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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5월 15일 19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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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총장이 충북 충주의 교현소학교에 입학한 것은 일제 때인 1943년. 지금은 여든을 훌쩍 넘기셨지만 그때만 해도 아리따운 20대 여교사였던 김 선생님은 유난히 가난했던 박 총장을특히 귀여워했다. 배가 고파 운동장 한쪽에 힘없이 앉아 있을 때 선생님이 말없이 도시락을 내민 적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힘들 때마다 따로 불러 용기를 북돋아주시던 선생님의 자상한 얼굴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도 나의 가장 큰 자산은 선생님의 그때 가르침과 도움입니다.”
박 총장이 60년대 초 경기 파주의 광탄보육원과 인연을 맺은 이래 40년 가까이 줄곧 보육원을 돕고 있는 것도 김 선생님에 대한 그 나름의 보은(報恩)이다. 박 총장은 78년 광탄보육원이 문을 닫은 이후엔 대전 유성에 있는 천양원을 도와오고 있다.
“코흘리개 꼬마들이 장성해 ‘아버지’라고 부르며 찾아올 때가 가장 행복합니다.”일찍 부모를 여읜 그에게 5월은 그리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이제 5월이 되면 박 총장은 누구보다 바쁘고 행복하다.
<윤종구기자>jkm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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