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벨상의 선택은 ‘오감’ ‘기후위기’ ‘이민자 출신’

이정아 동아사이언스 기자 , 서동준 동아사이언스 기자 입력 2021-10-08 03:00수정 2021-10-08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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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노벨상 과학분야 수상자들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데이비드 줄리어스 미국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 교수, 아뎀 파타푸티언 미국 스크립스연구소 교수.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마나베 슈쿠로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 노벨 물리학상 메달,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클라우스 하셀만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연구원,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베냐민 리스트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교수와 데이비드 맥밀런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왼쪽 사진부터). BBVA재단·UCLA·노벨위원회 ·배한용 교수·프린스턴대 제공
6일 화학상을 끝으로 올해 노벨상 과학 분야 3개 부문 수상자가 모두 발표됐다. 단기간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개발의 혁신을 이룬 mRNA(메신저리보핵산) 기술의 개척자들이 수상할지가 최대 관심사였다. 비록 코로나19 사태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한 이들의 수상은 불발에 그쳤지만 올해 노벨상도 풍성한 뒷이야기가 쏟아졌다.

○박해 피한 이민자 출신 과학자들 수상 영예


올해 생리의학상은 인간이 세상과 소통하는 통로인 촉각과 통증의 비밀을 밝혀낸 데이비드 줄리어스 미국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UC샌프란시스코) 생리학과 교수와 아뎀 파타푸티언 미국 스크립스연구소 신경과학과 교수에게 돌아갔다.

두 사람은 사람 몸의 촉각 수용체 분자를 규명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핵심 업적은 캡사이신 분자가 특정 수용체(TRPV1)에 붙으면 전기신호가 신경계를 타고 뇌까지 전해지면서 42도 이상의 뜨거움과 아픔을 느끼게 한다는 것이다. 고추의 매운맛이 ‘뜨거운 아픔’이라는 사실이 처음 밝혀진 셈이다. 호기심과 창의성을 바탕으로 일상의 궁금증에서 놀라운 과학적 발견을 이뤘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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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더 주목받는 건 전쟁과 핍박을 피해 기회의 땅을 찾은 이민자 출신이란 점이다. 파타푸티언 교수는 1967년 레바논 베이루트에 살던 아르메니아 가정에서 태어났다. 내전으로 혼란하던 레바논에서 의대 재학 중 무장세력에 잡혔다가 벗어난 뒤 1986년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했다. 줄리어스 교수는 미국 뉴욕의 러시아계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조부모는 1900년대 초 제정 러시아의 유대인 박해를 피해 러시아를 떠나 미국에 정착했다.

두 사람의 연구로 인간 오감에 대한 인식은 한층 더 완성에 가까워졌다. 황선욱 고려대 의대 생리학교실 교수는 “빛의 수용체(로돕신)를 발견해 시각 원리를 밝힌 성과가 1967년 노벨상을 가장 먼저 받았고, 2004년에는 냄새를 감지하는 후각 수용체를 발견한 성과가, 이번엔 촉각 연구가 노벨상을 수상했다”며 “이제 오감 중 청각과 미각만 남았다”고 설명했다.

○지구과학도 노벨 물리학상 진입


올해 노벨 물리학상은 물리, 화학이라는 기초과학을 추구하는 노벨상의 단단한 벽을 깨뜨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조르조 파리시 이탈리아 사피엔차대 교수와 함께 올해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마나베 슈쿠로 미국 프린스턴대 대기및해양과학프로그램 교수와 클라우스 하셀만 전 독일 막스플랑크 기상연구소장은 물리학 이론을 기반으로 기후변화 해석의 실마리를 제공한 지구과학 분야의 선구자들이다.

두 사람은 지구온난화 개념이 없었던 1960∼1970년 당시 기후변화 추이와 원인, 특히 인간 활동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냈다. 마나베 교수와 동료들은 1969년 구름이 발생할 때 에너지 변화, 지표에서 성층권까지 기온 변화 등 물리적 특성을 활용해 기후를 예측하는 수리모델을 최초로 개발했다.

이 기후모델을 기반으로 다양한 후속 모델이 개발되면서 전 지구적 기후변화 대응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노벨 물리학상 역사에서 지구과학 분야가 수상한 사례는 없다. 과학계는 노벨상위원회가 그만큼 기후변화 문제를 중요하게 보고 해법을 찾는 연구를 높이 평가하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손석우 서울대 지구환경시스템학부 교수는 “전 세계 대기과학과 해양학, 지구과학 연구자들에게 동기부여가 많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화학상 수상자들은 ‘지한파’

올해 노벨 화학상을 받은 베냐민 리스트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교수와 데이비드 맥밀런 프린스턴대 화학과 교수는 분자를 합성할 때 쓰는 유기촉매를 개발해 다양한 의약품 개발이 가능하도록 이끈 공로를 인정받았다. 이들의 연구로 제약사들과 연구자들은 더 안전하고 친환경적인 의약품 설계가 가능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최근 10여 년 사이에 정통 화학 분야에서 노벨상이 나오지 않았다는 점에서 두 사람의 수상은 의미가 있다”고 했다.

두 수상자의 또 다른 공통점은 한국과 인연이 깊다는 점이다. 맥밀런 교수는 과거 프린스턴대에서 동료 교수로 지낸 이철범 서울대 화학부 교수의 초청으로 2016∼2017년 서울대 석좌교수를 맡아 대학원생을 가르쳤다. 두 사람은 2018년에는 광촉매에 대해 연구한 성과를 국제학술지 ‘앙게반테 케미’에 발표했다. 리스트 교수도 2008년 성균관대 자연과학부 초청으로 방문교수를 했다. 당시 학부생이던 배한용 성균관대 화학과 교수는 특강을 듣고 감명받아 ‘훗날 반드시 함께 일하고 싶다’는 편지를 보냈고 실제 이후 리스트 교수 연구실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일했다. 두 사람은 2월 향수 원료인 베티베르 오일에서 향이 나는 원리를 유기합성으로 밝힌 공동 연구 결과를 앙게반테 케미에 발표하는 등 공동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한편 mRNA 기술을 개발한 커리코 커털린 독일 바이오엔테크 수석부사장과 드루 와이스먼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의대 교수는 화학상 또는 생리의학상 수상 가능성이 높게 점쳐졌지만 아쉽게 수상에 실패했다. 전문가들은 이들이 충분한 자격이 있지만 아직은 이르다고 보고 있다. 코로나19 대유행이 끝나지 않은 데다 변이 바이러스의 등장으로 백신 효과가 다소 떨어지면서 좀 더 면밀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노벨상 수상 업적들은 대부분 20년 이상 인정받은 경우가 많아 mRNA 백신 연구 역시 효과와 안전성에 대한 입증 기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정아 동아사이언스 기자 zzunga@donga.com
서동준 동아사이언스 기자 bi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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