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코’ 붉은 불개미… 냄새로 감염병 없는 땅 찾아간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9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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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 걸린 개미 생기자 ‘거리 두기’… 감염 최소화해 생존가능성 높여

불개미는 냄새를 통해 병원체가 적은 둥지를 택한다. 플로스 병원체 제공
불개미는 냄새를 통해 병원체가 적은 둥지를 택한다. 플로스 병원체 제공
유례없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인류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전 세계 누적 확진자는 3000만 명을 넘어섰고 사망자는 100만 명에 가까워지고 있다. 하지만 인간만 이런 끔찍한 감염병을 겪는 것은 아니다. 인간처럼 무리를 지어 사회를 이루는 동물들도 감염병에 시달린다. 당장 주변에서 쉽게 보는 개미만 해도 수백만 마리의 개체가 군집을 이뤄 감염병이 쉽게 퍼질 수 있는 조건을 가졌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감염병에 허둥대는 인간과 다르게 효과적인 방역체계를 갖췄다.

청다이펑(程代鳳) 중국 화난농업대 곤충학과 교수 연구팀은 이달 10일 개미가 냄새를 통해 감염병에 대처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플로스 병원체’지에 소개했다.

개미 사회에 감염병 사태를 일으킬 병원체는 토양에 널려 있다. 예를 들어 동충하초 균류는 개미 몸으로 들어가 숙주를 조종한다. 균류가 침입한 개미는 비틀거리며 식물의 나뭇잎 뒷면으로 이동한다. 나뭇잎에 붙어 개미의 양분을 모조리 빨아먹고 나면 병원체 포자를 땅바닥으로 방출한다. 이렇게 땅에 떨어진 병원체는 또 다른 개미를 감염시킨다. 이런 식으로 개미 사회를 무너뜨릴 만큼 위협적인 병원체들은 자연에 널려 있다.

연구팀은 붉은 불개미들을 대상으로 개미들이 병원체에 어떻게 대처하는지 알아봤다. 우선 불개미들이 많이 모여 사는 땅과 그렇지 않은 땅을 비교했더니 개미들이 번성한 땅에는 방선균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방선균은 흙 속에 사는 미생물의 일종으로 병원체의 생장을 억제한다.

방선균은 ‘지오스민’과 ‘엠아이비(MIB)’라는 화합물을 생성한다. 우리가 비 오는 날 흔히 느끼는 냄새가 이 화합물에서 나온다. 연구팀은 개미들이 이 냄새를 맡아 방선균이 많이 함유된 땅을 찾아 이동하고 둥지를 튼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개미는 다른 곤충들과 비교해 후각이 좋다. 나방은 52개, 초파리는 61개의 냄새 수용체를 가진 반면 개미는 400개를 가졌다. 사람과 비슷한 수준이다.

개미는 감염병에 대처하기 위해 ‘사회적 거리 두기’도 실천한다. 로랑 켈러 스위스 로잔대 생태진화학과 교수팀은 2018년 정원개미 2266마리에게 움직임을 추적하는 장치를 붙이고 병원체를 퍼뜨린 뒤 0.5초 간격으로 관찰한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연구팀이 개미 무리에 병원체 포자 11종을 퍼뜨리자 개미들의 접촉 횟수가 큰 폭으로 떨어졌다. 특히 둥지 밖에서 먹이를 구해 오는 병원체를 가지고 올 가능성이 높은 일개미들은 둥지에 들어가지 않고 둥지 바깥에 머물며 둥지 내 개미들과의 접촉을 최대한 줄였다. 둥지 안에 있던 개미들도 둥지의 더 깊은 곳으로 이동했다.

연구팀이 4일 후 관찰한 결과 초기 병원체에 감염된 개미들은 모두 죽었다. 하지만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한 나머지 개미들은 모두 살아남았다. 동물 사회가 질병의 확산을 줄이기 위해 조직운영 방식을 능동적이고 민첩하게 바꾼다는 사실을 확인한 최초의 과학적 연구였다.

개미 사회에서는 병원체에 감염돼 아픈 동료를 빠르게 치료하려는 노력도 보인다. 1월 실비아 크레머 오스트리아 과학기술연구소 교수팀은 아르헨티나 개미들이 스스로 제거하기 힘든 몸통 뒤에 달린 곰팡이를 서로 제거해준다는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생태학 레터스에 소개했다. 이 과정에서 개미들이 해당 곰팡이에 대한 항체를 가지게 된 것도 확인됐다.

고재원 동아사이언스 기자 jawon1212@donga.com
#개코#붉은불개미#거리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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