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오명철/복권 당첨, 喜悲

  • 입력 2004년 7월 26일 19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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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들이 부러워하던 일이 결과적으로 불행의 단초가 되고, 위로를 받던 일이 훗날 오히려 축복이 되는 경우가 있다. ‘새옹지마(塞翁之馬)’는 비단 옛 중국 변방에 살던 한 노인의 얘기가 아니라 동서고금을 초월해 적용되는 진리다. 특히 복권 당첨으로 ‘대박’이 터진 경우 후일담은 ‘쪽박’인 경우가 적지 않다. 복권 당첨은 ‘인생 역전’이면서 왕왕 ‘불행의 서곡(序曲)’이 되기도 한다.

▷결혼을 전제로 동거하던 남녀가 로또복권 1등 당첨 이후 여자가 잠적해버리는 바람에 남자가 반환 소송에 들어갔다고 한다. 이처럼 동거남녀는 물론 수십년간 살을 맞대고 산 부부와 오래된 우정도 갈라놓게 하는 것이 바로 복권 당첨의 ‘위력’이다. 한 여성 재미교포는 1993년 당시 미 복권 사상 최고액인 1800만달러짜리 복권에 당첨됐다가 8년 만에 거액을 탕진해 미국 법원에 파산 신청을 낸 적도 있다. 실제로 “횡재(橫財)하면 반드시 횡재(橫災)한다”며 복권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이도 있다.

▷일본에서는 최근 큰 수재(水災)를 당한 후쿠이(福井)현 지사 앞으로 익명의 독지가가 2억엔에 당첨된 복권 한 장을 수재의연금으로 써달라며 우송한 일이 화제다. 국내에서는 친목계원 5명이 공동으로 돈을 모아 로또복권을 샀다가 한 장이 1등으로 당첨되자 공평하게 당첨금을 나누고 공동으로 소년소녀가장돕기 기금 5억원을 쾌척한 적이 있다. 가난한 형이 추석 선물로 식당종업원인 동생에게 준 복권이 1, 2등에 당첨돼 18억원을 받게 되자 동생은 1억원만 갖고 형에게 입금, 형이 이를 가족에게 골고루 나눠 준 아름다운 사연도 있다.

▷미국의 어느 신문이 1000만달러 이상의 당첨금을 탄 뒤 10년 이상 지난 사람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전보다 더 불행해졌다’고 응답한 사람이 64%에 달했다. ‘비슷하거나 더 행복해졌다’고 응답한 사람들은 거의 예외 없이 이전과 같은 생활수준을 유지했거나 당첨금의 상당부분을 사회단체에 기부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로또 당첨 확률이 814만분의 1이라고 하니 로또에 당첨되지 않아 불행해지지 않은 것으로 애써 위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오명철 논설위원 osc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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