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류타는 공직사회下]「자존심」살릴 대책 급하다

  • 입력 1999년 5월 19일 19시 21분


김기재(金杞載)행정자치부 장관은 요즘 직원들에게 “제발 자존심을 지켜달라”는 당부를 자주 한다.

“운항 중인 비행기 기체에 결함이 생겼을 때 승무원이 동요하면 그 비행기는 끝장이다. 승무원이 정신을 차려 승객들을 안심시키고 무사히 비행을 마치도록 해야 한다. 아무리 공무원이 월급쟁이가 돼가는 추세라지만 위기에 처한 나라를 나몰라라 하고 밥그릇 걱정이나 해서야 되겠는가.”

실업예산을 충당하느라 뭉텅 잘려나간 월급봉투, 승진은커녕 언제 퇴출될지 모르는 불안감, 개방형임용제 성과급제니 하는 낯선 제도들….

2차례 구조조정을 끝낸 정부로서는 변화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일손을 놓다시피한 공무원들이 다시 마음을 다잡고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사실 공직사회의 동요는 심각한 수준이다.

행정자치부 인터넷 홈페이지의 ‘열린마당’에는 공직사회 내부의 불만의 목소리가 하루 2백여건씩 쏟아지고 있다. 조회수도 건당 수백건에 이르러 ‘합법적인 시위의 장’이 된 듯한 느낌이다.

“9년째 공무원 생활을 하고 있는 7급이다. 이번달 봉급명세서를 보고 내 자신이 한심했다. 전세방 얻느라 빌린 대부금 14만원을 공제하면 수령액이 48만4천5백10원. 여기서 두 아이 보육료 25만원을 빼고나면 23만4천5백10원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우리 마누라는 도저히 살 수 없으니 공공근로라도 하게 해달라고 조르는데 가장이 공무원이니 그것도 할 수 없다.”(조까치)

“공무원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담아낼 수 있는 노동권을 보장하고 노동조합설립을 즉각 실시하라.”(공노준)

공무원들의 사기를 북돋울 수 있는 방안은 어떤 것이 있을까.

한국행정연구원이 지난해 10월 중앙과 지방 공무원 2천여명을 대상으로 ‘공무원 사기진작 방안’에 대해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59.4%가 ‘보수 인상’을 꼽았다. 그 다음은 △신분보장(10.3%) △승진(9.7%) △자기발전의 기회(5.6%) △근무환경(5.1%) 등의 순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보수나 인사와 관련해서는 정부가 별로 내줄 것이 없다는 데 있다.

“경기가 완전히 회복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수당을 크게 올려줄 수도 없다. 승진도 마찬가지다. 자리가 없어 4급이상 공무원이 2백41명이나 잘려나가는 마당에 승진인사가 어디 그리 쉽겠는가.”(중앙부처 기획관리실장 K씨)

그러나 고려대 정부학연구소 이헌수(李憲修)전임연구원은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사기를 진작시킬 수 있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다”고 조언한다.

예산문제로 보수의 절대액은 늘릴 수 없더라도 합리적으로 배분을 하면 ‘내가 열심히 일한 만큼 보상을 받는다’는 기대를 갖도록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년부터 시행되는 성과급제나 연봉제와 관련, 업무실적을 정확히 측정할 수 있는 지표를 개발해 누구나 결과에 승복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가 되는 것도 바로 사기와 직결될 것이기 때문이다.

승진도 마찬가지. 합리적인 기준에 따라 승진인사가 이뤄진다는 믿음을 주는 것이 곧 사기진작책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진영기자〉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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