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진했을때 새로운 에너지 넘쳐”…부상도 못 막은 ‘산 달리기’ 사랑[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2월 4일 12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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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의 희열이라고 해야 할까요? 산을 달리는데 어느 순간 가급적 긴 거리를 달리게 됐습니다. 산을 오르고 내리고 힘들지만 완전히 탈진했을 때 새로운 에너지가 몸속에 끓어 넘치는 기분이 들었어요. 그 때부터는 산을 전투적으로 타고 있습니다.”

정재원 씨가 산을 오르고 있다. 2022년 서울100 트레일러닝대회 50km를 완주했다. 그는 “산을 달려 탈진해야 새로운 에너지가 생긴다”고 했다. 정재원  씨 제공.
정재원 씨가 산을 오르고 있다. 2022년 서울100 트레일러닝대회 50km를 완주했다. 그는 “산을 달려 탈진해야 새로운 에너지가 생긴다”고 했다. 정재원 씨 제공.
마쉬코리아에 근무 중인 정재원 씨(43)는 달리기과 클라이밍 마니아다. “내 최애 스포츠”라고 당당히 말한다. 클라이밍 하다 왼쪽 발목 인대가 끊어지고 산을 달리다 왼쪽 무릎 측면 인대를 다쳤지만 그의 ‘산 달리기’는 멈추지 않고 있다.

“2015년쯤 일겁니다. 실내에서 스포츠클라이밍을 하다 떨어져 왼쪽 발목 인대 3개가 끊어 졌습니다. 병원을 찾았는데 두 곳은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고, 한 곳은 수술하면 다시 끊어지니 하지 말고 재활하자고 했어요. 전 후자를 택했죠. 한 1년 반 운동을 하지 못했지만 오히려 발목을 강화하는 훈련을 많이 하게 됐고 부상이 없어야 운동도 즐길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더 주의해서 운동을 하게 됐습니다.”

정재원 씨가 2022년 울주 트레일 나인피크 105km에 출전해 운문산 정상에서 포즈를 취했다. 정재원 씨 제공.
정 씨의 달리기 사랑은 예비군으로 복학한 대학시절인 2003년 시작됐다. 그는 “해병대 갔다 온 친구가 함께 운동하자고 했다. 당시 술을 전혀 하지 못하던 때라 흔쾌히 따라 나섰다”고 했다.

“그 즈음 대학 축제 때 5km 단축마라톤 대회가 열려 참가했는데 완주한 뒤 느낀 성취감과 희열이 저를 계속 달리게 만들었습니다. 그 때쯤 스포츠브랜드들이 5km, 10km 단축마라톤대회를 개최하고 있었고 적극 참가했습니다.”

달리기의 매력에 빠진 뒤 수업이 끝난 뒤 거의 매일 5~10km를 달렸다. 학교 캠퍼스와 서울 한강변을 주로 달렸다. 주말에는 20km 이상 중장거리를 달렸다. 그는 “술을 못 마셨기 때문에 저녁엔 늘 시간이 남았다”고 회상했다. 42.195km 마라톤 풀코스는 2007년 완주했다. 그해 가을 열린 대회에서 3시간47분대에 완주했다.

정재원 씨가 2021년 서울 둘레길 157km 대회에 출전해 질주하고 있다. 그는 36시간만에 완주했다. 정재원 씨 제공.
마라톤을 즐기던 그는 2011년 사막마라톤 등 극한의 오지를 달린 ‘오지레이서’ 유지성 OSK 아웃도어스포츠코리아 대표(52)가 쓴 ‘하이 크레이지’란 책을 보고 사막마라톤 완주를 결심했다. 하이 크레이지는 유 대표가 사하라와 고비, 아타카마 등 세계 3대 사막마라톤과 남극마라톤까지 완주하는 등 15번의 오지 레이스 4000km에 도전해 완주한 경험담을 담고 있다. 정 씨는 여기저기 수소문해서 유 대표를 만났고 결국 2017년 고비사막마라톤을 완주했다. 고비사막마라톤은 6박7일간 250km를 달리는 ‘지옥의 레이스’다.

“힘겨웠지만 절대 잊을 수 없는 레이스였죠. 끝이 보이지 않는 지평선을 뛰면서 제가 어디를 뛰고 있고 잘 가고 있는 건지에 대한 두려움이 제일 컸습니다. 그런데 그런 막연함을 극복하고 골인 지점에 도착했을 때의 희열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컸습니다.”

어릴 때부터 산을 좋아했던 정 씨는 사막마라톤을 준비하면서 산을 달리는 트레일러닝에도 빠져 들었다.

정재원 씨가 2020년 제주 트렌스 트레일러닝대회에 출전해 한 오름을 오르다 포즈를 취했다. 정재원 씨 제공.
“그냥 산에 가면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이 들어요. 나무와 꽃, 풀, 바위, 개울…. 자연과 하나 된다는 느낌이랄까? 그리고 콘크리트와 아스팔트 사이에 끼어 있는 것보다는 산에 있는 게 좋잖아요.”

국내에서 열린 트레일러닝은 거의 빠지지 않고 다 뛰었다. 코리아 50K, 노스페이스 TNF 100, 서울 100K(서울 국제울트라트레일러닝대회) 50km, 서울둘레길 157km. 트렌스제주 트레일러닝 100km…. 서울둘레길 157km는 36시간에 완주했다. 21km를 달리며 온갖 장애물을 넘는 스파르탄레이스 비스트도 두 차례 완주했다.

“제가 국내에서 열리는 트레일러닝은 거의 다 완주했는데 울주 트레일 나인 피크는 두 번 출전해 다 포기했습니다. 2021년엔 80km에서 포기했습니다. 40km쯤에서 왼쪽 무릎 인대를 다쳤는데 참고 달리다 극한 상황에서 포기했죠. 인대 파열은 나중에 병원에 가서 알았습니다. 지난해에는 회사를 옮기고 하는 과정에서 운동을 제대로 못한 상태에서 나갔다가 60~70km쯤에서 자체 포기했어요. 천천히 달리면 완주는 할 수 있었는데 그렇게 완주하는 것은 의미가 없을 것 같아서 멈췄죠.”

정재원 씨가 2021년 스파르탄레이스 비스트21km에서 질주하고 있다. 정재원 씨 제공.
울주 트레일 나인 피크는 울산 울주군 영남알프스 9개봉을 달리는 아주 힘든 레이스다. 누적 상승고도가 9000m가 넘는다. 그는 주말엔 불수사도북(불암산 수락산 사패산 도봉산 북한산) 5산 종주 45km를 훈련 삼아 11시간에 달릴 정도로 철각을 과시했었는데 유독 울주에서만 그의 발걸음을 돌려세웠다. 하지만 조만간 울주 트레일 나인 피크도 정복할 계획이다. 그는 끊임없이 도전한다.

“올해는 3월 서울마라톤 겸 동아마라톤 풀코스에 도전한 뒤 8월엔 유럽 알프스산맥을 달리는 세계 최고의 트레일러닝대회인 UTMB(울트라트레일몽블랑)에 출전합니다. 사실 UTMB는 2020년 출전권을 획득했는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2년간 못 가다 이번에 출전하게 됐습니다.”

정재원 씨가 2019년 오사카마라톤에 출전해 질주하고 있다. 정재원 씨 제공.
동아마라톤의 목표는 ‘330(3시간 30분 이내 완주)’ 달성이다. 3시간37분이 풀코스 최고기록이니 7분 넘게 줄이면 된다. UTMB는 세계 최고 권위의 트레일러닝 대회로 170km(UTMB), 101km(CCC), 119km(TDS), 290km(PTL), 55km(OCC) 등 5개 종목이 열린다. 정 씨는 이번에는 OCC부문에 출전한다. OCC는 이벤트로 당첨됐고 170km 출전을 위해 포인트를 쌓을 계획이다. UTMB는 각국에 포인트를 쌓을 수 있는 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정 씨는 2010년부터는 크라이밍도 병행하고 있다.

“중국에서 사업하는 친구를 보기 위해 상하이에 갔습니다. 제 친구가 클라이밍을 즐기더라고요. 그래서 따라 해봤는데 정말 짜릿하더라고요. 성취감도 큽니다. 그래서 달리기와 함께 병행하고 있습니다.”

태국과 스페인 등 크라이밍 명소에 가서 오르기도 했다. 실내외에서 즐기던 그는 2015년 사고이후엔 주로 실내에서만 클라이밍을 하고 있다. 그는 “트라우마가 생겨 야외에서는 못하겠더라고요. 그래도 클라이밍의 짜릿함은 잊을 수 없어 실내에서 주기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정재원 씨가 태국 크라비에서 클라이밍을 즐기고 있는 모습. 정재원 씨 제공.
회사에 다니다보니 요즘은 매일 운동하지는 못한다. 화요일(와우산 30)과 목요일(찰스런 남산달리기) 퇴근한 뒤 동호회 회원들하고 함께 달린다. 주말에는 긴 거리의 산을 주로 달린다. 대회 출전을 앞두고는 훈련량을 높인다.

“주말엔 집(경기도 고양시 일산) 근처 정발산과 호수공원을 주로 달립니다. 한양도성길도 달리고 불수사도북 5산도 달리고….”

부상당하지 않게 집에선 케틀벨 스윙으로 코어근육을 키워주고 있다. 아직 장애가 남아 있는 왼쪽 발목 보강운동도 빼놓지 않는다. 그는 “다친 경험이 더 몸을 조심하게 한다”고 했다. 클라이밍에 중요한 턱걸이 훈련도 틈틈이 한다.

“언젠가 나이 들면 지금같이 달릴 순 없을 겁니다. 하지만 나이에 맞게 속도나 강도를 낮추면 됩니다. 달리기의 희열, 평생 느끼면서 살고 싶습니다.”

정재원 씨가 2017년 고비사막마라톤에 출전해 태극기를 들고 포즈를 취했다. 정재원 씨 제공.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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