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경제정책 리더들]<3>경제부처 차관 11人

  • 입력 2003년 4월 7일 18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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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차관의 주요 업무는 해당 부처를 챙기는 ‘집안 살림’이다. 대외활동을 많이 하는 장관이 ‘아버지’라면 차관은 ‘어머니’ 역할을 해야 한다. ‘2인자’의 특성상 너무 튀어서도, 그렇다고 무조건 ‘예스맨’이어서도 안 되는 쉽지 않은 자리다. 경제분야 ‘빅3 차관’으로는 김광림(金光琳) 재정경제부 차관, 변양균(卞良均) 기획예산처 차관, 차관급인 권오규(權五奎) 대통령정책수석비서관이 꼽힌다. 김칠두(金七斗) 산업자원부 차관, 변재일(卞在一) 정보통신부 차관, 권오갑(權五甲) 과학기술부 차관은 경제의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고 있다. 이 밖에 시장질서 확립이 주업무인 이동걸(李東傑)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과 조학국(趙學國)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 국토의 효율적이고 균형적 발전에 신경 써야 하는 최재덕(崔在德) 건설교통부 차관, 김정호(金正鎬) 농림부 차관, 최낙정(崔洛正) 해양수산부 차관이 경제차관에 들어간다.》

▼김광림 재경부 차관 ▼

지방에서 고교 및 대학을 나왔으면서도 ‘웬만한 학교’ 출신은 명함도 못 내미는 ‘경제팀 수장(首長)부처’ 차관까지 올랐다.

옛 경제기획원에서 공직생활을 출발했다가 고 서석준(徐錫俊) 경제부총리가 기획원 차관에서 상공부장관으로 갈 때 비서관으로 불려가 여러 부처를 거쳤다. 상사 의중을 잘 읽고 조용히 일을 처리하면서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결론을 끌어간다.

기획원 예산총괄과장 때 현재 경제부처 차관들과 예산배정 문제로 자주 만났다. 1994년 대통령기획조정비서관 때 재정경제원 출범의 실무를 맡았다. 이 과정에서 옛 재무부 출신들로부터 ‘원성’을 사기도 했다.

소문난 진돗개 애호가. 행정고시 후배이며 연령이 적은 김용덕(金容德) 관세청장이 손위 동서다. 금융분야 경험이 거의 없는 것이 약점.

▼변양윤 예산처 차관 ▼

기획원 선배인 이진설(李鎭卨) 서울산업대 총장이 “변양균은 공무원이 아니라 지사(志士)”라고 평할 정도로 소신이 뚜렷하다. 기획원 예산총괄과장 시절 김영삼(金泳三) 정부 초기의 ‘실세’였던 박재윤(朴在潤)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이 예산안에 ‘브레이크’를 걸자 새벽에 직접 전화를 걸어 따진 일화가 있다. 노태우(盧泰愚) 정부 때는 ‘황태자’로 불렸던 박철언(朴哲彦) 체육부 장관이 추진하던 역점사업에 대해 “이 사업을 하려면 나부터 자르라”고 반대해 무산시켰다.

대학 시절 신문사 신춘문예 에세이 부문에 입선했고 그림에도 조예가 있다. 아직 화가의 꿈을 버리지 못해 집무실에 스케치북이 있다. 소신이 너무 지나치다는 평도 있다.

▼권오규 정책수석 ▼

이정우(李廷雨) 대통령정책실장을 보좌해 청와대에서 경제정책을 조율하는 역할을 한다. 범정부 차원의 태스크포스를 구성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거론됐을 만큼 ‘아이디어 맨’. 국제통화기금(IMF) 대리이사 등을 지낸 ‘국제경제통’으로 해외에서 열린 한국경제설명회에서 외국인 참석자와 몇 시간 동안 영어로 질의응답을 주고받을 정도다.

김대중(金大中) 정부 시절 TV 등의 정책토론회에 정부측 대표 논객으로 자주 나갔다. 2000년 11월에는 정운찬(鄭雲燦) 서울대 총장과 ‘재벌 개혁’을 둘러싸고 ‘온라인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거시경제 핵심 요직을 모두 거쳤으나 금융분야 경험이 없고 좀 차갑다는 평도 듣는다.

▼김칠두 산자부 차관 ▼

선이 굵고 보스 기질이 있다. 차관보 시절 휴일에 출근하면 부하들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사무실 문을 안에서 잠그고 일을 했다. 사무관 시절부터 ‘우직한 황소’란 별명을 갖고 있다. 줄곧 실물경제분야 정책을 맡아와 스스로 ‘산업 소대장’으로 부른다. 산자부의 과제인 ‘정체성(正體性) 확보’를 위해 ‘신(新) 산업정책’ 비전을 만든 주역으로 현실성을 둘러싸고 찬반 논란을 빚기도 했다. 6·25전쟁 때 부친이 전사해 홀로 남은 모친에 대한 효성이 남다르다. 에너지분야 경험이 적은 편.

▼최재덕 건교부 차관 ▼

달변은 아니지만 중요 브리핑 때마다 촌철살인의 조어(造語)능력이 뛰어나 ‘언어의 마술사’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주택도시국장 때부터 ‘돌발사고만 없으면 최소한 차관까지는 간다’는 평을 들었을 정도로 건교부 내에서 인정받아왔다.

대구 경북고 1학년을 마치고 중퇴해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에 진학했으며 행시 합격 전 한때 인천 선일여고에서 국어교사를 하기도 했다. 자타가 공인하는 애주가(愛酒家). 교통분야 경험은 비교적 적은 편이다.

▼변재일 정통부 차관 ▼

국내 초고속 인터넷망의 ‘숨은 설계자’로 꼽힌다. 국민 인터넷PC 보급사업, 사이버코리아21 등이 그의 손을 거쳤다.

행시 출신이지만 기술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유머 감각이 있다. 통신분야 국내 최고의 전문가 집단인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의 박사들조차 그가 주재하는 회의에 참석할 때는 꼭 ‘예습’을 해야 할 정도. 국무총리실 등에서 일하다 1급으로 뒤늦게 정보통신부로 옮겨와 통신정책을 맡을 기회가 없었던 것이 약점으로 꼽힌다.

▼이동걸 금감위 부위원장 ▼

대통령직인수위원을 지내 노무현(盧武鉉) 대통령과 ‘코드’가 맞는다는 평. 산업연구원(KIET) 한국개발연구원(KDI) 금융연구원 등 국책 연구기관을 두루 거친 ‘개혁적 관변(官邊)학자’로 꼽힌다. 인수위 시절 노 대통령이 까다로운 질문을 해도 바로 순발력 있게 대답해 ‘자판기’란 별명을 얻었다.

금감위 김석동(金錫東) 금융감독정책 1국장과 금감원 이길영(李吉寧) 감독총괄국장이 경기고 동기(68회)다. 또 금감위의 이종구(李鍾九) 양천식(梁天植) 상임위원은 고교 및 대학 4년 선배다. 금감위 부위원장 취임 이후에는 자세를 잔뜩 낮추고 있다.

▼조학국 공정위 부위원장 ▼

일처리가 꼼꼼하고 윗사람 의중을 잘 읽는 참모형. 별명이 ‘자물통’일 정도로 말을 아낀다. 외환위기 후 공정위 독점국장을 지내며 대기업에 대한 계좌추적권을 도입했다. 2001년 언론사 조사 때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김진표(金振杓) 경제부총리와 행시 13회 동기, 이정우 정책실장과는 서울대 상대 68학번 동기다. 리더십이나 돌파력은 다소 떨어진다는 평.

▼김정호 농림부 차관 ▼

일 처리가 치밀해 ‘내공’이 강하다는 평을 듣는다. 그의 밑에서 일하면 몸은 고달프지만 일은 확실히 배워 ‘업무 사관학교 교장’으로 불린다. 농정(農政) 관료로는 드물게 공대를 졸업했다. 차관보 시절 논농업 직불제, 생산조정제 등의 정책 입안을 주도했다. 아랫사람들과의 술자리를 즐긴다. 추진력은 다소 부족하다는 평.

▼최낙정 해양부 차관 ▼

아이디어가 많다. 노 대통령이 해양부 장관으로 있을 때 ‘다면 평가제’를 도입하도록 제안했다. 2001년 9월부터 최근까지 해양부 인터넷 홈페이지에 ‘꿈과 사랑을 함께 나누며’라는 게시판을 만들어 공직사회의 형식주의를 비판했다. 끊고 맺음이 분명하고 일각에서는 ‘너무 튄다’는 지적도 받는다.

▼권오갑 과기부 차관 ▼

금속공학을 전공한 공학도지만 행시를 거쳐 차관까지 올랐다. 소탈한 성격으로 부하 직원들은 물론 과기부 출연 연구원들과 스스럼없이 지내 ‘덜 관료적’이란 평을 듣는다. 과기부 핵심요직을 모두 거쳤고 기획관리실장 시절 대(對)국회 업무를 성공적으로 했다는 평. 특별취재팀

▼경제부처차관 11명 통계표 ▼

경제차관들은 업무특성상 부처 사정을 정확히 알아야 하기 때문에 오랜 공직생활을 거친 정통관료 출신이 압도적으로 많다. 장관과 실·국장은 물론 과장이나 사무관까지 어느 정도 깊이 파악해두지 않으면 차관 역할을 하기가 쉽지 않다.

11명의 경제차관(권오규 대통령정책수석비서관 포함) 가운데 여러 국책연구원에서 활동한 이동걸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을 제외한 10명이 모두 행정고시를 거친 관료출신이다.

또 옛 경제기획원 출신인 김광림 재정경제부 차관이 잠시 ‘외도(外道)’해 상공부와 특허청 등을 거쳐 ‘친정’ 격인 재경부로 돌아왔고 권오규 전 조달청장이 청와대로 들어간 것을 빼면 모두 해당 부처 1급에서 내부승진했다. 이처럼 차관급에서 내부승진이 많은 것은 각 부처 후속 인사의 폭을 크게 만든 한 원인이 된 것으로 풀이된다.

행시 기수는 조학국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이 13회로 가장 빠르고 권오갑 과학기술부 차관이 21회로 가장 늦다. 내각 경제팀의 양대 축인 재경부 김 차관과 기획예산처 변양균 차관은 행시 14회 동기인 것은 물론 두 명 모두가 기획예산처 재정기획국장을 지내는 등 공통점이 많다.

김칠두 산업자원부 차관까지 포함하면 행시 14회가 3명으로 가장 많고 김정호 농림부 차관과 최낙정 해양수산부 차관 등 17회가 두 명이다.

경제 부처 차관급 인사에서 눈에 띄는 특징 중 하나는 지역적으로 ‘영남 편중’이 두드러진다는 점. 11명 가운데 청와대 권 수석비서관(강원 강릉), 변재일 정보통신부 차관(충북 청주), 공정위 조 부위원장(서울), 과기부 권 차관(경기 고양)을 뺀 나머지 7명이 영남 출신이고 호남은 한 명도 없다.

이는 국세청장 관세청장 조달청장 등 ‘경제분야 차관급 외청장’의 과반수가 호남 출신인 것과 뚜렷이 대조를 이룬다.

또 청와대의 차관급 비서관을 포함한 전체 차관급(외청장 포함) 40여명의 출신지역이 비교적 균형 있게 안배된 점을 감안하면 유별나게 경제차관에 영남 출신이 많은 셈이다.

경제차관들의 평균 연령은 54.1세였다. 해양부 최 차관(49세)만 40대이고 나머지는 50∼56세였으며 50대 초반이 주류를 이룬다.


구자룡기자 bonhong@donga.com

▼2003 경제정책 리더들 취재팀 ▼

▽팀장〓권순활 경제부 차장

▽팀원〓구자룡 김동원 김광현 천광암 공종식 황재성 이은우

송진흡 고기정 기자(이상 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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