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뛰는 사람들]④단대 사회과학부 합격주부 정명수씨

  • 입력 2002년 1월 6일 18시 40분


“지금도 가끔씩 ‘이게 꿈은 아닐까’ 하고 팔을 꼬집어봅니다. 내가 정말로 대학에 들어가다니….”

주부 정명수(鄭明壽·55·서울 성동구 행당동)씨의 2002년 새해는 다른 어떤 새해보다 큰 감회와 기대로 가득하다. 지난해 6월 단국대 수시모집에 지원, 사회과학부에 합격해 올 봄 ‘늦깎이 대학생’으로 새 인생을 살게 된 것.

“고교 중퇴 이후 37년 만에 소원을 이뤘죠. 지금은 대학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솔직히 걱정이 앞섭니다.”

어릴 적 소설가가 꿈이었던 정씨의 최종 학력은 초등학교 졸업이 전부다. 당시 백혈병을 앓다 세상을 뜬 남동생의 병 수발과 전쟁 이후의 가난 때문에 상급학교에 갈 수가 없었다. 이후 중학교와 여자 상업고교에 편입했지만 역시 집안 사정으로 학업을 중도에 그만둬야 했다.

하지만 ‘배움의 열망’은 좀처럼 식지 않았다.

“젊은 시절 직장을 다니며 퇴근 후 학원에서 검정고시를 준비했습니다.”

늦은 밤까지 코피를 쏟으며 책과 씨름했지만 마음처럼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그리고 몇 년 뒤 평범한 주부가 된 정씨는 바쁜 일상에 쫓기며 오랫동안 꿈을 ‘유보’한 채 살아왔다.

그러다 6년 전 TV에서 우연히 같은 처지의 중년 주부에게 중고교 과정을 가르치는 학교를 보고 부리나케 달려가 입학 신청을 마쳤다.

너무 힘들어 ‘왜 이 고생일까’ 하는 후회도 많았다. 중년의 ‘굳은 머리’에 돋보기를 써야 볼 수 있는 영어단어와 수학공식을 외우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

하지만 또다시 포기할 수는 없었다. 틈만 나면 교과서를 꺼내어 소리내어 읽고 부족한 부분은 학원을 찾아 보충했다. 지하철과 버스로 3시간이 넘는 통학길이었지만 단 한번도 결석하지 않았다.

지난해 6월 대학의 수시모집 공고를 본 정씨는 용기를 내 원서를 접수했다. 선발인원은 단 1명. 합격자 발표날 ‘떨어져도 실망 말자’며 스스로를 타이른 뒤 등교한 정씨에게 믿을 수 없는 ‘낭보’가 날아들었다.

“합격입니다. 축하드려요.”

순간 지난 세월의 역경이 주마등처럼 스치면서 정씨의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말할 수 없는 기쁨과 벅찬 감격에 선생님과 동료들 품에서 한참을 울었습니다.”

요즘 정씨는 대학생활 준비로 24시간이 모자란다. 오전에는 영어와 한문, 일어 학원을 다니고 저녁에는 컴퓨터 학원을 들른 뒤 집에서도 늦은 밤까지 책을 펼쳐놓는다.

정씨는 “힘들게 맺은 학업의 ‘연’을 죽을 때까지 놓지 않겠다”며 “대학 졸업 후에도 힘 닿는 데까지 배우고 또 배울 것”이라고 말했다.윤상호기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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