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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IT/의학

유전자 기반 정밀의료로 암-희귀병-만성질환 사전예방

입력 2021-12-18 03:00업데이트 2021-12-18 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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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메디컬센터]서울대병원 임상유전체의학과
유전자 변이 추적해 표적치료… 필요하면 가족 전체 불러 관찰
30분 이상 진료로 치료효과 높여… 암 취약 유전자 발견시 미리 조치
자녀의 발병 가능성 낮출 수 있어… 희귀병 환자는 부모 유전자 검사
서울대병원 임상유전체의학과 의료진이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여러 의사가 다수 환자 및 가족을 동시에 진료하기 때문에 장비도 많고 널찍한 게 특징이다. 서울대병원 제공
60대 남성 A 씨는 7년 전 폐암 수술을 받았다. 이어 방사선 치료와 항암 치료를 받던 중에 간에서 담도암이 발견돼 다시 수술을 받았다. 이후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겼다. 갑자기 폐 상태가 급격하게 나빠진 것이다.

A 씨는 올해 초 서울대병원 정밀의료센터를 찾았다. 유전체 검사 결과 담도암을 유발하는 유전자의 변이가 폐에서 발견됐다. 이런 변이 자체가 드문 탓에 그동안 다른 병원에서 발견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대로 두면 담도에서 발생한 암이 폐로 전이될 확률이 높은 상황이었다. 곧바로 변이 유전자에 맞는 표적치료제를 투입했다. 치료 효과는 꽤 좋았다.

이른바 암 정밀의료가 주목받고 있다. 정밀의료는 개인의 특성이나 유전 정보, 가족력 등을 토대로 병을 진단하고, 환자에게 맞춤형 치료를 제공하는 첨단 의료기술을 말한다. 암, 희귀 질환 분야에서 잇달아 도입하고 있으며, 점차 만성 질환 관리, 질병 예방 등의 분야로 확대되는 추세다. A 씨의 사례 또한 정밀의료에 해당한다. 서울대병원은 이런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임상유전체의학과를 3월 신설했다. 6월 시범 진료에 이어 11월 정식으로 외래 진료를 시작했다. 일부 대학병원이 유전자클리닉이나 센터를 운영하고 있지만 외래 진료를 시작한 것은 서울대병원이 처음이다. ‘6개월 진료’의 성과를 짚어봤다.

○국내 첫 임상유전체의학과 신설

A 씨가 진료를 받았던 정밀의료센터가 임상유전체의학과의 전신이다. 이 센터와 희귀질환센터를 통합해 임상유전체의학과를 출범시켰다. 내분비대사내과, 소아청소년과, 신경과, 진단검사의학과 교수 등 8명이 진료를 맡고 있다.

박경수 임상유전체의학과 과장(내분비대사내과)은 “유전체 의학과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암, 희귀 질환, 만성 질환 등 모든 분야에서 정밀의료를 실현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앞으로 정밀의료를 이끌고 갈 인재 양성도 중요한 사업 중 하나”라며 “이를 위해 전임의 1명을 배치해 트레이닝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반 진료과와 다른 점을 꼽자면 ‘심층 진료’를 들 수 있다. 환자 1명만 대상으로 진료할 수도 있지만, 가족 전체를 진료할 때가 많다. 가령 환자의 증세에서 가족력이 의심되면 가족의 모습을 영상으로 찍어오게 해서 관찰하기도 하고, 아예 가족 전체를 진료실로 부르기도 한다. 또 검사 결과에 대한 추가 관찰이 필요하면 의료진을 추가로 호출한다.

‘대학병원 3분 진료’와도 사뭇 다르다. 진료 시간은 평균 15∼20분이다. 30분 이상 진료를 보는 사례도 적지 않다. 때로는 진료 시간이 1시간을 훌쩍 넘는다. 이런 점 때문에 많은 환자를 진료할 수 없는 것은 풀어야 할 숙제다. 지금은 임상유전체의학과에서 직접 진료 예약을 받지 않는다. 진료협력센터를 통해 예약해야 한다. 상담을 거쳐 ‘대상자’로 판정되면 진료를 받을 수 있다.

○암 유전자 찾아내 미리 예방

임상유전체의학과의 진료 영역 중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A 씨 사례와 같은 암 정밀의료다. 임상유전체의학과 소속 문장섭 교수(신경과)는 “특히 암에 취약한 유전자들이 있다. 그 유전자와 변이들을 발견하고 추적 관찰함으로써 암을 미리 예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부모 중 한 명이 암에 걸렸을 때 그 자식의 암 발병 가능성을 묻는 환자들이 적지 않다. 유전체 검사 결과 유전성 유전자나 돌연변이가 발견되면 미리 조치를 취해 발병 가능성을 낮춘다. 그런 돌연변이가 없다면 암의 발병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다.

40대 초반 여성 B 씨는 암 환자다. B 씨를 포함해 B 씨 자매 셋 모두 암에 걸렸다. 이 때문에 B 씨는 자신의 자식들에게 암이 유전될까 봐 두려웠다. B 씨에게는 10대 초반과 10대 중반의 딸 2명이 있다. 두 딸의 암 발병 가능성을 알고 싶었지만 마땅한 병원을 찾지 못했다. B 씨가 6월 임상유전체의학과를 찾았다. 상담과 혈액 채취, 유전자 검사 등을 통해 두 딸 중 한 명에게 암 유전자가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물론 그 딸에게서 당장 암의 증세가 나타난 것은 아니다. 따라서 지속적으로 추적 관찰하기로 했다. 나중에 설령 암이 생긴다고 해도 초기 발견이 가능해진 것이다. 그 경우 완치율이 대폭 상승한다.

이런 사례는 또 있다. 20대 초반 남성 C 씨도 이곳에서 암 유전자를 발견했다. C 씨의 어머니는 유방암 및 자궁암 환자다. 어머니의 유전자 검사에서 여러 암을 유발하는 유전자가 발견됐는데, C 씨에게서도 이 유전자의 변이가 발견된 것이다. 곧바로 C 씨에 대해 추가 검사에 들어갔다. 위, 소장, 대장 등에서 여러 개 용종이 발견됐지만 다행히 아직 암세포는 보이지 않았다. C 씨는 일단 암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현재는 주기적으로 추적 관찰을 하고 있다.

○희귀 질환 및 산전 유전자 검사


임상유전체의학과의 전신 중 하나가 희귀질환센터였다. 센터장은 현재 임상유전체의학과 소속의 채종희 교수(소아청소년과)였다. 채 교수는 원인을 알 수 없는 희귀 질환 분야에서 이름이 많이 알려져 있다.

8세 된 남자아이 D 군은 2세 때 신장 질환 진단을 받았다. 이후 병이 악화해 5세에는 신장을 이식받아야 했다. 하지만 이후로도 상황은 좋지 않았고, 추가로 망막병증까지 생겼다. D 군의 부모는 앞으로 아이의 상황이 어떻게 될지, D 군의 동생을 가져도 좋은 건지 궁금했다.

결국 부모와 D 군이 함께 임상유전체의학과를 찾았다. 유전체 검사 결과 D 군에게서 신장 질환과 망막병증을 유발한 게 동일한 유전자였음이 밝혀졌다. 병의 원인을 알았으니 그에 맞는 치료만 하면 큰 문제 없이 관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동시에 추가 임신에도 별 지장이 없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D 군의 부모는 둘째 아이 임신 계획을 세웠다. 내년 출산이 목표다.

채 교수는 “희귀 질환이 있는 가족의 엄마들은 둘째 아이를 갖는 것을 무척 두려워하는데, 유전적 문제를 찾아내면 해답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채 교수는 또 “유전자 질환이 모두 유전된다는 것은 잘못 알려진 낭설”이라며 “그렇지도 않고, 설령 유전적 문제가 있더라도 치료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수 있어 대처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D 군 부모의 사례처럼 결혼을 앞둔 젊은 여성이 유전적 질환을 걱정하며 임상유전체의학과를 종종 찾는다. 30대 초반 여성 E 씨 또한 친척 중에 심각한 근육병을 앓는 사람이 있다며 찾아왔고, 의료진은 E 씨 친척의 정보를 받아 정밀 검사하고 있다. 채 교수는 “검사가 끝나면 E 씨가 2세를 출산하는 데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예측할 수 있다”고 말했다.

○ 가족력에 의한 만성 질환도 대처 가능

가족력에 의한 만성 질환을 미리 예측하고 대처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도 임상유전체의학과의 주력 분야 중 하나다.

8세 남자아이 F 군이 엄마와 함께 얼마 전 서울대병원 피부과를 찾았다. F 군은 피부 여러 곳에 고름이 생기는 희귀병을 가지고 있었다. F 군의 부모는 아토피 피부염에 준하는 대증 치료만 해 왔다. 임상유전체의학과 의료진이 F 군과 F 군의 동생 2명, 부모 등 5명에 대해 정밀 검사를 진행했다. 2개월에 걸친 정밀 조사 끝에 가족력이 확인됐다. 전신 염증을 일으키는 유전자가 아빠와 F 군의 동생 1명에게서 발견됐다. 실제로 아빠는 비슷한 증세가 이미 나타난 상태였고, 동생 1명은 막 증세가 시작되고 있었다. 의료진은 이어 최적의 치료제를 찾기 시작했다. 환자의 피부 조직과 혈액에서 면역세포를 분리해 배양한 뒤 따로 실험하는 과정을 여러 차례 거친 후 약을 찾는 데 성공했다. 이 가족에게 곧 치료제를 투입할 계획이다.

G 씨는 전신 관절이 꺾이는 병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유전자 검사를 했지만 병과 관련해 기존에 알려진 유전자는 발견하지 못했다. 의료진은 새로운 유전자나 기존 유전자의 변이를 의심했다. 의료진은 G 씨를 진료하면서 가족 전체의 상태를 확인할 필요를 느꼈다. 의료진은 G 씨의 가족 8명을 모두 진료실로 불렀다. 일단 8명 모두의 혈액을 채취했다. 현재 유전체 분석이 진행 중이다. 채 교수는 “병의 원인을 밝혀내는 게 치료의 첫 번째 단계다”라고 말했다. 병을 유발하는 유전자를 명확하게 밝혀야 치료 단계로 진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원인을 알았으니 환자의 불안감도 크게 줄어든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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