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욱 교수의 과학 에세이]초미세를 측정하면 과학혁명이 보인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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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력파는 두 개의 블랙홀이 충돌해 합쳐지는 과정에서 검출됐다. 이 중력파를 측정하려면 100경분의 1m의 변화를 감지하는 측정장치가 필요하다. 100경은 1에 이어 0을 18개 쓴 숫자다. 사진은 블랙홀이 충돌해 합쳐지기 직전의 모습을 컴퓨터로 시뮬레이션한 모습. 사진 출처 LIGO Caltech
중력파는 두 개의 블랙홀이 충돌해 합쳐지는 과정에서 검출됐다. 이 중력파를 측정하려면 100경분의 1m의 변화를 감지하는 측정장치가 필요하다. 100경은 1에 이어 0을 18개 쓴 숫자다. 사진은 블랙홀이 충돌해 합쳐지기 직전의 모습을 컴퓨터로 시뮬레이션한 모습. 사진 출처 LIGO Caltech
김상욱 부산대 물리교육과 교수
김상욱 부산대 물리교육과 교수
1969년 조지프 웨버는 미국 신시내티에서 열린 학회에서 중력파를 검출했다고 발표했다. 아인슈타인이 중력파의 존재를 예언한 지 53년 만에 실험적으로 그 존재가 밝혀진 것이다. 웨버는 일약 스타가 되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몇 년도 채 지나지 않아 그의 실험은 잘못된 것으로 판명된다. 웨버가 옳다면 1.5m 길이의 알루미늄 바가 0.0000000000000001m만큼 변형되는 것을 측정한 것이다. 알루미늄 바의 길이가 서울∼뉴욕 사이의 거리라면 머리카락 굵기의 1만분의 1만큼 변한 것을 쟀다는 뜻이다. 웨버는 그의 주장과 달리 이런 정밀도에 도달하지 못했다. 최근 중력파 측정에 성공한 라이고(LIGO·레이저 간섭계 중력파 관측소)의 경우 길이 측정 정밀도가 웨버보다 백만 배 높다.

대체 이렇게 작은 길이는 어떻게 재는 걸까. 소금은 나트륨과 염소 원자가 일대일의 비율로 결합하여 만들어진다. 나트륨과 염소 사이의 거리는 0.5나노미터다. 0.0000000005m란 얘기다. 머리카락 두께의 10만분의 1 정도다. 무척 작은 길이 같지만, 웨버가 측정해야 했던 길이보다 100만 배나 크다. 언뜻 생각하면 길이를 재는 것은 쉬운 일처럼 느껴진다. 아주 작은 자를 준비해서 소금에 가까이 가져간 다음 엄청나게 좋은 현미경으로 보면서 눈금을 읽으면 되는 거 아닐까? 여기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이렇게 작은 자를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다. 당신이 사용하는 자도 원자로 되어 있다. 눈으로 자를 보면 매끈한 모양이지만, 점점 배율을 높여가며 확대해보면 울퉁불퉁한 지형이 보이기 시작한다. 마치 인공위성으로 본 지구는 깨끗한 구(球) 모양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산과 강이 흐르는 복잡한 구조인 것과 마찬가지다. 소금의 원자가 보일 지경이 되면 자도 그것을 이루는 원자가 보인다. 원자보다 작은 것은 없는데 자에다 글씨를 무엇으로 쓴다는 말인가. 레고블록보다 작은 디테일은 레고로 만들 수 없다.

둘째, 원자를 눈으로 직접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본다는 것은 빛이 사물에 부딪혀 튕겨서 눈의 망막에 도달한 것을 말한다. 사물이 점이라면 망막에 점의 상(像)이 맺혀야 한다. 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점은 뿌옇게 커지게 된다. 최선을 다했을 때, 뿌옇게 퍼지는 크기는 빛의 파장 정도 된다. 현미경이나 렌즈를 써도 이 한계를 극복할 수 없다. 인간은 가시광선만 볼 수 있는데, 이 경우 파장은 대략 500나노미터, 그러니까 소금을 이루는 원자들 사이 간격의 1000배 정도 되는 셈이다. 다시 말해서 1000개 정도의 원자들이 사람의 눈에 한 점(點)으로 보인다는 뜻이다.

결국 원자를 볼 때 자를 사용할 수 없다. 또한 소금 원자들 사이의 거리를 재기 위해서는 파장이 그 거리보다 짧은 빛을 써야 한다. 이렇게 짧은 파장의 빛을 X선이라 부른다. X선이라고 하면 부러진 뼈가 떠오를 거다. 맞다. 바로 그 X선이다. 파장이 짧을수록 빛의 에너지는 커진다. 이 때문에 물체를 쉽게 뚫고 지나가서 뼈를 볼 수 있게 해준다. X선을 써야 한다고 했지만 정확히 어떻게 하는지 이해하려면 따로 공부를 해야 한다. 이 방법을 고안한 공로로 막스 폰 라우에는 1914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X선보다 파장이 더 짧은 빛은 감마선이라 한다. 사람이 감마선에 맞으면 영화 ‘인크레더블 헐크’에서처럼 녹색 괴물 ‘헐크’가 된다? 이건 영화니까 그렇지, 사실 방사선의 일종이니 웬만하면 피하는 편이 좋다.

다시 라이고의 중력파 검출실험으로 돌아가자. 라이고는 100경분의 1m의 길이 변화를 잰다. 100경이면 1에 이어서 0을 18개 쓴 숫자다. 현재 이렇게 짧은 파장의 빛을 직접 다루는 기술은 없다. 라이고는 가시광선을 사용한다. 여기서는 빛으로 길이 변화를 직접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빛을 둘로 쪼개었다가 합친 후 생기는 차이를 본다. 간섭계라 불리는 장치의 원리다. 두 개의 비슷한 그림을 나란히 놓고 다른 부분을 찾는 게임이 있다. 만약 하나의 그림을 투명 필름에 프린트하여 두 그림을 겹쳐 보면 차이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이처럼 라이고는 길이 자체가 아니라 차이만을 관측한다. 세상에서 가장 예민한 검출기로 아주 미세한 차이를 측정하는 것이다. 이 검출기는 빛의 알갱이인 광자(光子) 하나를 측정할 수 있다.

이런 정밀측정기술은 어디에 써먹을 수 있을까. 갈릴레이는 최초로 망원경을 사용하여 하늘을 정밀하게 관측한 사람이다. 이로부터 그는 태양이 아니라 지구가 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1887년 마이컬슨과 몰리는 간섭계를 사용하여 빛의 속도를 정밀하게 측정했다. 이로부터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이 탄생한다. 라이고는 바로 이 마이컬슨 간섭계를 이용한다. 조금 더 정밀하게 볼 수 있을 때, 우리의 시야도 조금 더 넓어진다. 과학혁명은 언제나 이렇게 새로 보게 된 영역에서 탄생한다.

※평소 어렵게만 느껴졌던 생활 속 과학 이야기를 쉽고 재밌게 소개하는 코너를 시작합니다. 필자인 김상욱 부산대 물리교육과 교수는 ‘영화는 좋은데 과학은 싫다고?’ ‘과학하고 앉아 있네’(공저) 등의 책을 썼습니다.

 
김상욱 부산대 물리교육과 교수
#조지프 웨버#중력파#원자#라이고#중력파 검출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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