영 철학으로 이어졌고, 지금까지 40년 동안 그룹 고비의 순간마다 등대와 같은 역할을 해왔다.

○ 성공한 대형 인수합병(M&A) SKMS가 기반

1980년 유공 인수는 SK그룹을 중견 기업에서 글로벌 기업으로 키운 결정적 계기였다. 1980년 정부가 유공 민영화 방침을 세우고 시장에 내놓자 삼성, 남방개발 등 쟁쟁한 기업들이 인수전에 참여했다.

선경이 낙점된 것으로 발표되자 “경험도 없는 선경이 공기업의 알맹이만 빼먹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쏟아졌다. 특히 유공 내부 인력의 동요가 심했다. 하지만 최 선대 회장은 파격적 조치로 이런 우려를 잠재웠다. 유공에 투입하는 인력은 사장인 자신과 수석부사장을 포함해 5명 내외로 한정하고, 이권 및 구매 관련 청탁을 절대 허용하지 않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SK 고위 관계자는 “인수 초기 선경을 회의적으로 바라보던 유공 엘리트 인력을 ‘사업 동지’로 확보하고, 나중에 이들을 그룹 내 요소요소에 배치했다”며 “최 선대 회장의 인간 중시 경영철학을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말했다.

1994년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 인수 당시에도 마찬가지다. ‘비효율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국영기업을 인수하여 어떻게 민간기업(제2이동통신사)과 경쟁해 이길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 평가가 많았다. 하지만 최 선대 회장은 당시 최고 통신전문가로 꼽히던 서정욱 박사를 최고경영자(CEO)로 영입하며 우려를 불식시켰다. 서 전 부회장은 1996년 세계 최초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상용화를 시작으로 한국 통신 산업을 선도하기 시작했다. 서 전 부회장은 “최종현 회장에게 하겠다고 보고하면 한 번도 ‘정말로 되는 거냐’라고 묻지 않고 지원했다”고 말했다.

2012년 최태원 SK 회장이 SK하이닉스를 인수할 때도 이런 경영철학은 이어졌다. 2013년 권오철 SK하이닉스 사장의 임기가 끝나자 최 회장은 이 회사에서 30년 가까이 연구개발(R&D)을 한 박성욱 당시 부사장을 CEO로 발탁해 6년간 재임하도록 하는 등 기존 인력에 전폭적 신뢰를 보냈다.

하영원 서강대 경영학부 교수는 “M&A 이후 항상 따라붙는 게 기존 조직과 새 기업의 갈등”이라며 “인간 위주의 경영을 원칙으로 못 박은 SKMS가 M&A에 따르는 불확실성을 없애고, 이종 산업들을 흡수해 SK를 중심으로 일체화하는 핵심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 확신 있으면 끝까지 판다

한 번 확신을 가지면 ‘끝’을 보는 SK의 DNA도 그룹의 모태인 석유화학사업부터 바이오사업까지 이어지고 있다.

‘석유에서 섬유까지’라고 표현되는 국내 최초의 석유화학사업 수직계열화 작업은 20년 넘게 밀어붙인 결과로 나왔다. 1969년 최종건 창업주가 시작한 국내 최초의 폴리에스터 국산화 작업이 시작점이다. 1973년 회사를 물려받은 최종현 회장은 본격적인 수직계열화에 착수했다. 1978년엔 당시로선 초고도정밀 기술이 필요했던 폴리에스터 필름 생산에 성공했다. 그리고 유공 인수로 정유사업에 진출했고, 북예멘 마리브 유전 인수에 성공(1984년)하며 원유 개발에 뛰어들었다. 1991년 울산콤플렉스 준공으로 원료에서 최종 제품 생산까지 전 공정을 독자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수직계열화가 완성됐다.

SK의 새로운 미래 성장 동력으로 떠오른 바이오도 마찬가지다. 최종현 회장은 1993년 당시 대전 대덕연구단지에 있던 유공의 화학연구소 산하에 대덕신약연구소를 설립하면서 바이오사업에 첫발을 내디뎠다. 최태원 회장은 아버지 뜻을 이어 지속 투자를 했지만 처음 개발한 뇌전증 치료제가 2008년 출시를 앞두고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이 좌절되는 쓰라림을 맛봤다. 하지만 최태원 회장은 포기하지 않았다.

마침내 26년 만인 지난달 SK바이오팜이 독자 개발한 뇌전증 신약 ‘엑스코프리’(성분명 세노바메이트)가 FDA 판매 허가를 받아냈다. 한국 기업이 해외 기업의 손을 빌리지 않고 신약 후보물질의 발굴부터 FDA 허가까지 독자적으로 이뤄낸 건 처음이다. ‘대를 이은’ 꾸준한 투자가 마침내 결실을 본 것이다.


▼ “경쟁력 원천은 사람”… 고등교육재단 46년째 지원 ▼

최태원 회장 “올드 비즈니스 탈피”… ‘사회적 가치 추구’ 새 비전 선언

고 최종현 SK 회장은 1980년대 초반 장학퀴즈 500회 특집이 방영될 무렵 임원들과의 식사자리에서 “SK가 그동안 투자한 돈이 얼마냐”고 대뜸 물었다. 1973년 광고주를 찾지 못해 폐지 위기에 놓인 장학퀴즈를 SK는 홀로 후원해오던 터였다. 한 임원이 “150억 원 정도”라고 답하자 최 회장은 “그럼 선경(현 SK)이 번 돈은 얼마냐”고 되물었다. 답을 못 하자 최 회장이 내놓은 대답이 “7조 원”이다.

당시 최 회장은 자신의 셈법을 이렇게 설명했다고 한다. “선경이 장학퀴즈를 단독 후원하면서 거둔 기업홍보 효과가 1조∼2조 원, 인재를 키우고 교육한 효과가 5조∼6조 원이다.”

최 회장은 국가와 기업의 경쟁력이 사람으로부터 나온다고 믿고 인재 양성에 힘썼다. 그는 “우리는 사회에 빚을 지고 있다. 기업의 이익은 처음부터 사회의 것이었다”는 철학을 꾸준히 강조했다. 장학퀴즈 후원에 이어 1974년에는 세계적인 학자 양성을 위해 사재를 털어 한국고등교육재단을 설립했다. 지금까지 3700명에게 유학비와 체재비를 아무 조건 없이 지원했다.

최태원 현 회장은 이런 부친의 의지를 경영 시스템으로 확립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해 “경제·사회적 가치를 함께 추구하는 새로운 SK 원년을 만들자”며 사회적 가치 추구 경영의 본격화를 선언한 것이다. 최 회장은 “SK가 지난 20년간 그룹 이익이 200배 성장하는 성과를 올렸지만 여전히 ‘올드 비즈니스’를 개선하는 수준”이라고 진단한 뒤 사회적 가치를 경영지표에 반영하는 ‘더블보텀라인’을 경영의 핵심 키워드로 제시했다.

이후 SK 전 계열사가 재무적 이익과 함께 사회적 가치 성과를 금액으로 환산해 공개하고 있다. 또 사회적기업이 창출한 사회적 가치를 측정해 인센티브로 환원해 주는 ‘사회성과인센티브’라는 유례없는 모델도 시행 중이다.

황태호 기자 tae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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