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임상까지 책임 질 신약개발 정부지원 시스템 절실”

김상훈 기자 입력 2021-06-05 03:00수정 2021-06-05 03:00
공유하기뉴스듣기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메디사이언스 리포트]〈2〉혁신 신약 강국 되려면
암 치료제를 개발하려면 사람의 몸 외부에서 암세포를 배양한다. 고려대의료원 암치료제개발연구팀이 배양한 세포를 현미경으로 관찰하고 있다. 고려대의료원 제공
박경화 고려대안암병원 종양내과 교수는 요즘 국내 바이오 기업 애스톤사이언스와 공동으로 종양 백신 임상 1상을 진행 중이다.

이 약은 백신 원리를 이용한 암 치료제다. 박 교수가 2004년 연구를 시작했다. 암세포에서 많이 발견되는 단백질의 일부를 먼저 투입한다. 그러면 이 단백질이 외부에서 침투하는 바이러스처럼 ‘항원’ 역할을 한다. 이 암세포에 강력한 면역 반응을 일으키도록 하는 T세포만 선택적으로 늘리고 활성화시킨다.

이 방식은 획기적이란 평가를 받는다. 모든 암에 적용이 가능하다. 항암제보다 독성이 적고 약제비도 덜 든다. 가장 먼저 암 수술 후 재발을 막거나 표준 치료가 불가능한 말기 암 환자에게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이 종양 백신이 상용화하려면 임상 2상과 임상 3상을 거쳐야 한다. 박 교수는 이 기간을 7년 정도로 예상했다.

○ 경쟁력 있는 신약 개발 시스템 필요

배양한 암세포에 반응하는 약물을 찾는 실험. 고려대의료원 제공
1999년 7월 국산 신약 1호가 시판 허가를 받았다. SK케미칼이 만든 위암 항암제 선플라주다. 그로부터 20여 년. 올 3월까지 33개의 국산 신약이 탄생했다.

주요기사
국산 신약들의 성적표는 어떨까. 연평균 500억 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신약도 있다. 하지만 어떤 신약은 생산이 중단됐거나 아예 시장에서 퇴출됐다. 이처럼 유명무실한 신약은 20∼30%나 된다. 결과적으로 보면 우수한 성적표는 아니다.

신약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는 최근 더욱 늘어나는 추세다. 하지만 만족스러운 결과는 아니다. 왜 그럴까.

전문가들은 국내 제약회사들의 열악한 자본력을 지적한다. 신약 후보 물질을 개발하더라도 막대한 임상시험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비판도 있다. 지금까지 나온 국산 신약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만큼 독창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로 33개 신약 중에 미국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은 약은 겨우 2개에 불과하다. 결국 독보적 기술을 보유했는지가 성공의 열쇠다.

이런 점 때문에 ‘한국적 모델’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이도 많다. 대학과 바이오 기업이 적극 협력해 독창적인 신약 후보 물질을 개발하면 성공 가능성이 높은 신약을 정부가 지원하는 방식이다.

박 교수는 “이런 시스템이 정착되면 임상 1단계에서 좌절하지 않고 최종 임상 3상까지 가는 신약이 많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연구를 많이 하는 교수에게는 환자 진료의 부담을 줄여주는 식으로 신약 개발에 매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학 병원 기업 협력모델 잇달아

최근 여러 대학과 병원에서 이런 방식의 협업이 자주 이뤄지고 있다. 고려대의료원만 하더라도 구체적인 실적을 낸 사례가 많다.

서재홍 고려대구로병원 종양내과 교수는 암 표적치료제 개발회사를 설립해 신약을 개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유방암 중에서 치료제가 없는 ‘삼중음성유방암’ 신약을 인공지능(AI) 기반으로 개발하고 있다. 여기에는 서 교수의 암 치료제 개발회사 외에도 여러 기업이 참여하고 있다. 또 AI와 빅데이터 분야 전문가인 강재우 고려대 컴퓨터학과 교수도 참여하고 있다.

성재영 고려대안암병원 의생명연구센터 교수는 2015년 뉴라이클사이언스라는 신약 개발 회사를 창업했다. 이 회사에서 알츠하이머와 치매 등 퇴행성 신경질환을 고칠 수 있는 항체 치료제를 개발했다. 현재 동물실험을 통해 유효성과 안정성 검증을 마쳤다. 연내 글로벌 임상 1상 진입을 준비하고 있다.

사실 알츠하이머 치료제는 글로벌 제약사들도 여러 차례 개발에 실패한 약이다. 뉴라이클사이언스가 개발한 약은 손상된 뇌신경에 생긴 일종의 ‘흉터’를 제거하고 신경을 되살리는 방식의 치료제다. 임상시험에 성공할 경우 국내 1호 치매 치료제가 될 뿐 아니라 글로벌 시장도 노릴 수 있다.

대학과 병원이 독자적인 기술을 개발하고 바이오 벤처 기업에 기술을 이전하거나 공동 연구를 진행하는 사례는 더 있다. 이경미 고려대 의대 생화학분자생물학교실 교수는 자연살해(NK)세포를 배양하고 치료에 활용하는 기술을 10년 연구 끝에 2016년 개발했다. 이 기술은 NK세포 치료제 전문 개발 회사인 엔케이맥스에 이전됐다. 이후 이 교수는 현재까지도 엔케이맥스와 협업을 이어가고 있다. 면역세포 치료제인 슈퍼 NK세포 기술을 활용해 국내는 물론이고 미국, 멕시코 등에서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새로운 의료 기술 적극 도입해야


의료 기술은 꾸준히 발전한다. 때로는 완전히 새로운 개념의 기술이 등장한다. 이 경우 독성 검사와 동물실험부터 시작해야 한다. 실제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에 돌입하기까지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

기존의 의료 기술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 그게 신(新)의료기술이다. 이 경우 이미 과학성과 안정성이 어느 정도 입증된 상태이기에 평가 절차를 밟으면 의료 현장에 곧바로 투입할 수 있다. 환자가 혜택을 받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대폭 단축된다. 특히 의료기기 분야에서 이런 사례가 많다.

최종일 고려대안암병원 순환기내과 교수는 국내 웨어러블 의료기기 1호로 등록된 ‘메모와치’에 대한 100여 명의 임상시험을 최근 마쳤다. 지금까지는 부정맥을 확인하려면 가슴에 5개 정도의 전극을 24시간 동안 부착해야 했다. 하지만 메모와치라는 손목시계 형태의 심전도 측정기만 차면 2주 동안 데이터가 자동적으로 의료기기 업체 서버로 전송된다.

새로운 의료기술은 얼마나 효과가 있었을까. 기존 방식으로는 27명만 부정맥을 찾아냈다. 반면 메모와치 방식으로는 51명의 부정맥을 발견했다. 게다가 기존 방식으로 부정맥을 찾아내지 못한 29명이 메모와치를 차고 부정맥을 찾아냈다.

특히 한 20대 남성의 경우 정신을 잃을 것 같고 죽을 것 같다는 공포를 느껴 병원을 전전했지만 부정맥을 진단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 환자는 심각한 부정맥 진단을 받았고, 곧바로 시술을 받아 완치됐다.

최 교수는 추가로 부정맥을 진단할 수 있는 새로운 의료기기를 소개했다. 가로세로 5cm 크기의 패치를 가슴에 붙이면 자동적으로 심장 박동을 체크하는 기기다. 시계보다 더 간편해진 것이다. 곧 임상시험에 돌입한다.

지난해 7월 김현구 고려대구로병원 흉부외과 교수는 최연호 고려대 바이오의공학부 교수와 함께 나노 기술과 AI 기술을 활용해 혈액만으로 폐암을 진단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혈액 속을 떠다니는 ‘엑소좀’을 분석해 암세포를 구분하는 방법이다. 물론 그전에도 혈액으로 암을 진단하는 기술은 있었다. 하지만 정확도가 50% 정도에 불과했다. 김 교수가 개발한 이 방법으로는 84%까지 진단이 가능하다. 진단 시간도 30분이면 충분하다.

김 교수는 5월에는 폐암을 정밀하게 탐색할 수 있는 조영제도 개발했다. 이 조영제를 사용하면 암이 폐 조직 내 깊이 있더라도 정확한 식별이 가능하다. 덕분에 폐암 부위만 정밀하게 절제할 수 있어 정상 조직을 최대한 보존할 수 있다. 암 수술 환자의 후유증을 최소화할 수 있다.

최종일 교수는 “새로운 의료 기술은 무엇보다 환자의 치료와 삶의 질 개선에 크게 기여한다”며 “게다가 이런 기술 개발이 활발해 새로운 기술이 쌓이면 원천기술 개발로도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동아일보-고려대의료원 공동 기획
#최종임상#신약개발#정부지원 시스템
0 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댓글쓰기 Copyright ⓒ 동아일보 & 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기사 의견 0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