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재화를 흡수하는 가상 자산, NFT가 개척한 새로운 시장은?

동아닷컴 입력 2021-05-04 16:35수정 2021-05-04 16:41
공유하기뉴스듣기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작년 11월, 가수 지드래곤과 나이키가 협업해 ‘에어포스원 파라노이즈(AF1 Para-Noise)’라는 한정판 운동화를 내놓았다. 이 제품은 일반 한정판(블랙/화이트)과 한정판의 한정판(블랙/레드, 818족), 그리고 지드래곤이 직접 지인에게만 주는 한정판(블랙/옐로우, 88족)으로 출시됐으며, 판매가 21만 9천 원이 무색하게 일반 한정판은 50~60만 원대, 블랙/레드 한정판은 300만 원대 초반으로 중고가가 형성될 만큼 인기를 끌었다. 이 제품이 인기를 끌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유명 연예인인 지드래곤이 디자인했다는 점, 그리고 세상에 다시는 등장하지 않을 한정된 제품이기 때문이다. 판매 시점에만 구할 수 있다는 조건이 이 운동화를 특별하게 만든다.

RTFKT 스튜디오가 121개 한정판으로 내놓은 'FEWO SHOE', 1만 달러에 판매했지만 현재 거래 가격은 12,000~35,000달러 선이다. 출처=RTFKT

하지만 한정된 자원일수록 가치가 높아지는 시장 경제의 원칙이 NFT(Non-Fungible Token, 대체 불가능 토큰)를 만나 디지털화하면서 한정판이라는 속성이 극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가상의 운동화 브랜드 RTFKT 스튜디오가 암호화 아티스트 Fewocious와 협업해 내놓은 608켤레의 NFT 운동화는 판매 시작 7분 만에 310만 달러 규모로 완판됐고, 명품 시계 제조사 제이콥앤코(Jacob&Co.)는 초고가 시계인 ‘IRL 에픽 SF24 투르비옹’이 등장하는 10초 분량의 애니메이션 NFT는 10만 달러(한화 1억 1천만 원)에 낙찰됐다. 복제가 불가능하며, 대체할 수 없다는 단서가 달리면서 실체가 없는 자산의 가치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것이다.

2021년은 NFT 원년, 하지만 NFT는 MSG가 아니다


NFT가 떠오르는 이유는 대체 불가능함 때문이다. 처음 NFT가 주목받기 시작한 분야는 그림, 미술 분야지만 스포츠나 연예, 패션 분야 등 빠르게 그 용도가 확산하고 있다. 유행에 민감한 패션 업계도 다른 업계보다 빠르게 NFT가 접목되고 있다. 2019년 5월, 네덜란드의 신생기업 The Fabricant는 세계 최초의 블록 체인 드레스 "Iridescence”를 공개했다. 이 NFT는 인스타그램 필터 제작자인 Johanna Jaskowska가 만든 독특한 디지털 의상으로, 완전히 소유자에게 속하고 복사나 대체할 수 없다. 또한, NFT 소유자는 구매 후 20일 안에 본인이 원하는 어떤 플랫폼의 이미지에도 이 의상을 맞춤 제작한 이미지로 받을 수 있다. 해당 의상은 경매 끝에 $9,500에 판매되었으며, NFT로 드레스를 거래한 최초의 사례가 됐다.

세계 최초의 NFT 드레스 \'Iridescence\', 비누방울의 광택을 뜻한다. 출처=The Fabricant

오랫동안 브랜드를 앞세워 재화의 가치를 높여왔던 명품업계 역시 비로소 NFT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지난달 5일 패션 전문 매체인 보그 비즈니스는 구찌(Gucci) 같은 명품 브랜드가 NFT를 도입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보도했다. 이미 구찌는 가상 스니커즈 앱인 Wanna와 제휴해 최초의 증강현실 스니커즈를 출시한 사례가 있다. 사용자는 9~13달러를 지불하고, 25개의 증강현실 운동화를 신어볼 수 있으며, 가상 버전을 디지털로 입어본 다음 구매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다만 유일무이함을 조건으로 다는 NFT와는 다르게 무제한으로 생성된다는 차이가 있지만, 명품만의 특수성과 블록체인 기술을 통한 유일함을 적용한다면 그대로 NFT가 될 수 있는 상황이다.

주요기사
구찌가 소개한 'gucci virtual 25'앱, AR 기능을 활용한 가상 운동화지만 NFT와 근접한 면이 많다. 출처=구찌

물론, 패션업계가 NFT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윤곽이 잡히지 않는다. 앞서 RTFKT 스튜디오처럼 새로운 사례가 등장하고는 있으나, 희소성과 디자인, 유행을 재화의 가치를 매겨왔던 명품업계가 NFT를 어떻게 녹여낼지는 미지수다. 오늘날 명품 업계는 좋은 재료와 좋은 디자인, 그리고 희소성과 브랜드 가치를 앞세워왔다. 남들이 접하기 어려운 물건이기에 명품이 명품일 수 있었다. 하지만 NFT는 실체가 없을 뿐, 대상 하나하나가 고유 객체라서 희소성만큼은 명품보다 우위에 있다. 이는 명품의 존재감을 위협하는 요인이 될 수 있고, ‘NFT계의 명품’이라는 의미가 통용되지 않을 가능성도 크다. 구찌나 버버리 등 NFT에 관심을 가지는 명품 업계가 명품 공식이 통하지 않는 가상 세계에서 어떻게 그들만의 가치를 풀어나갈지에 관심이 몰리는 이유다.

스포츠 시장과 미술 업계, NFT로 새 시장 열어

명품, 패션 분야와 달리 스포츠 업계와 예술·미술 업계는 NFT의 속성을 통해 기존의 가치를 한 차원 더 끌어올리고 있다. 패션업계의 명품은 명품 브랜드의 가치와 완성도, 재료가 물품의 가격에 영향을 미치고, 유일성이 가격의 척도가 되진 않는다. 반면 스포츠나 예술품은 그 시간대에 기록된 유일한 것 혹은 사건으로, 복제나 대체가 불가능한 NFT의 특성과 일치한다. NFT의 속성을 스포츠로 승화한 가장 좋은 예시는 대퍼랩스(Dapper Labs)의 ‘NBA 탑샷’이다. NBA 탑샷은 대퍼랩스가 자체 개발한 블록체인 메인넷 ‘플로우(Flow)’ 기반의 NFT로, 실제 NBA 경기 중 포착된 다양한 순간을 카드 형태로 만들어 판매한다. 카드 가격은 내용과 분할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이미 10만 명의 구매 사용자와 35만 명의 활성 사용자가 참여하고 있다.

NBA 탑샷에서 거래되고 있는 희귀 카드, 지난 1월 4만 7,500달러에 거래된 카드가 4달 만에 24만 달러에 판매되고 있다. 출처=NBA 탑샷

지난 1월에는 LA 레이커스 르브론 제임스의 카드가 4만 7,500달러에 거래되며 NFT 카드로는 최고가를 찍은 이후, 연이어 10~20만 달러 거래를 갱신하며 최고가 행진을 이어나가고 있다. 스포츠 업계와 NFT 업계 모두 NBA 탑샷이 분명한 거래 가치가 있음을 인정한 사례다. 덕분에 대퍼랩스는 코튜 매니지먼트와 벤록, 더서닌 그룹 등을 통해 3억 5천만 달러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고,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을 비롯해 케빈 듀런트, 클레이 톰슨 등을 비롯한 30여 명의 스포츠 스타들도 투자에 나섰다.

테사는 NFT를 통해 미술품을 조각투자할 수 있는 새로운 방향을 선보이고 있다. 사진은 오는 5월 7일 2차 판매 예정인 루치노 폰타나의 Concetto Spaziale, 1952. 출처=테사

미술투자 플랫폼 테사(TESSA)도 NFT로 예술품 거래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림, 예술품은 일찍부터 유일무이함이 가격을 결정짓는 주요 척도로 사용되어 왔고, 이는 NFT의 개념과 유사하다. 하지만 실물이 존재하기 때문에 분할 거래가 불가능한 데다가, 가격대가 상상을 초월하는 경우가 많아 일반인이 투자하기엔 어려운 분야였다. 그래서 테사는 기업이 미술품을 구매한 다음, 이를 NFT 형태로 분할 판매해 소유권을 나눈다. 구매자는 미술품의 NFT를 조각투자할 수 있으므로 소액으로도 미술품을 구매할 수 있고, 또 블록체인으로 소유권이 증명되므로 보증서와 같은 신뢰성을 확보할 수 있다.

테사에서 NFT 형태로 거래된 미술품들. 출처=테사

테사는 데이비드 호크니, 키스 해링, 제프 쿤스, 뱅크시 등 해외 유명 작가들의 작품들을 거래한 기록이 있으며, 오는 5월 7일 12시에는 루치노 폰타나의 ‘Concetto Spaziale, 1952 (executed in 1956)’의 2차 분할소유권을 판매할 예정이다. 테사의 NFT 분할 판매는 앞서 IRL 에픽 SF24 투르비옹이 등장하는 10초 영상이나, NFT 드레스인 Iridescence와 다르게 실물 기반인 데다가, 전통적으로 증명된 투자 수단이라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또한 분할 거래를 통해 기존에 진입하지 못했던 소액 투자자들의 진입을 돕는다는 점도 긍정적인 측면이다.

NFT는 전 세계적 소비 실험, 가능성은 충분해

2018년 가상화폐와 함께 시작한 블록체인 기술이 NFT를 통해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 미술품이나 스포츠 카드 거래를 넘어 밈이나 저작권, 가상 부동산 등 대체 불가능한 모든 대상을 상대로 그 영역을 넓히고 있다. 전문가들은 실물 자산이 아닌 가치에 고액을 투자하는 현상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있지만, 가상화폐에 투자하는 것과 비슷하게 NFT 역시 하나의 소비 수단으로 자리 잡고 있다. 패션 분야처럼 모든 시장이 다 NFT가 어울리는 건 아니지만, 모든 시장에 NFT가 적용되는 게 시대적 흐름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동아닷컴 IT전문 남시현 기자 shnam@donga.com
오늘의 핫이슈
0 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댓글쓰기 Copyright ⓒ 동아일보 & 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기사 의견 0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