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 중심 의대로 전환… ‘의사과학자’ 양성 인프라 구축”

  • 동아일보

편성범 고려대 의과대학장
전액 장학금-별도 커리큘럼 등 선발 단계부터 새로 설계해야
개인 아닌 의대 차원 연구 전환…실패도 인정하는 평가문화 필요

편성범 고려대 의과대학장. 고려대 의대 제공
편성범 고려대 의과대학장. 고려대 의대 제공
“의과대학이 무엇을 성취로 인정하느냐가 연구와 교육의 품격을 좌우한다.”

편성범 고려대 의과대학장은 ‘연구 중심 의과대학’ 전환을 단순한 시설 확충이 아니라 학문 공동체의 기준을 다시 세우는 일로 정의했다. 쉽게 얻는 성과보다 긴 호흡의 탐구와 후속 세대 양성을 우선하는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는 것이다.

고려대 의대는 정릉 메디사이언스파크를 거점으로 MRI(자기공명영상) 정밀영상연구센터를 구축하며 임상의사와 기초 연구자가 같은 플랫폼에서 실험을 설계·검증·표준화하는 ‘원스톱 중개 연구’ 체계를 강화하고 있다. 글로벌 인재, 특히 의사과학자를 체계적으로 키우겠다는 목표도 전면에 내걸었다. 편 학장에게 연구 인프라 고도화와 글로벌 협력 전략, 의사과학자 양성의 조건, 의과대학 문화 전환의 방향을 물었다.

―요즘 고려대 의대가 가장 크게 바뀌고 있는 지점이 무엇인가.

“한마디로 연구의 중심축을 의과대학 전체로 옮기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개인 연구자가 논문을 내는 방식으로 연구가 돌아갔다면 이제는 의과대학 차원에서 ‘의대-연구생-임상의사’로 이어지는 후속 세대를 체계적으로 키우는 구조로 패러다임을 바꾸려 한다. 임상적으로 뛰어난 교수는 많이 길러냈다. 그렇다면 의과대의 다음 역할은 임상 역량에 연구 역량을 더해 의사과학자를 키우는 일이라고 본다.”

서울 성북구 정릉에 위치한 고려대 메디사이언스파크 정몽구 미래의학관.
서울 성북구 정릉에 위치한 고려대 메디사이언스파크 정몽구 미래의학관.

―정릉 메디사이언스파크와 MRI 정밀영상연구센터가 변화의 상징처럼 보인다. 왜 MRI였나.

“MRI 정밀영상연구센터는 다학제 플랫폼을 만들기 위한 핵심 인프라다. 의과대학이 연구용 MRI를 도입하고 직접 운영하는 것은 국내에서 처음이다. 임상의사가 진료과에서 임상 경험으로 얻은 질문을 연구로 연결하려면 바로 실험을 설계하고 실행할 수 있는 연구 플랫폼이 있어야 한다. 장비 자체의 스펙도 중요하지만 핵심은 ‘정밀하게 측정하고 표준화할 수 있는가’다. 미세 뇌 구조와 기능 영상을 더 정밀하게 구현할 수 있고 인공지능(AI) 기반 자동화 기술과 고채널 코일을 통해 복잡한 촬영도 안정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무엇보다 연구자가 장비를 ‘기다리는’ 구조가 아니라 예약·테스트·표준화 체계를 갖춰 연구가 즉시 실행되도록 설계했다는 점이 차별점이다.”

―‘연구 중심 의과대학’은 기존 의과대학과 무엇이 다른가.

“연구를 한다는 말이 개인의 성과로만 환원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연구 중심 의과대학은 의과대학이 조직적으로 연구 생태계를 만들고 그 안에서 우수한 그룹이 성장하도록 돕는 구조다. 학부-대학원-연구-임상으로 이어지는 경로를 촘촘히 설계하고 국제 연구 경험과 공동 프로젝트 참여를 장려하며 단계별 트랙을 운영해야 한다. 교육을 똑같이 하면 의사과학자는 만들어지기 어렵다. 뽑을 때부터 달라야 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의 ‘트랙’이 필요한가.

“의사과학자 트랙은 선발 단계에서부터 별도로 설계해야 한다. 전액 장학 등 확실한 지원이 동반돼야 하고 커리큘럼도 달라야 한다. 의예과 체계를 포함해 교육 구조를 재검토하는 논의도 필요하다. 의사과학자 양성은 선언이 아니라 시스템이다. 중간에 트랙을 나누고 연구를 실제로 수행하는 경험을 쌓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의사과학자의 길로 들어가기 어렵다.”

고려대 의대 의사과학자 양성사업단(KU-MSTP) 국제 심포지엄에서 미국 예일대 바바라 카지미에르차크 교수(왼쪽)와 컬럼비아대 앤서니 페란테 교수가 연구자의 성과 발표 후 질의를 하고 있다. 맨 오른쪽은 편성범 학장.
고려대 의대 의사과학자 양성사업단(KU-MSTP) 국제 심포지엄에서 미국 예일대 바바라 카지미에르차크 교수(왼쪽)와 컬럼비아대 앤서니 페란테 교수가 연구자의 성과 발표 후 질의를 하고 있다. 맨 오른쪽은 편성범 학장.


―예일대, 노팅엄대 등과의 협력이 빠르게 확장되고 있다. 해외 명문대가 고려대 의대와 손잡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


“협력은 결국 사람과 성과를 본다. 고려대라는 브랜드 파워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학생과 연구자의 퍼포먼스다. 해외로 간 박사 후 연구원(postdoctoral researcher·포닥)이나 연수자들의 연구 성과가 나쁘지 않았고 의과대학이 의사과학자를 키우겠다는 미션을 분명히 하면서 협력의 접점이 커졌다. 예일대와는 학생 실습과 박사 진학 기회를 포함해 구체적 프로그램으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우수한 인력이 들어오면 그 자체가 예일대에도 이득이고 고려대 의대는 글로벌 환경에서 연구를 수행할 기회를 확보하게 된다.”

―의사과학자를 키우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보나.

“환경이다. 연구는 기술만 가르친다고 되는 게 아니다. 합리적 추론, 질문하는 태도, 학구적인 분위기, 실패를 견디는 시간까지 포함해 연구가 일상인 환경이 필요하다. 연구 중심 병원·연구 중심 학교가 함께 맞물려야 한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학생들에게 ‘돈보다 더 큰 기쁨과 행복’이 있다는 비전을 보여줄 멘토가 줄어드는 것이 어려운 점이다.”

―학장으로서 ‘문화’를 강조했다. 어떤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는 의미인가.


“의과대학은 성과를 무엇으로 평가하느냐에 따라 공동체의 방향이 정해진다. 연구와 교육이라는 본령이 제대로 존중받고 긴 호흡의 성과 축적이 정당하게 평가받는 기준이 필요하다. 교수는 교육과 연구가 기본이고 진료는 중요한 역할이지만 본령을 대신할 수는 없다. 평가와 보상 체계가 단기 성과나 외형적 지표에만 쏠리면 멘토십과 연구의 질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공동체가 ‘무엇을 가치로 인정할 것인가’ 하는 기준을 다시 세워야 한다.”

―임기 동안 어떤 변화를 만들고 싶나.

“후속 세대 양성과 의사과학자 생태계를 제대로 돌게 하는 것이다. 좋은 연구를 위해서는 많은 연구비가 든다. 연구가 성과로 이어지고, 다시 다음 연구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필요하다. 연구의 질적 평가를 강화하고 교수들이 연구 역량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구조를 고민해야 한다. 연구의 선순환 사이클에 들어가는 교수가 많아질수록 연구원과 학생이 성장하고 생태계가 커진다. 그 생태계가 있어야 해외의 우수한 인재도 다시 유입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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