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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IT/의학

소녀들의 사춘기가 더 빨라졌다… 코로나 대유행이 영향 미쳤나

입력 2022-05-27 03:00업데이트 2022-05-27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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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조숙증 급증에 원인 규명 난항
청소년이 생리대를 고르는 모습. 여아의 사춘기는 월경이 시작되고 유방이 발달하면서 출발하는 것으로 본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여아의 사춘기 시작 시기가 10년마다 약 3개월씩 빨라진 것으로 나타났지만 아직 명확한 원인은 규명되지 않고 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이탈리아 로마의 밤비노 게수 어린이병원 연구진은 올 2월 의학 분야 학술논문 공개 사이트 ‘펍메드’에 흥미로운 논문을 공개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1차 대유행 기간인 2020년 3∼9월 사춘기가 조기에 시작되는 바람에 소아 내분비 클리닉을 방문한 여아가 328명으로 급증했다는 연구 결과다. 1년 전 같은 기간 140명보다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난 수치다. 연구진은 미국과 인도에서도 유사한 현상이 보고되고 있다고 밝혔다.

소아 내분비학을 탐구하는 연구자들은 이 결과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동안 사춘기 조기 시작과 성조숙증의 원인으로 비만, 과체중, 화학물질 노출 등이 주로 지목돼 왔다. 이번 연구에서 코로나19로 인한 스트레스나 활동량 부족, 즉 정신적 요인과 생활습관이 새로운 원인으로 떠올랐다.

○ 10년마다 3개월씩 빨라지는 사춘기

덴마크 코펜하겐대의 안데르스 율 교수팀은 1970년대 이후 여아의 사춘기 시작 연령이 10년마다 약 3개월씩 빨라졌다는 사실을 2020년 ‘미국의사협회지 소아과학’에 공개했다. 1977년부터 2013년까지 수십 개국에서 진행된 연구와 문헌 분석에서 얻은 결과다.

여아의 사춘기는 유방 발달과 월경 시작 등 성조숙증과 연계된다. 소아 내분비학에서 유방 발달은 일반적으로 사춘기 시작의 첫 징후로 여겨진다.

통상 사춘기 단계는 1949∼1971년 영국 보육원에서 살았던 약 700명의 소년과 소녀를 관찰한 결과를 토대로 수립한 ‘태너 척도’를 활용해 정의된다.

태너 척도에서 정상적인 사춘기는 여아 8세 이상, 남아는 9세 이상으로 본다. 여기서 말하는 사춘기는 일반적인 개념과는 달리 1차 성징이 모두 드러나는 시점을 말하며, 의학적으로 성조숙증 판단 및 치료를 결정하는 기준으로 사용된다.

이보다 일찍 시작하면 ‘중추성 성조숙증’으로 판별한다. 여아의 경우 사춘기를 일찍 시작할수록 우울증이나 불안 등 심리적 문제를 겪거나 유방암, 자궁암 등 여성 질환에 걸릴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춘기 시작 시기가 의학적으로 중요한 이유다.

○ 비만? 화학물질?…원인은 ‘오리무중’

문제는 사춘기 시작 시기가 빨라지는 이유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비만이나 과체중, 플라스틱 등 화학물질 노출이 주요 원인으로 거론된 정도다. 비만과 사춘기 시작 시기의 연관성은 율 교수 연구팀과 마샤 허먼기든스 미국 듀크대 메디컬센터 교수 연구팀이 1997년 각각 공개한 분석 결과를 통해 수면 위로 올랐다. 율 교수 연구팀은 당시 덴마크 코펜하겐에 사는 여아 1100명의 유방 발달 시기를 분석하고 평균 11세에 발달이 시작했다고 보고했다.

반면 허먼기든스 교수 연구팀은 미국 내 1만7000명 이상의 여아를 대상으로 진행한 분석 결과 1년 빠른 평균 10세라고 보고했다. 이 같은 차이는 미국에서의 당시 아동 비만 증가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내털리 쇼 미 국립환경보건과학연구원 연구원은 “과체중이 아닌 소녀들 중에서도 성징이 일찍 시작되는 사례가 있다는 점에서 비만이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화학물질 노출은 또 다른 유력 원인으로 꼽힌다. 율 교수는 유방 발달 시기가 빠른 소녀들의 소변에서 검출된 프탈레이트 수치가 상대적으로 높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프탈레이트는 비닐 포장재, 바닥재에 활용되는 화학물질로 호르몬 작용에 영향을 미치는 내분비 교란 물질이다. 그러나 율 교수는 지난달 25일 미국립보건원(NIH) 리뷰 논문에서 ‘화학물질과 사춘기 시작 시기의 명확한 연관성을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가설을 입증할 만한 근거가 아직 부족하다는 의미다.

○ “충분한 데이터 축적 필요” 목소리 높아져

코로나19 유행으로 발생한 스트레스와 활동량 부족이 사춘기 시작 시기를 앞당길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이를 뒷받침할 데이터부터 시급히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폴 카플로비츠 미국 워싱턴 국립어린이병원 소아과 명예교수는 “스트레스 증가, 활동량 부족 등이 사춘기 시작 시기와 관련이 있는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여러 요인이 동시에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사춘기 시작 연령 기준을 조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문제가 없는 건강한 아이인데도 태너 척도에서 정한 기준에 따라 불필요한 의료 행위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김민수 동아사이언스 기자 rebor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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