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진한]자궁경부암, 당신의 딸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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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한 정책사회부차장·의사
이진한 정책사회부차장·의사
 최근 국내 암 사망률이 처음 감소했다는 반가운 뉴스가 나왔다. 예전에 비해 삶의 질이 좋아지고 건강검진을 통해 조기진단을 많이 하기 때문에 나온 결과로 분석된다. 그런데 이번에 발표된 암 중에는 충분히 예방이 가능한데도 유독 사망률이 증가한 암이 있다. 바로 자궁경부암이다. 선진국에 비해 병원에서 암 검진을 받는 비율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문제는 자궁경부암의 경우 다른 암에 비해 효과 좋은 항암제가 적어 말기에 진단을 받으면 5년 생존율이 초기 90%에서 10%로 뚝 떨어진다는 점이다.

 이러한 암의 발생과 사망률을 줄일 방법은 없을까? 다행히도 자궁경부암은 암 중에서 유일하게 원인이 밝혀져 있다. 바로 인유두종바이러스(HPV) 감염으로 생긴다. 그러다 보니 HPV만 예방하면 암에 걸릴 가능성은 거의 없다.

 국내엔 HPV를 예방할 수 있는 백신이 3종류나 출시돼 있다. 가격은 회당 15만∼20만 원. 총 3번을 맞아야 하므로 만만치 않게 돈이 든다. 하지만 이러한 백신 접종을 통해 자궁경부암의 발생이 향후 급격하게 줄어들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11일 지병으로 돌아가신 간박사 김정룡 서울대 명예교수가 1983년 B형 간염 바이러스 백신을 개발한 뒤 국민 10명 중 1명이 걸렸을 만큼 창궐했던 B형 간염 환자를 절반 가까이 줄였다. 그만큼 백신의 위력은 대단하다.

 현재 자궁경부암 백신의 경우 만 12, 13세(2003년 1월생∼2004년 12월생)인 여아는 국내에선 무료다. 이 나이대엔 2번만 맞아도 오랫동안 면역이 지속된다. 국가가 지원하는 백신 중에선 가장 비싸다. 비용이 30만∼36만 원(2회)이나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23일 현재 만 12, 13세 여아 46만4932명 중 접종받은 수는 12만5529명으로 전체의 26.9%에 불과하다. 호주의 경우 그 나이대의 백신 접종률이 86%(2013년 기준), 영국은 91%나 된다. 올해가 지나면 이들은 개인 돈을 내야 맞을 수 있다.

 국내의 낮은 접종률은 무엇보다 2013년 6월 일본의 자궁경부암 백신 부작용 발생의 여파가 컸다. 자궁경부암 백신을 맞은 뒤 몸 여러 부위에 통증이 생기는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이라는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한 것이다. 하지만 올해 초 유럽의약품청(EMA)이 CRPS와 백신은 연관성이 없다고 밝혔다. 일본산부인과학회에서도 백신 접종의 안전성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더구나 자궁경부암 백신은 출시된 지 10년이 돼 세계적으로 안전성이 이미 입증됐다. 지난해 세계보건기구(WHO)는 백신 접종을 적극 권장했다.

 정부의 홍보 부족도 문제다. 백신 무료 접종이 있다는 사실을 아직도 모르는 부모가 많기 때문이다. 자궁경부암 관련 학회도 적극 나섰으면 한다.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가 앞장서서 올해 정부의 추경예산을 받아내 6∼12개월 미만 아이들에게 독감 무료 접종을 맞히게 한 것과는 사뭇 대조적으로 학회의 관련 활동이 없어 보인다. 보건복지부는 교육부 등 관련 부처와 좀 더 적극적으로 협력해 만 12, 13세 여아의 자궁경부암 백신 접종률을 높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가장 최근에 출시된 자궁경부암 백신 ‘가다실9’도 앞으로 무료 접종 백신에 넣도록 해야 한다. 현재는 서바릭스와 가다실4 등 두 가지가 무료 접종 백신이다. 미국에선 가다실9이 출시된 뒤 기존 두 백신이 시장성 때문에 철수됐을 정도로 인기가 좋다. 서바릭스와 가다실4 백신도 자궁경부암 예방에 효과가 좋아 전세계 130여 개국에서 사용하고 있다.

 올해도 이제 두 달밖에 남지 않았다. 만 12, 13세 여아들이 이번 무료 백신 접종을 통해 자궁경부암으로 더 이상 고생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내년에 만 12세가 되는 우리 딸도 직접 병원에 데려가서 맞힐 생각이다.

이진한 정책사회부차장·의사 liked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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